[여적] 영화 <터미널>의 결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4년 영화 <터미널>은 동화 같은 드라마다. <포레스트 검프>로 유명한 배우 톰 행크스가 주인공이다. 극중 가상의 동유럽국 크라코지아 사람인 그가 비행기를 탄 새 일어난 고국의 쿠데타로 인해 미국 뉴욕 JFK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무국적자가 돼 9개월 동안 공항에 머물러 지내는 이야기다. 하루아침에 오갈 데 없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는 상황 설정은 심각한데 영화는 따뜻하다. 그를 응원하는 공항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결국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나 집에 가요”라는 행복한 말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란 출신의 메헤란 카리미 나세리가 실존 인물이다. 그는 1988년부터 2006년까지 18년간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 터미널에서 노숙하며 살았다. 1977년 왕정 반대 시위로 인해 이란에서 여권 없이 추방됐다는 그는 1986년 유엔난민기구로부터 난민 지위를 받았으나 이후 난민 서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파리 공항에서 발이 묶였다고 한다. ‘추방할 나라가 없는 무국적자’로 공항에 방치된 것이다.
공항에서 먹고 자고, 책도 읽으며 산 것은 영화와 같아도 나세리의 기구한 현실은 영화와 달랐다. 갈 곳 없는 스트레스, 밖에 나가면 어찌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켜켜이 쌓였다. 훗날 프랑스와 벨기에가 거주 허가를 내줬어도 나세리는 거부하며 공항에 계속 머물기를 택했고, 2006년에 병원 치료가 불가피한 때에 이르러서야 공항을 떠났다. 공항 의료진은 그가 “여기서 화석화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외부생활이 불가능한 죄수’로 비유하기도 했다.
영화 <터미널>의 포스터에는 “인생은 기다림”이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 그러나 나세리의 결말은 영화에서처럼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엊그제, 77세인 그가 드골 공항 터미널 2층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대가로 3억원 이상의 돈을 받고 공항을 떠난 그는 16년간 프랑스의 보호소와 호텔을 전전하다 몇 주 전 공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공항 안과 밖에서 34년을 기다렸어도 끝내, ‘갈 곳 없는 신세’라고 생각했을까. 무엇이 그를 영원한 이방인으로 만들었을까.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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