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패거리 우선주의

2022. 11. 1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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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탈레스의 말처럼 우리는 사회적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삶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늘 궁금하고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보상을 추구하고 처벌을 받지 않도록 노력한다. 타인을 의식하면서 도덕과 규범을 만들고 이를 사회적으로 학습해 왔다.

사회가 확장하면서 큰 공동체와 작은 집단의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론적으로 다수는 소수를 존중하고 소수는 다수 의견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타인을 무시하고 자기편 이익만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공동선이 아니라 패거리 안의 이익과 인정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는 지금 정쟁과 태업을 반복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에 비명 지르는 국민의 목소리는 관심 밖이다. 지난 10월 윤석열 정부의 첫 국정감사는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파행만을 거듭하다 끝났다. 답변 나온 국무의원에게 "질문을 듣기만 하고 답변은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풍경도 재연됐다. 예산안 심의에서도 정파적 입장에 따른 예산 배정과 삭감의 이야기만 들려온다.

여야 편을 나눠서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해 대결하는 양상이다. 그래야 그 집단에서 인정을 받는 모양이다. 만약 그런 문화에 합류하지 못하면 집단왕따, 댓글테러, 항의전화의 대상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 대안을 찾는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대한 민주당의 집단 참석거부는 패거리 일방통행을 상징한다. 민주당의 명분은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기간 중 말실수에 대한 사과였다. 또 대장동 의혹에 대한 특검 요구였다. 여당이 이를 거부하자 민주당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이래 계속된, 여야 모두 참석하는 대통령 시정연설 관행을 깨고 집단 보이콧을 결행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당대표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아니라 민주당이 동의하는 특별검사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리스크의 현실화에 대한 두려움 해소가 우선인 셈이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서울 도심 집회는 여야 대립의 대리전이자 압축판이다. 보수 성향의 단체는 "이재명 구속"을 외치고, 진보 성향의 단체는 "윤석열 퇴진"을 외치고 있다. '너 죽고 나 살자'식의 타협 없는 싸움이다. 지난 12일에도 보수 성향의 정당과 종교단체는 광화문 일대에서, 진보 성향의 촛불행동과 민주노총 산하 노조원들은 서울 시청역과 용산 삼각지역 등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 시위 참여자들은 다수 국민들을 아랑곳 하지 않는다. 확증편향 속에서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한다. 소신보다는 속한 집단 목소리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 역시 패거리 우선주의 단면이다. 전장연은 장애인도 다른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이동하고, 여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서울 지하철 3호선과 4호선, 최근에는 5호선으로 내렸다 타기를 반복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교통 편리함의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예산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예산의 우선순위 결정은 정부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장연은 정부를 상대로 해야 할 싸움을 시민을 상대로 벌이고 있다. 전장연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장애인 시위자가 혹시나 다칠까봐 걱정스레 지켜보던 사람들도 최근에는 많이 등을 돌리고 있다.

자신의 주장만 관철시키기 위해서 등굣길의 학생과 출근길의 직장인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 탓이다. 장기화된 시위는 정부에게도 설 자리를 좁혀준다. 떼쓰기에 굴복했다는 비난을 감내하면서 예산을 늘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국론분열 중심에는 붕당(朋黨)정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의 정치인들은 동인-서인, 북인-남인, 노론-소론, 다시 시파-벽파로 나눠서 사사건건 대립했다. 상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건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리적 사고가 아니라 집안(혈연)-지역(지연)-스승(학연)에 따라 편이 나뉜다면 고민해봐야 한다. 또 그 대립이 상대를 죽이고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는 현종 때 상복 기간을 놓고 대립한 남인과 서인, 정조 때 사도세자의 복원을 놓고 충돌한 시파와 벽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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