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우위에 오른 거대플랫폼… "규제만이 독과점 문제 해결"
"외교문제로 비화할 가능성 낮아"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먹통 사태나 구글의 망 사용료 문제로 드러난 플랫폼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자율규제에만 맡길 게 아니라 정부 차원의 규제를 통해 공정 경쟁환경을 조성하고 이용자 보호를 해야 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변재일(사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불거진 거대 플랫폼 독과점 문제와 관련해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새 규율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변 의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신인 정보통신부 차관 출신으로, 국회 내에서 대표적인 과학기술·ICT 전문가로 꼽힌다.
◇"거대 플랫폼 기업 규제 시점, 망 사용료 법안 편법 없이 마련해야"= 변 의원은 세계적인 빅테크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해 "온라인 비즈니스는 '수확체증의 법칙'과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후발주자가 따라가기 힘든 성격이 있다"면서 "지금은 거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폐해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진흥과 육성을 지나 규제의 시점으로 옮겨가는 분기점"이라고 진단했다.
수확체증의 법칙(Increasing Returns of Scale)은 투입된 생산요소가 늘어날수록 산출량이 증가하는 현상으로, 지식기반 경제에서 통용된다. 카카오톡 이용자가 늘면서 네트워크 효과와 서비스 고착화가 일어나는 것이 대표적이다.
변 의원은 세계 최초로 우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망 사용료 법안 입법은 근본적으로 국내 통신사(ISP)와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콘텐츠 사업자) 중 '누가 우월적 지위에 있느냐'는 질문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ISP가 우월적 지위에 있을 때는 누구나 동등하게 접속할 수 있도록 망중립성을 법제화했지만, 이제는 CP가 우월적 지위에 올라 독점적 권한을 행사한다"며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모든 주체가 비용을 분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분담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글로벌 CP는 막강한 플랫폼 영향력을 바탕으로 이미 시장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가령 구글, 넷플릭스 서비스가 없으면 ISP는 가입자를 유치할 수 없다. 이들이 망 이용대가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글로벌 CP가 유발하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한 네트워크 비용은 고스란히 ISP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최근 규제 법안 저지를 위한 빅테크의 로비와 여론 조작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변 의원은 망 사용료 법안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오픈넷에 구글이 후원해 왔다는 자료를 공개하기도 했다. 변 의원은 "오픈넷이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구글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직원들과 같이 오픈넷의 자금 출처를 확인해보니 설립 당시 구글이 3억원을 단독 후원했고 현재까지 56%의 자금을 구글에서 받았다"고 말했다.
망 사용료 법안이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는 "미국 스스로도 자국 내 독점 기업의 규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WTO나 FTA 규정을 뒤져봐도 한국이 글로벌 사업자의 독점적 행위에 대해 규제 조치를 처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없다. 국내 기업 차별 금지와 최혜국 대우 문제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사업자도 해외 사업자와 똑같이 포함되기 때문에 해당 사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변 의원은 정부 부처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망 사용료 논쟁에 대해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소송 판결이 나오면 입장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변 의원은 "현행법에 문제가 있어서 개정 논의를 하고 있는데 행정부는 현행법에 따른 사법부의 판단만 기다리고 있다"며 "새로운 사회 현상이 나타나 국회가 입법 조치를 하려면 경제사회 상황을 지원하고 규율하는 행정부의 입장도 확인해야 하는데 행정부는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행태만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망 사용료 법안의 국회 통과는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변 의원은 "인앱 결제 방지법은 구글이 다른 편법을 만들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제대로 규율도 못하고 있는데 망 사용료 문제는 편법 여지 없이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트래픽의 20~30%를 차지하며 막대한 매출을 거두는 회사가 망 사용료를 전가하는 것은 소비자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빅테크 편법 경영·무책임한 알고리즘 우려, 국회 역할 중요"= 변 의원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편법 경영이나, 정치적 확증 편향을 유도하는 알고리즘의 무책임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빅테크 기업들은 세계 각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도 세율이 낮은 나라에 법인을 세워 사실상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 구글은 한국에서 벌어들인 매출에 대한 세금을 서버 소재지인 싱가포르에 내고 있다.
변 의원은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구글, 넷플릭스 측 증인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편법 경영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글로벌 콘텐츠 제공자나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이 하는 일을 정확히 판단해 알려주고 입법적으로 새 규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국회에서도 의원과 보좌진들이 상당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변 의원은 디지털 시대 초기에 기대했던 집단지성도 거대 글로벌 CP들이 인터넷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면서 변질됐다고 진단했다. 광고 수익 구조를 유리하게 하려고 알고리즘을 짠 결과 '확증편향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
변 의원은 "구독 시간이 늘어나면 광고 수익이 커지는 알고리즘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보기 좋은 소리만 전달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를 극도로 분열적인 양극화 사회로 끌고 가는 만큼 현재의 정치·사회에 맞는 새 규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김나인기자
사진=이슬기기자 9904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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