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m 흙벽이 던지는 질문…"코로나 이후, 생명을 어떻게 다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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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전시장에 흙으로 만든 거대한 인간의 머리가 옆으로 누웠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설치된 임옥상 작가의 작품 '흙의 소리'다.
임옥상은 민중미술 활동을 펼치면서도 활동 초기부터 꾸준히 주제와 소재 측면에서 흙과 땅에 관심을 가져 왔다.
백미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12m에 달하는 정사각형 모양의 흙벽 '여기, 일어서는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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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전시장에 흙으로 만든 거대한 인간의 머리가 옆으로 누웠다. 한쪽 귀를 바닥에 대고 땅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보인다. 성인 대여섯 명이 손을 맞잡아도 둘러서기가 어려울 만큼 큰 머리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신 가이아다. 두상에는 지푸라기가 곳곳에 박혀 있다. 논밭의 흙을 그대로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목 쪽으로 돌아가면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관람객은 머릿속에 앉아 가이아가 힘겹게 숨 쉬는 소리를 듣는다. 가이아는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사람처럼 힘겹게 숨을 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설치된 임옥상 작가의 작품 '흙의 소리'다.
내년 3월 1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임옥상: 여기, 일어서는 땅'은 '민중미술가'로 알려진 임 작가의 작품 4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가이아를 형상화한 ‘흙의 소리’를 비롯한 대규모 설치 작품 6점이다. 이 작품들은 임옥상에게서 민중미술가라는 꼬리표를 떼어낸다. 작가가 평생 천착한 소재인 흙을 매개로 자연의 소중함과 생명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경제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주제들이다.
서울관 내 중정 공간인 전시마당으로 나가면 ‘검은 웅덩이’와 ‘대지-어머니’가 설치돼 있다. 중정 가운데에 움푹 파인 웅덩이에는 검은 물이 채워져 있고 그 뒤로 노인이 땅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다. 관람객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미술관 측은 기본적으로 웅덩이는 땅의 숨구멍을, 노인은 땅 자체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노인의 연약한 몸과 애처로운 눈빛은 관람객에게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임옥상은 민중미술 활동을 펼치면서도 활동 초기부터 꾸준히 주제와 소재 측면에서 흙과 땅에 관심을 가져 왔다. 흙을 소재로 하거나 흙을 물에 이겨 캔버스에 바른 임 작가의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관람할 수 있다. 황폐한 땅에 붉은 웅덩이가 파인 대표작 ‘웅덩이’(1976)부터 백록담을 붉은 물로 채운 작품 ‘무극백록’(2021) 등이 대표적이다. 푸른 들판을 파헤쳐 붉은 구덩이를 만든 작품도 있다. 구덩이나 드러난 흙이 모두 핏빛이라는 점에서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전시작 중에는 독재 정권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던 1970년대에 임옥상이 우회적으로 현실을 표현했던 회화들도 포함돼 있어 관람객이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메시지를 거칠게 좁혀서 규정하면 초기작에서는 독재 정권 아래에서의 엄혹한 현실, 후기작에서는 인간이 자연과 생명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드러난다.
백미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12m에 달하는 정사각형 모양의 흙벽 ‘여기, 일어서는 땅’이다. 작가는 경기 파주시 장단평야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머물면서 논에서 흙을 걷어내 가로 2m, 세로 2m 크기의 흙판 36개를 만들고 짜 맞췄다. 흙판마다 트랙터의 바퀴 자국, 삽, 군용 철모, 무기, 해골, 나무, 춤추는 사람, 세로로 반으로 나뉜 한반도, 꽃, 새 등의 기호가 새겨져 있다. 가운데는 키가 4m가 조금 안 되는 다섯 사람이 섰다. 작가가 민간인 통제구역인 장단평야에서 보고 느낀 점을 담아낸 작품이다. 제목처럼 땅이 일어서는 형상이다. 지난 11일 현장에서는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주저앉아 대지를 바라봤다. 흙벽 코앞까지 다가가 자세히 훑어보기도 했다. 흙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전시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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