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축제도 집회다
[전범선의 풀무질][이태원 참사]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서울 이태원은 지금 초상집이다. 코로나19 이후 조금 살아나는 것 같았던 동네가 다시 적막하다. 앞으로 핼러윈뿐만 아니라 이태원이라는 이름에서도 집단 트라우마가 연상될 것이다. 지역 소상공인들은 침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다. 행사가 취소되면서 예술가들은 생계에 타격을 입는다. 대중음악 쪽 행사들이 제일 먼저 취소된다. 코로나19 때도 그랬다. 클래식, 뮤지컬 공연은 해도 클럽 공연, 페스티벌은 못 했다. 이 시국에 모여서 춤추고 노는 게 가당키나 한가? 어르신들의 시각에서 이태원과 홍대는 젊은이들의 ‘일탈’ 공간이다. 광화문과 여의도, 강남의 ‘일상’과는 급이 다르다. 국가행정의 우선순위에 없다. 언제든지 보류하고 제외할 수 있다.
10월29일, 국가는 알고 있었다. 두 종류의 집회가 있을 것이다. 광화문에서는 시위가 있고 이태원에서는 축제가 있다. 둘 다 10만여명이 운집할 예정이었다. 사실 이태원에 더 많이 모일 것 같았다. 그러나 국가는 결정했다. 서울시 경찰기동대 81개 중 70개를 시위에 배치했다. 용산경찰서장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집회 현장에 나갔다. 사람을 위해 차도는 통제했다. 반대로 축제에는 겨우 137명의 경찰을 투입했다. 그중 단속을 위한 사복형사가 50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기동대는 없었다. 질서 유지를 맡은 건 스무명 남짓의 이태원파출소 인원이 전부였다. 도로는 막지 않았다. 군중 통제와 교통정리를 동시에 해야 했다. 예견된 카오스였다. 이번 참사는 국가의 명백한 집회 관리 실패다.
주최 쪽이 없었기 때문에 방치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주최가 모호한 시위도 국가는 선제로 잘 대비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조사하고 제한한다. 대한민국은 자타 공인 시위 선진국이다. 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도 매우 안전하다고 느낀다. 오히려 축제 분위기다. 노래하고 춤추다가 깔끔히 정리하고 안전히 귀가한다. 그렇다면 왜 축제는 시위처럼 하지 못할까? 국가는 어째서 시위는 중시하고 축제는 무시하는가? 광화문 군중과 이태원 군중의 차이는 무엇인가? 같은 집회지만 시위와 축제에 대한 국가의 온도 차가 300여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나는 세대 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치과잉된 586세대는 시위가 곧 삶이다. 국가 발전을 위한 핵심적인 의식이자 신성불가침한 권리다.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마땅히 참석해야 하는 의무다. 오늘날 한국의 시위는 민주화세대가 쟁취한 멋진 문화다. 그들이 내 나이 때는 시위야말로 일탈이었다. 축제는 한가한 놀음이었다. 반면 엠제트(MZ)세대는 노는 것에 진심이다. 핼러윈 분장을 하고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기성세대는 도대체 왜 “외국 풍습”에 이토록 열을 올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나 ‘김건희 특검, 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을 청년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권력은 586이 쥐고 있다. 그들이 신세대 문화를 존중해야 또 다른 비극을 막는다.
축제도 엄연한 집회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자유이자 권리다. 척결과 규탄과 투쟁만 거룩한 것이 아니다. 쾌락과 유흥과 사랑도 숭고하다. 시위는 수단이라면 축제는 목적이다. 인간이 싸우는 것은 결국 즐기기 위함이다. 이제 한국도 축제를 진지하게 여길 때가 왔다. 명색이 엔터테인먼트 강국 아닌가? “딴따라”를 멸시하는 편견을 버리고 오락과 풍류를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시위가 삶에 녹아든 것처럼 앞으로 축제도 일상이 될 것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시민의 정치 투쟁이 아니다. 자유와 행복이다. 이태원에서 안전한 축제가 다시 열리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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