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이태원 참사와 개인의 시대

한겨레 2022. 11. 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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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국가애도주간이 끝났지만 여전히 추모와 안타까움, 비통한 심정이 넘실댄다.

하늘이나 망망대해도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건물이나 다리가 무너진 것도 아닌 익숙한 북적거림 속에서, 엄청난 비극이 순식간에 빚어졌다는 사실에 황망함은 쉬 가시질 않는다.

권위주의적인 국가는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고, 시민들은 국가가 제공한 환경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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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참사 현장에서 경찰이 통제선을 제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노멀-혁신] 김진화 | 연쇄창업가

이태원 참사 국가애도주간이 끝났지만 여전히 추모와 안타까움, 비통한 심정이 넘실댄다. 하늘이나 망망대해도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건물이나 다리가 무너진 것도 아닌 익숙한 북적거림 속에서, 엄청난 비극이 순식간에 빚어졌다는 사실에 황망함은 쉬 가시질 않는다. 이 비극엔 맹목적인 테러리스트, 악덕 부실시공업자, 하다못해 과오를 눈감아준 탐관오리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익숙한 악당들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는 그저 보통의 에너지들이, 길모퉁이를 돌면 어디서나 마주할 법한 평범한 골목길을, 보는 것조차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재난 현장으로 만들었다는 현실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진상규명이 어떻게 이뤄질지도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물론 그저 하던 대로 한다면 어려울 일도 없을 게다. 경찰 수사는 이미 한창이고, 국정조사도 거론되고 있으며, 여차하면 특검도 가능할 것이다. “주최자도 없고 누군가의 큰 과실도 없었다”는 얘기가 정부 당국자의 입에서 변명처럼 튀어나온 것은 문제지만, 진상 파악 과정에서는 간단히 넘길 수 없는 객관적 조건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재발 방지책을 쏟아낸다. 서울시는 인파 밀집지역 특별점검 카드를 내놨다. 월드컵과 연말연시를 앞두고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집중 관리하겠단다. “예측 불가능했다”는 말 역시 책임자의 일성으론 한없이 부적절하지만 이제부터는 과연 예측과 사전대응이 가능한 수준으로 대책을 수립, 운영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상황을 차분히 짚어본다면, 진상규명은 당국의 안일한 대응을 골자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재발 방지책은 보행환경 개선, 인파 관리 수준에서 “특단의 조치들”로 채워질 것이다. 이미 러시아워 지하철 승강장 등에선 경각심을 가진 시민들이 알아서 조심하고 있으므로 유사한 비극이 반복되는 불행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상의 공간에서 원인과 과실을 특정할 수 없는 의도치 않은 재난이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나게 될 경우다. 첨단기기로 무장하고 소셜미디어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거침없이 이동하고 집합하는, 개인인 동시에 눈 깜짝할 사이 군중을 형성하는 새로운 대중을 20세기적인 관리 기법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공포탄이라도 쐈어야 했다”는 야당 의원의 발언이 공포스럽게 들리는 이유다.

분단과 대치라는 거시적 위험 상황 속에서도 한국은 치안이 확고한 나라를 만들어왔고 세계적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만큼 이를 인정받고 있다. 권위주의적인 국가는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고, 시민들은 국가가 제공한 환경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쌓아왔다. 이 과정에서 시민이라는 주체는 대상화됐다. 골목마다 똬리를 튼 시시티브이(CCTV)와 도로 곳곳의 단속카메라는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시민이라는 주체를 ‘돌봄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것은 자명한 명제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공권력 없이도 위험을 회피할 대응력을 상실하는 건 다른 문제다.

이태원 참사는 공권력에만 의존하는 위기대응체계가 어떻게 무력화될 수 있는지 뼈아프게 확인해줬다. 만약 그날 밤, 통신사가 수집하는 기지국 접속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밀 경보 메시지를 해당 지역 접속자들에게 보내 각자 미리 대처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시내 곳곳에 민간회사들도 이용할 수 있는 음파통신인프라를 설치해, 평상시엔 지역정보를, 위기 상황에선 경보를 발송한다면 크고 작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꼭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습득한 개개인이 공권력이 닿기 전부터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방재 프로세스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 기술과 방법은 도처에 있다. 문제는 관점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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