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어떤 날] 아무리 좋은 걸 보고 듣더라도

한겨레 2022. 11. 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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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의 어떤 날]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잠시 짤막한 여행을 다녀왔다. 묵언수행하듯 꽤나 많이 걸었다. 여러번 가본 그곳에서 좋아했던 장소마다 빠짐없이 둘러봤다. 혼자하는 5년여 만의 여행인가?

나는 어려서부터 어디 가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새우젓 장사 할아버지가 지나갈 시간이면 대문 간에 쪼그려 앉아 “할아버지 날 좀 어디로 데려가세요, 네?” 어린 희은이의 말이었단다. 내겐 역마살이 있어 그 덕에 연예인이 된 듯하다고, 뭘 좀 볼 줄 안다는 사람이 45년 전쯤에 말해줬다. “늘 생방송 하느라 붙박이로 사는데 무슨 역마살이 끼었다는 거예요?” “그쪽은 가만히 있어도 듣는 이들은 계속 움직이면서 듣잖아? 사람들이 또 계속 바뀌잖아?” 참 희한한 풀이였다.

양껏 돌아다닌 건 서른에 혼자 떠난 배낭여행 길이었다. 81년, 숱한 도시와 풍광을 봤지만 뒤돌아보면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이 제일 오래 남아 있다.

맥은 스페인행 기차 칸에서 만났다. 건장하고 잘 생긴 인상 좋은 친구인데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까지 길동무였다. 스페인 남부의 황막한 광야를 18시간 달리기, 길게 누워 자기, 볼 일을 시원하게 보기, 따뜻한 물로 샤워 한번 해보기 등을 소원으로 꼽으며 아는 노래란 노래는 죄 함께 부르며 인생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각하며 기다리고 단식하기라고 썰을 풀었댔다. 기차만 장장 55시간 동안 타며 이동하기도 했는데 혼자 여행하는 맛에 길들어 옆 사람이 귀찮기도 했지만, 위험부담이 적고 여자 둘이서 나름 편하고 통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날, 마리아루이사공원 벤치에 앉아 활짝 핀 수련과 날아오르는 흰 비둘기들, 아름드리 키 큰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는 것도 보다가 둘이 예쁜 문양의 타일을 골라(스페인에서는 채색타일이 곳곳에 있다) 동전 던지기를 하는데 마침 자전거 타고 지나가던 사내아이들이 같이 놀기 시작했다. 드디어 걔네 엄마도 얘길 건넸는데, 보기좋은 얼굴에 침착하고 깊은 눈매였지만 어딘가 땟국이 조르르 흘러 보였다. 1969년 월남전 반전운동이 한창일 때 미국을 떠나 12년 동안 캠핑카로 유럽을 유랑하는 미국판 집시였다. 자기 집에 가겠냐 해서 따라나섰고 길고도 깊은 이야기가 시작됐다.

큰아들은 파키스탄, 작은아들은 모로코에서 낳았다며 얼마나 적은 생활비로도 사람이 살 수 있는가에 대해 들었다. 농사 품도 팔고 가죽신발을 만들어 팔아 돈도 벌고, 덴마크에선 매일 저녁 구두를 닦은 돈으로 아들이 자전거를 샀단다. 학교는 물론 안보내고 홈스쿨링으로 가르친다. 집에서 구운 빵과 아침 장에서 산 홍차, 이름 모를 작은 열매를 얻어먹다가 밤 9시 넘어 나왔다. 꼬마 둘이 작은 들꽃을 따다 주며 하는 말 “네 손도 둘, 발도 둘, 눈도 둘, 이 작은 꽃 두송이도 행운의 뜻으로 네게 줄게.”

맥과 함께 숙소로 오는 길. 아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 궁금했다. 장난감도 아이들이 만들어서 놀고 트럭 안 살림살이도 부부가 다 만들었단다. 식탁 위엔 작은 들꽃이 꽂혀 있었는데 큰 아이가 매일 아침 강가에서 엄마를 위한 들꽃을 꺾어준다니 마음 씀씀이가 곱다. “넌 참 특별해. 제발 무얼 보려고 애쓰지 마라. 박물관, 왕궁 찾아가지 마. 그냥 있어. 풀이 자라는 걸 보라구. 아무것도 하지 마.”

맥이 떠난 뒤 너무 쓸쓸해져서 아는 선후배들이 기다리는 파리로 갔다. 갓 지은 밥에 고추장을 비벼서 마구 퍼먹고 큰 대자로 누워 자고 또 쉬면서….

루브르도 갔었다. 지하실부터 보는데 하나같이 남의 나라 전승기념 장물이라. 잠시 의자에 앉아 쉬는데 웬 할아버지가 곁에 앉았다. 네덜란드에서 왔단다. 한시간 줄 서 겨우 표 샀다니까 “줄은 무엇 때문에 서나? 난 그냥 앞으로 들어왔어. 불쑥 끼어들었는데 괜찮았어. 줄 서 기다리는 건 질색이야. 2차 대전 때도 배급 타느라 줄을 섰지. 그때 난 결심했지. 이 지겨운 줄 내가 다시 서나 봐라. 그 뒤로 나는 줄 안서.”

루브르 밖 콩코르드 광장까지 시원하게 뻗은 길을 걸었다. 노트르담성당, 에펠탑, 센강, 몽마르트르, 샹젤리제, 앵발리드, 씨떼, 생미셸거리, 소르본대학, 뤽상부르공원, 팡테옹, 개선문, 그랑팔레, 프티팔레…. 발음조차 힘들고 낯선 곳. 하지만 따뜻한 선배 부부와 후배랑 실컷 웃고 떠들며 매일 밥 먹고 편히 누워 잘 수 있었던 파리! 전에 없던 호사였다.

아무리 좋은 걸 보고 들어도 나눌 사람이 없으면 꽝이다. 어디에 있든 보고 들은 바를 함께 떠들어야 마무리가 된다. 사는 것도 생각, 느낌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 5년여 만의 나홀로 여행에서 나름 추억여행도 해보았다. 그래도 옆에 사람이 있어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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