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시한부 총장'에 인기투표식 선출···"중장기 개혁 꿈도 못꿔"
< 상 > 복합위기 직면한 대학 -흔들리는 리더십
10명 중 9명은 '4년 단임제'로 끝나
중장기계획 위해 교수개혁 필요한데
직선제 부활 속 '캠퍼스 정치화' 변질
女·CEO·젊은 총장 등 다양성 확보
순혈주의 벗고 외국인도 고려해야
"대학 총장이 개혁을 추진해 열매를 맺으려면 빨라도 3년은 걸립니다. 우리나라처럼 4년만 하고 물러나는 풍토도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 기간에 혁신을 이루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중임이나 연임을 해서도 안 됩니다. 전제 조건은 혁신 리더십을 갖춘 역량 있는 총장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현청 한양대 석좌교수·전 상명대 총장)
오랜 시간 지속된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대학의 위기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대학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파고까지 맞으면서 어느 때보다 과감한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자연스레 대학을 이끄는 총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지만 파괴적 혁신을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총장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일부 사립대를 제외하고는 대개 4년 단임 후 물러나는 데다 직선제가 확대되면서 과감한 개혁보다는 학교 구성원의 여론에 휘둘리는 경우도 많아졌다. 전문가들은 대학을 둘러싼 대내외 위기를 타개하려면 재정난을 해소하는 동시에 대학의 리더인 총장이 마음 놓고 혁신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4년 단임으로는 성과 내기 어려워”=대학 총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요소는 ‘짧은 임기’다. 서울대는 최근 발표한 중장기 발전 계획 보고서에서 “서울대 총장의 임기는 4년으로 세계 주요 대학 총장의 평균 임기인 10년 1개월에 비해 절대적으로 짧다”며 “서울대를 혁신하려는 비전이 있더라도 소신껏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4년 임기는 중장기 발전 계획을 추진하는 데 제약이 될 수 있다”며 “대안으로 현행 4년에서 6년으로 임기 연장 또는 연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이는 비단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지난해 12월 4년제 대학 총장 182명을 조사해 발표한 ‘한국의 대학 총장’에 따르면 국내 대학 총장의 임기는 대부분 4년으로 전체의 90.1%에 달했다. 재직 횟수는 신임 1회가 133명(72.1%)으로 가장 많았다. 연임 2회 23명(12.6%), 3회 이상 26명(14.3%) 등의 순이었다. 사실상 4년 단임제인 셈이다.
미국도 신임·연임 총장 비율 등은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신임 총장으로 취임한 후 총장으로 재직하는 기간은 한국에 비해 평균적으로 훨씬 길다. 하버드대의 경우 1637년 설립된 이래 재임한 총장은 28명뿐이다. 그만큼 평균 재임 기간이 길었다는 얘기다. 스탠퍼드대 역시 총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13년에 달한다. 애리조나주립대도 마이클 크로 총장이 2002년부터 재임하면서 세계 최고의 혁신 대학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총장 마음대로 연임을 할 수도 없다. 다음 총장을 노리는 교수들이 줄 서 있는 상황에서 연임을 할 만큼 짧은 기간 동안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 집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이현청 석좌교수는 “4년 단임 역시 장점이 있겠지만 대학의 위기 상황에서 유익하지는 않다”며 “창의적 사고와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총장이라면 얼마든지 연임이나 중임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기투표된 ‘직선제’···다양성 확보도 과제=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활한 총장 직선제가 과감한 개혁을 힘들게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기준 국립대 38곳은 모두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부분 법인이 총장을 임명하는 사립대도 일부 직선제를 실시하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총장 직선제로 대학 민주화는 이뤄지지만 총장 선출 과정이 ‘인기투표화’된다고 지적한다. 유능한 교수들이 배경에 상관없이 출마해 총장에 오를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자신을 뽑아준 구성원의 목소리에도 신경 써야 하는 만큼 과감한 구조 조정 등 개혁을 추진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개혁의 대상이 총장을 뽑는다는 것”이라며 “중장기적인 계획을 펼치려면 학과나 교수 개혁이 불가피한데 직선제에서는 학생이나 교수에게 잘 보이는 것이 중요하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자교 출신 교수를 총장으로 뽑는 순혈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 행정 경험이 충분하고 혁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만 갖췄다면 총장을 외부, 나아가 해외에서라도 과감하게 데려올 수 있는 개방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총장뿐 아니라 국내에서는 드문 여성 총장, 30·40대 총장, 기업 최고경영자(CEO) 총장 등 다양성을 더욱 확보하려는 노력도 요구된다. 이 석좌교수는 “앞서가는 대학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는 과감한 도전이 필요할 때”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존 대학 총장들도 자극을 받고 대학 발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돈’이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재정난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총장의 역량은 기부금 등을 얼마나 끌어오느냐와 직결되는데 대외 여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그동안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기업들의 기부도 위축되고 있어 총장의 역할도 제한적”이라며 “근본적으로 기부 문화 확산 등 돈을 끌어올 수 있는 분위기나 시스템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신중섭 기자 jseop@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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