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수당 없이 일만 늘어" 기업 "인건비 폭증" 모두 불만

이종혁, 이진한 2022. 11. 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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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주52시간제 등 노동개혁 지지부진에 현장 혼란
추가수당 못받는 탄력근로 허점
임금 줄어든 조선업 근로자 투잡
중동 진출 건설사도 초비상
"경직된 제도 탓에 비용 부담만"
연장근로 4주48시간 논의 시급
野·노동계 반발에 시작도 못해

정쟁에 밀리는 노동개혁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내건 주52시간 근무제 등 노동개혁이 야당과 노조의 반대 속에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사진은 주52시간 근무제 여파로 협력업체들이 적자를 내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한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 모습. 【연합뉴스】

# 국내 10대 그룹 화학 계열사인 A사는 연말을 앞두고 공장 설비 정기 보수 때문에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약 한 달 동안 촉매 교체, 시설 분해, 정밀검사 등을 진행해야 하는데 대규모 정비 인력을 단기간에만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기존 직원들이 1주 52시간을 넘겨서 근무하지만 초과근로수당은 전혀 받지 못해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 경남 거제도 조선소 근로자들은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상당수가 근무 이외 시간에 배달업 등을 하는 '투잡족'으로 전환했다. 잔업과 특근이 감소하면서 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 조선업체 근로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5.0%는 "주52시간 근무제 이후 삶의 질이 나빠졌다"고 응답했고 73.3%는 "임금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감소한 임금은 월평균 60만1000원이라고 응답했다.

윤석열 정부는 5월 출범하며 주52시간 근무제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임금 체계 대수술까지 경직된 노동제도를 최우선 개혁 과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연말을 한 달여 앞둔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나 마찬가지다. 169석을 보유한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과 양대 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의 반발이 주된 원인이지만 여당·정부도 청사진 마련과 본격적인 노사정 대화에 제때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가 가장 시급하게 꼽는 대표적 노동개혁 과제는 주52시간 근무제 개편이다. 정부는 당초 지난 10월 연장근로시간 단위기간을 1주 12시간에서 4주 48시간으로 바꾸는 내용의 제도 개혁안을 내놓기로 했다. 그러나 매일경제 취재 결과 정부는 이르면 다음달 초에 계획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마저도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노동개혁 과제를 도출하는 전문가 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활동 기한이 다음달 17일인 점을 표면적인 이유로 댄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이미 개편 방향의 줄기는 나왔는데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쉽사리 확정하지 못하고 보류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미래노동시장연구회 활동 기한 연장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52시간 근무제는 2018년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작년 7월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기업의 노동 수요가 단기간 급증하거나 재해·재난, 기타 경영환경 급변에 대비하기 위한 주52시간 근무제의 유연화 장치로 6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제를 작년부터 시행했다. 일이 많은 주의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신, 다른 주는 줄여 최대 6개월간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근로시간(주40시간) 내로 맞추는 제도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상 탄력적 근로제는 노사 서면합의가 사전에 필요해 급변하는 경영 여건에 대응하기 어렵고 노조가 강성인 사업장은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반면 연장근로 제한을 주당 12시간에서 4주간 48시간으로 개편하면 경영 환경에 따른 신속한 근무 유연화가 가능하다. 연장근로는 근로자 당사자와 기업 간 합의만 있으면 된다. 또 근로자로서도 연장근로에 대한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는 현행 탄력적 근로제보다 유리하다. 일본은 연장근로 상한을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까지 인정해 월 단위, 연 단위로 연장근로를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법정근로시간(주40시간) 초과 노동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는 제한 규정만 법으로 둔다.

개혁의 지연으로 입는 피해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서 대형 건설·발전사업 수주를 노리는 건설업계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때문에 현지 생산을 늘려야 하는 자동차·에너지 기업에 특히 집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시차나 기후, 현지 노동 관행에 맞춰 한국인 근로자의 근로시간 상시 유연화가 절실한데 경직된 제도 운영 때문에 비용이 폭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인 미만 사업장은 52시간에 8시간을 더해 주당 60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한 추가 근로제를 올해 말까지 활용할 수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소기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 제도의 일몰을 2024년까지 2년 연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역시 노동계와 야당의 반발이 심해 국회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다른 노동개혁 과제도 지체 중이다. 윤 대통령은 앞서 중대재해법 개선안을 담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10월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기약이 없다. 고용부 관계자는 "로드맵을 통해 중대재해 감소에 관한 종합적 청사진을 그릴 예정"이라며 "당면한 노동개혁 과제는 조만간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권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발표 후 정부는 당초 계획대로 입법 등 후속 조치를 신속히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종혁 기자 /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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