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치는 빛…자연과 기술의 합작품

파라다이스 '스페이스 심포니'展
예술듀오 A.A.무라카미 신작
정정주·서민정 등 작품 펼쳐

A.A.무라카미가 공개한 신작. 【사진 제공=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

안개가 가득 찬 뿌연 방, 발을 딛고 서 있다는 것만 겨우 느껴지는 미지의 공간에서 원초적 빛과 마주한다. 우주 최초의 물질 상태인 플라스마다. 인간의 숨을 불어넣어 저마다의 모양으로 자리 잡은 길쭉한 유리관들 안에서 플라스마가 빛의 선이 돼 요동친다. 빛이 유리관을 때리는 지지직대는 소리를 들으며 한 발짝을 겨우 뗀다. 손에 쥐고 내리칠 수 있다면 번개가 될지도 모를 우주의 원천. 지극히 자연적이면서 때론 초자연적인 감각이 눈과 귀를 깨운다.

인천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에서 개최 중인 전시 '스페이스 심포니'에 설치된 부부 예술작가 듀오 A.A.무라카미(아즈사 무라카미·알렉스 그로브스)의 신작 '떠다니는 세계 - 새벽 입자'다. 플라스마는 별, 번개, 오로라 등 지구 대기권 밖의 다양한 자연현상을 구성하는 제4의 물질 상태다.

플라스마를 구현하기 위해 진공 유리관 안에 전류를 흘려보내도록 설계된 컴퓨터 코딩, 하얗고 푸른 빛으로 우리 눈에 보이게 해주는 무색·무미·무취의 크립톤 가스 등 공간 뒤편엔 복잡다단한 첨단 과학이 작동한다. 아트 스페이스에서 직접 만난 작가 알렉스 그로브스는 "자연과 기술의 힘을 합쳤을 때 나오는 시너지 효과를 작품으로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의 요소는 작가가 계획한 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계산대로 전압이 움직이는 순간, 유리관 안에선 뜻밖에 1~2초 정도 짧게 빛의 구름이 만들어진다. 그로브스는 "플라스마는 파도처럼 물결치기도 하고 밝은 가스로 변한다"며 "화학적으로 생기는 신비로운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여 작가 오마키 신지는 앞서 2018년 아트 바젤 홍콩·아트 부산 등에서 작품 '전이적 공간 - 시간'을 통해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해줬던 데 이어 '시간의 그림자'를 이곳에서 최초로 선보인다. 캄캄한 공중의 천은 여전히 신비롭고 몽환적이며, 전작보다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밖에 이번 전시에서 정정주, 서민정, 양민하, 민예은, 박상희, 가도 분페이, 쿤 반 덴 브룩 등 총 9팀이 해석한 '공간'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내년 3월 26일까지.

[정주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