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맥·아이패드 팔아 번돈을 어디에 썼을까? [강기자의 자본추]

강인선 2022. 11. 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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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내년에 출시할 예정인 아이패드 프로. <사진=애플 공식 홈페이지>
10일(이하 미국 동부 현지시간) ‘깜짝’ 하락한 미국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3대 지수는 급등 마감했습니다. 축포를 터뜨린 투자자분도 많겠지만 사실 미국 경기는 단기간 기준금리를 많이 올린 탓에 ‘침체’에 곧 빠질 거란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습니다. 최근 3분기 실적 발표를 대부분 마친 기업들이 ‘4분기에는 장사가 잘 안될거 같다’며 올해 가이던스를 여럿 낮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적 가이던스를 낮추면 당연히 주가에는 좋지 않겠지요. 이때 미국 기업들이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함께 내놓는 당근이 있습니다. 바로 회사 돈으로 회사 주식을 매입하는 ‘자사주 매입’입니다. 회사 돈으로 주식을 사들이면 시장에 돌아다니는 주식이 줄어들겠죠. 주주들이 갖고 있는 주식의 희소성이 커져 주가가 올라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자사주 매입은 점차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주가가 너무 하락하니 주주들을 달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거고, 회사 입장에서도 주식이 저렴할 때 지분을 늘려놓아서 나쁠건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증시에서 자사주 매입의 효과는 차이가 큰 것 같은데요. 그 이유는 ①자사주 매입의 규모와 ②매입한 자사주가 다시 시장에 나오지 않을 것이란 믿음의 차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우선 미국 기업들이 얼마나 자사주를 많이 매입하는지를 알아볼까요?

시총 14%로 자기주식 매입하는 세계1위 화학기업

가장 최근의 사례는 세계 최대의 화학회사 듀폰에서 나왔습니다.

듀폰 기업 로고.
지난 8일 실적을 발표한 세계 최대 화학기업 듀폰은 올해 실적 가이던스를 낮춰 잡았습니다. 원자재 가격과 금리 인상 등 원가부담이 실적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도 듀폰 주가는 실적 발표 당일 7% 상승했는데, 바로 5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사주 매입 계획도 함께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듀폰의 시가총액은 11일 기준 346억 달러입니다. 시가총액의 7분1이 넘는 규모의 주식을 앞으로 사들이겠다고 한겁니다.

올해 많은 주주들에게 눈물을 안겨줬을 반도체 섹터에서도 자사주 매입 모범생이 있습니다. 아날로그 반도체의 절대강자 텍사스인스트루먼트입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지난 11일 기준 연중 주가 하락률이 8.35%에 불과합니다. 같은 기간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상장된 나스닥 시장 종합 지수는 30%,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33%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훌륭한 방어력이죠.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주가 방어력 빨간선이 텍사스인스트루먼트, 파란선이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 주황선이 S&P500 지수입니다. <자료=investing.com>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지난 9월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회사의 시가총액 1% 수준인 15억 달러 규모입니다. 듀폰의 매입 규모에 비하면 조금 시시해 보이는데요. 그런데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지난 19년간 배당을 늘려온 회사란 걸 아시나요? 경기 침체로 인해 당분간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지난 9월 분기 배당금을 주당 1.24달러로 8%나 올렸다는 점을 아신다면 이 회사가 주주들을 붙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조금은 보이실 겁니다. 실제로 2019년말 12억6900만주였던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발행주식은 지난 3분기말 9억2300만주까지로 줄었습니다. 폭발적인 성장이 없더라도 주식의 희소성이 커지면 가치는 점점 올라갈 수 있겠죠?

애플도 전통적으로 자사주매입을 잘 활용하는 기업 중 하나입니다. 애플 주주시라면 최근 빅테크 급락 속에서도 비교적 마음이 가벼울 것 같습니다. 애플 주가는 연중 20%가 채 안빠졌지만 아마존,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메타 등 기업들은 주가 하락폭이 30~60%대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8년 애플 최고재무책임자 CFO 루카 마에스트리가 “순현금흐름을 0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해 투자자들로 하여금 ‘에이, 설마’하는 반응을 이끌어냈는데요. 애플은 실제로 이 약속을 잘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애플의 순현금은 당시 1630억달러에서 현재 490억달러 수준으로 감소한 상태입니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3분기에만 252억 달러의 자사주를 매입했다고 합니다. 분기 최고 매입액 기록인데, 애플이 이때까지 어떠한 기업을 인수한 데 쓴 돈보다도 많다고 합니다. 가장 최근 분기에 맥과 아이패드 매출을 합한 것 보다 많은 규모라고도 하네요.

한국 기업도 배당을 더 많이, 제대로 한다면

비교적 주주가치 제고에 소홀하다고 알려진 한국 증시에도 자사주 매입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아직 작은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주주가치 제고’를 목표로 하거나 주식을 매입해 소각하겠다고 공시한 기업들 사례를 몇 개 살펴보겠습니다(소각에 대해서는 조금 더 뒤에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지난 10일 42억3000만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취득하겠다고 공시한 에코마케팅이 있습니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4677억원으로, 시가총액 1%에 가까운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가총액이 19조원인 신한지주도 1500억원의 자사주 취득 공시를 했고, 9조6000억원의 시가총액을 보이고 있는 한화솔루션은 695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하겠다고 했습니다. 훌륭한 회사들이지만, 놀랄만한 규모의 자사주 취득은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차이는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는지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주식 소각은 회사가 발행된 주식을 사들이는 데서 나아가 아예 없애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자사주를 매입하기만 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을 줄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주주들은 불안할 수 있습니다. 언제 이 주식들이 대량으로 시장에 다시 유통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사주 소각이 매입보다 확실한 주가 상승 유인이 될 수 있겠습니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19일 보고서를 통해 “미국 증시에서 자사주 매입은 소각이 전제되는 경향이 있다. 국내 증시에서 이익소각 건수 비중은 3%에 불과하다”고 분석했습니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지난해 4월 분석보고서를 통해 “국내 특성상 취득한 자사주는 소각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자사주 취득 결정의 동기와 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선 자사주 매입 선언이 투자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진리의 선반영’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이미 시장에 공개된 정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언제나 망각하는 동물이니 말입니다. 실제 많은 미국 기업들이 ‘우리 5년간 자사주 30억달러만큼 매입할 거야’와 같이 얘기해놓고는 조금씩 조금씩 이를 실행에 옮기는데요. 증시가 좋지 않은 지금 대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한 기업들을 표시해놓고 실적과 주가 추이를 팔로업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강기자의 자본추>는 한국과 미국 주식에 대한 재밌는 소식들을 전하는 코너입니다. MZ세대가 연인관계에서도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것처럼, 자본과도 편하게 친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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