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돈으로 빚 돌려막기, 직원 해킹설도…FTX 몰락의 길

조해영 2022. 11. 1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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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에프티엑스(FTX)의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대형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에프티엑스(FTX)가 파산 절차에 돌입하면서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에프티엑스의 파산을 두고 세계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의 코인판이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가운데, 내부 통제와 감시의 부재가 사태의 결정적 원인이란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각) 에프티엑스는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에프티엑스는 한때 거래량 기준으로 전 세계 3위를 기록했던 대형 거래소로, 이번 파산신청은 가상자산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에프티엑스의 부채 규모는 최소 100억달러에서 최대 500억달러(약 13조원에서 66조원) 수준이다. 채권자도 10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산신청 대상에는 130개가 넘는 에프티엑스의 계열사도 포함됐다.

대형 파산을 촉발한 것은 유동성 위기다. 2019년 설립된 에프티엑스는 ‘에프티엑스토큰’(FTT)라는 자체 코인을 발행해 왔는데 이 코인의 가격이 폭락하면서 에프티엑스의 설립자이자 전 최고경영자(CEO) 샘 뱅크먼 프리드(30)가 소유한 투자회사 알라메다 리서치의 자금난 우려가 커졌다. 불안해진 이용자들은 자금 인출에 나섰고 곧바로 유동성이 메말랐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에프티엑스 인수 의사를 보이기도 했지만 “실사 결과 인수를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위기를 되돌릴 수 없게 됐다.

12일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파산 신청 전날인 10일을 기준으로 에프티엑스의 유동성 자산은 9억달러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의 자산이 벤처캐피탈(VC) 투자나 널리 거래되지 않는 암호화폐 토큰이어서 유동성 위기라는 급한 불을 끄는 데 곧바로 투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파산 신청 다음날 해킹이 발생한 것도 혼란을 부채질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인 엘립틱 등에 따르면 12일 에프티엑스로부터 6억6200만달러 규모의 토큰이 유출됐다. 에프티엑스 역시 ‘미승인 거래’라는 표현으로 해킹이 발생한 사실을 인정했다. 에프티엑스에서 빠져나간 토큰은 주요 가상자산인 이더리움으로 환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프티엑스의 설립자인 샘 뱅크먼 프리드(30)는 2017년 알라메다 리서치를 창업했다. 이후 2년 뒤인 2019년에 에프티엑스를 설립하고 에프티티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2년 넘게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한편, 소규모 가상자산 업체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투자자이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파산신청 직후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표면적으로는 유동성 위기가 주요 원인이지만,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내부 감시나 통제 소홀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2일 <로이터> 통신은 에프티엑스가 계열사인 알라메다 리서치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의 돈을 끌어다 썼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에프티엑스와 알라메다의 경영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고객의 돈을 마음대로 유용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셈이다. 파산신청 다음날의 해킹이 회사의 파산으로 전 재산을 날리게 된 직원의 소행일 수 있다는 외신 보도도 회사 내부의 ‘기강 해이’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의 재무장관을 지낸 세계적인 경제학자 로런스 서머스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에프티엑스 사태가 ‘리먼 브라더스’보다는 ‘엔론’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엔론은 2001년 파산한 에너지 기업으로, 파산 전까지 분식회계로 재정 부실을 감춰왔다. 엔론의 파산은 당시 회계감사를 담당했던 대형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이 해체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에프티엑스가 파산을 신청하면서 법원은 파산전문 변호사인 존 레이 3세를 신임 최고경영자로 앉혔는데, 그는 엔론의 파산 절차를 이끌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서머스는 “재정적인 실수뿐 아니라 사기의 냄새가 난다”며 “(에프티엑스의 파산은) 가상자산 규제의 복잡성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아주 기본적인 금융 원칙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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