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려 있는 집값, 3년 뒤가 더 걱정된다
(시사저널=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국내 주택시장을 둘러싸고 경착륙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대출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비롯해 다양한 규제 완화책을 내놓고 있지만 가파르게 오른 금리를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특히 시장에서는 연말에도 기준금리가 추가로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내년에도 집값은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이달 초 진행한 2023 건설·부동산 경기전망 세미나에서 내년 전국의 아파트값이 2.5%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현재 집값이 높아진 금리에 일시적으로 눌려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약 3년 뒤에는 공급난에 허덕이며 집값이 다시 들썩일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주택 착공량 감소를 꼽는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 동안 전국 주택 인허가 물량은 38만200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주어보면 6% 가까이 늘어난 수준이다. 다만 주택의 착공 실적은 되레 줄어들었다. 올해 1~9월 총 28만4059가구가 공사를 시작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39만7657가구) 대비 26% 이상 감소한 수준이다.
올해 주택 착공량, 지난해보다 26% 감소
착공량 감소의 원인은 다양하다. 먼저 전 정부의 정비사업 규제 강화가 영향을 미쳤다. 문재인 정부는 주거 공공성 강화를 부동산 정책 기조로 삼으며 투자 성향이 짙은 민간 정비사업의 규제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재건축 절차의 시작인 안전진단 규제가 강화됐고, 분양가 상한제로 신축 아파트의 분양가가 높아지지 않도록 했으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도입으로 조합 또는 조합원의 재건축 개발이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도록 했다. 이처럼 정부가 강도 높은 규제책을 도입해 재건축 사업의 문턱을 높이자 사업을 보류하거나 미루는 단지가 늘어났고 인허가 물량도 자연히 예년에 비해 감소하며 착공량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
분양 시황이 좋지 않다는 점도 디벨로퍼들의 착공을 망설이게 만든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들어서는 전국적으로 미분양 물량도 쌓여가는 추세다 보니 인허가 절차를 마쳤다고 해서 선뜻 착공에 나서기 꺼려지는 것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이 4만1604가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한 달 앞선 8월에 비해 약 27%인 8882가구나 늘어난 수준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공사비 급증도 착공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통계청 e-나라지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철근 가격은 1톤당 평균 1135달러로 2020년 말(670달러) 대비 2배 이상 올랐다. 시멘트 원가의 30%가량을 차지하는 호주산 유연탄 국제가격도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올랐다. 이 밖에 유류비 인상과 함께 오른 물류비용 등도 부담으로 작용해 인허가가 착공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여기에 올 하반기 들어서는 금융기관들이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대출을 걸어잠그고 있다. 통상 시행 주체인 디벨로퍼가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데 활용하는 PF는 사업 초기에 토지 매입과 인허가를 위한 브리지론과 이후 공사비 일부를 조달하는 본PF로 나뉜다. 착공에 앞서 본PF를 일으켜 높은 금리의 브리지론을 상환하고 공사비를 조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최근에는 금융권의 PF 대출 거부로 본PF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 보니 착공이 순조롭지 않은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첫째 주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전주(10월 넷째 주) 대비 0.32% 하락했다. 지난 9월 셋째 주(-0.19%) 이후 7주 연속, 조사 이래 최대 하락률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 조사 통계는 2012년 5월 시작돼 현재 10년6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현재는 역대 최대 하락폭 기록을 세우며 추락하고 있지만 3년 뒤에는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한 아파트 단지 완공에는 2년6개월에서 3년 정도가 소요된다. 현재 착공량이 적다면 약 3년 뒤에 입주하는 물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실제 부동산 시장 조사업체들도 서울 등 일부 지역의 입주량 감소를 예고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의 집계에 따르면 2020년 4만5868가구이던 서울 입주 예정 아파트 물량은 올해 2만3593가구로 줄어들었는데 내년 2만2485가구, 2024년엔 1만2573가구 등으로 더욱 줄어든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는 연평균 5만 호 이상 주택 공급 역량을 가진 도시라며 이 이상 공급이 이뤄져야 집값을 자극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런데 내년과 후년 입주량은 이상적인 공급량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공급량 부족이 두드러지면 시장 안정화를 이루기 힘들다.
올해 착공량이 지난해 대비 감소했는데 현시점에 착공되는 물량이 준공될 즈음에는 시장에 공급량 부족이 다시 대두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물가나 전쟁 등 거시경제가 안정된다는 전제하에, 현재의 착공량 부족은 2~3년 뒤 서울과 같이 수년 동안 공급이 부족했던 지역의 집값 반등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재초환이나 안전진단, 부동산 세제 등 주택 공급을 저해하는 부동산 규제는 풀린 것이 없다"며 "지난해와 올해의 인허가 실적마저도 내년 이후 실제 착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신규 주택 공급이 지연되면서 그 기간이 누적되면 당장 내년이 아니더라도 미래시점에 마치 스프링처럼 그만큼의 가격으로 반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약 부분만이라도 활성화 방안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당장 정부가 손쓸 수 있는 부분의 보완작업에 나서는 게 중장기적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허가까지 마치고도 착공이 지연되는 이유는 분양시장 침체와 건설업체의 자금난 등 복합적인 결과인데, 이 중 정부가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인 청약시장 부분만이라도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시장 침체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착공 지연이 누적되면 결국 공급 부족과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만큼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해제 등 지역별 규제를 하루빨리 완화하고 세금 감면 등으로 착공 지연의 원인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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