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책 3요소: 피해주지 말고, 남 탓 말고, 너 자신을 알라

한겨레 2022. 11. 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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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름엘셰이크 현장][제27차 유엔기후변화총회]
장다울의 기후정의 십계명 @COP27
①시나이산에서 한국 정부가 새길 세 가지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열리고 있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 국제회의장에서 한 참석자가 지구 모형을 떠받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총회에서 지구와 인류와 수많은 생명의 미래가 결정된다. 그 미래로 가는 경로가 결정된다. 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회의의 핵심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제27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리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 가 있는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이 생생한 해설서를 띄운다. 편집자주

하나,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 둘, 남 탓하지 말자. 셋, 나 자신을 알자.

심각한 기후위기 속에서 세계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에 하고 싶은 말이다. 특히 마지막은 한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방향과 정책에 있어서 곱씹어 생각해봐야 할 말이다. 낡은 액자 속 궁서체로 써져 어느 교실에 걸려 있을 것만 같은 이 문장들은 사실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구직자의 자기소개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마침 지금 이곳은 성경 속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시나이산 인근이다.

십계명을 잘 지켰던 모세처럼 저 세 가지 계명을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살았다는 청년 구직자는 다행히 합격한 모양이다. 과연 인류도 시급한 기후위기 해결이란 미증유의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남 탓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며 산 결과, 어렵게 직장에 합격했을 청년과 그 청년의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에게 안전한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까?

현재 이곳 이집트 시나이반도 샤름엘셰이크에서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열리고 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위기인 글로벌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기후협약이 탄생한 지 올해가 30년째지만, 불행히도 인류는 기후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격하게 줄어도 모자랄 판에 늘고 있다. 그 결과 강산이 변할 시간이 세 번 지나는 동안 기후가 더 안 좋게 변해버렸다. 1만여 년 전부터 인류 문명을 번성하게 해준 안정적인 기후가 변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된다.

이곳 총회 논의에서 가장 주목을 받으며 논의되고 있는 질문은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잘살게 된 국가들이 이들보다 온실가스 배출은 훨씬 적었음에도 기후재난의 피해를 더 크게 받는 기후 취약국들이 입은 혹은 입게 될 손실과 피해에 대해서 어떻게 재정적 보상을 할 것인가’이다.

저먼워치가 2021년 발표한 ‘글로벌 기후 리스크 지수’ 보고서를 보면 지난 약 20년간 가장 손해를 크게 입은 국가는 미얀마, 아이티, 모잠비크 등 개도국이다. 파키스탄은 올해도 수개월의 이례적인 대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고, 3300만 명이 수해를 입고, 1700명이 넘는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기후협약 초반부터 개도국의 감축과 적응에 대한 선진국의 재정 지원과 별개로 ‘손실과 피해’에 대한 재정적 보상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 결과 2015년 파리 협정에서는 손실과 피해가 별도의 조항으로 다루어졌다. 현재 총회 분위기는 드디어 별도의 재정적 보상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논의가 모이고 있다. 누가 지지하는지, 조용한지, 방해하는지를 살펴보며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기다려보자.

개도국에 피해 준 이상 책임 져야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피해를 주었으면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 어느 문화에서나 ‘공정과 상식’이다. 한국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기여한 기후재난으로 이미 누군가의 집이 파괴되고, 누군가는 난민이 되고, 누군가는 직업을 잃고, 누군가는 충분한 식량을 구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마실 물이 부족해지고, 누군가는 생명을 잃고 있다. 인과 관계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은 이미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와 연결 고리를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피해를 준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

기후운동가들이 2022년 11월9일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열리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 국제회의장에서 신속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도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며, 세계 주요 경제국이다. 피해를 복구하고 회복할 재원과 사회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물론 기후위기가 더 심각해지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시급하게 줄여야 하지만, 더 큰 손해를 입고 회복할 역량이 부족한 국가들에 지원과 보상을 해야 한다. 선진국으로서의 인도주의에 기반을 둔 고상한 책무가 아니라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이며 글로벌 북반구 국가에 속한 한국에 ‘오염자 책임 원칙’에 따라서 요구되는 책임이다.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산업화가 빨랐던 선진국이나 중국, 인도와 같은 우리나라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크고 배출량도 많은 개도국의 책임이 더 큰 것 아닐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미국·영국·독일·캐나다·호주·프랑스·일본·이탈리아가 한국보다 배출 책임이 큰 것은 맞다. 하지만 이 국가들은 연간 배출량을 꾸준히 줄여왔다. 지난 30년(1990~2020)간 영국과 독일은 연간 배출량을 각각 45%, 39%를 감축해냈다. 일본과 미국도 각각 11%, 8%를 줄였다.

한국은 같은 기간 139%를 늘렸다. 그 결과 이제 한국은 연간 배출량에서 프랑스·이탈리아·영국·호주·캐나다를 넘어섰다. 연간 1인당 배출량이 세계 상위권에 든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이렇게 커져 버린 한국의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잘 알아야 한다.

한국, 남 탓하며 회피하지 말아야

중국과 인도의 배출량이 한국보다 많지만 1인당 배출량은 여전히 적다.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G20의 개도국들도 감축에 동참해야 하지만, 한국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개도국 핑계를 대면 안 된다. 특히,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92%를 차지하는 60여개국의 기후위기 대응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에서 항상 최하위권에 있는 한국이 댈 핑계는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2020년까지 한국의 누적 탄소 배출량은 이제 17위까지 올랐고, 그 양은 하위 129개국을 합친 양과 같다. 이제 배출량의 무게를 느끼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할 때다. 그러니, 남 탓하지 말자.

오히려 이제는 한국보다 책임이 적은데 감축도 열심히 하고, 개도국 지원에도 적극적인 국가들을 보며 반성해야 한다.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유럽 국가들이다. 이 국가들은 한국보다 역사적 배출량도 적고, 1인당 역사적 배출량도 적고, 현재 연간 배출량도 적고, 현재 1인당 배출량은 훨씬 적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

이번 제27차 당사국총회가 열리기 전에 선진국 최초로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별도의 재정 지원 약속을 한 덴마크를 필두로 총회 현장에서 이에 동참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에 대한 금융기금 설립 논의도 진행 중이다. ‘기후악당’의 오명을 들어온 한국이 ‘기후위기 대응 무임승차자’라는 또 다른 비판을 받지 않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역할을 하려면, 이에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피해 주지 말고, 피해줬으면 책임지고, 남 탓하지 말고, 이번 COP27이 한국 정부 대표들이 한국의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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