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참전용사, 가슴 속 간직 '노르망디 소녀'와 78년 만에 재회

김태훈 2022. 11. 1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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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4년 나치 독일을 프랑스에서 몰아내기 위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 스치듯 잠시 만났다가 헤어진 영국군 병사와 프랑스 소녀가 78년 만에 백발이 성성한 90대 노인이 되어 재회했다.

12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웨일스 출신의 2차대전 참전용사 레지 파이(98)는 80년 가까이 어느 프랑스 소녀의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해왔다.

다만 후퇴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며 프랑스 영토를 해방시키는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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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작전 성공 직후 스치듯 만난 뒤 헤어져
'잼 바른 빵' 받은 소녀가 건넨 사진 꼭 간직
"이젠 당신과 결혼해야겠군요"… "그럽시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4년 나치 독일을 프랑스에서 몰아내기 위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 스치듯 잠시 만났다가 헤어진 영국군 병사와 프랑스 소녀가 78년 만에 백발이 성성한 90대 노인이 되어 재회했다. 현재 홀몸인 두 사람은 가족들의 뜨거운 축하 속에 결혼을 약속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도중 프랑스 어느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뒤 헤어진 영국군 참전용사 레지 파이(오른쪽)와 프랑스 여성 위게트가 78년 만에 재회한 모습. 그때 위게트한테 잼을 바른 빵을 선뜻 내어준 파이가 당시와 같이 빵을 건네자 위게트가 웃으며 받아 들고 있다. BBC 홈페이지 캡처
12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웨일스 출신의 2차대전 참전용사 레지 파이(98)는 80년 가까이 어느 프랑스 소녀의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해왔다. 1944년 6월 영국군은 미군·캐나다군과 더불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단행했고, 당시 스무살이던 파이가 속한 부대는 ‘소드’(Sword)라는 암호명이 붙은 노르망디 바닷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후퇴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며 프랑스 영토를 해방시키는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하루는 파이가 어느 프랑스 마을에서 동료 부대원들과 정어리 통조림, 잼을 바른 빵 등으로 식사를 하는데 낯선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나이 열넷으로 독일군 점령 기간 내내 공포와 배고픔에 시달렸던 위게트(92)였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파이는 표정과 손짓으로 ‘정어리를 줄까’ 하고 물었다. 위게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원한 건 잼을 바른 빵이었다.

“그녀는 초라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죠. 내가 빵을 주니 받아 들고선 쏜살같이 마을 광장을 가로질러 교회 쪽으로 뛰어갔던 게 기억나요.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레지 파이)

이튿날 군용 트럭 안에 있던 파이의 소지품 옆에 예쁘장한 여자아이의 흑백사진이 놓여 있었다. 파이 등 부대원들이 잠든 사이 위게트가 고마움의 표시로 몰래 갖다놓은 게 분명했다. 사진에 적힌 글자를 보고서야 소녀 이름이 ‘위게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부대는 독일군과의 전투를 위해 진격해야 했고, 파이로서는 위게트의 행방을 찾을 방도가 없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도중 프랑스 어느 마을에서 프랑스 소녀 위게트가 영국군 병사 레지 파이한테 건넨 자신의 사진(왼쪽). 오른쪽은 사진 뒷면에 이름 등 정보가 적혀 있는 모습. BBC 홈페이지 캡처
“우리가 함께한 건 불과 몇 초에 불과했지만 전쟁터라는 그 암울한 공간에서 그녀와 나눈 짧은 교감은 확실히 내 인생의 전기가 되었죠. 그때 지갑에 넣어 보관하기 시작한 사진을 아직도 품고 있는 이유입니다.”(레지 파이)

전후 결혼해 평범한 삶을 살던 파이는 2015년 무려 72년 동안 해로한 부인과 사별한 뒤 한가지 결심을 했다. 그 ‘노르망디의 소녀’를 꼭 찾아서 죽기 전에 만나겠다고 말이다. 아들을 비롯한 식구들도 파이를 응원하며 백방으로 위게트의 소재를 수소문했다. 여러 해에 걸친 노력 끝에 최근에야 참전용사들을 위한 봉사단체 도움으로 위게트가 프랑스 북부 어느 요양원에 거주 중임을 확인했다. 그 또한 세 자녀의 어머니로 그간 열심히 살아왔다.

마침내 두 사람이 78년 만에 상봉하는 날 요양원엔 양가 가족이 거의 다 모였다. 파이는 미리 준비한 정어리 통조림과 잼, 그리고 빵을 보여줬다. 위게트는 웃으며 이번에도 잼을 바른 빵을 선택했다. 환호와 갈채 속에 둘은 포옹, 그리고 키스를 나눴다.

“이제는 당신과 결혼할 수밖에 없게 되었네요.”(위게트)

“그럽시다. 이것으로 뜻한 대로 다 되었소.”(레지 파이)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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