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실험과 자기 색채 넘나드는 미술계 별종의 세계
(시사저널=반이정 미술 평론가)
외계 비행선을 닮은 커다란 타원형이 창공에 멈춰선 모습.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산봉우리 여럿이 공중에 떠있는 광경. 자연경관을 공상과학물처럼 가공한 풍경화. 안두진 개인전 《리듬 속에 그 춤을》(11월2~22일, 이화익갤러리)이 다루는 건 자연 풍경이다. 산과 구름, 바다처럼 식별 가능한 대상과 마름모꼴 도형 하며 정체불명의 구성물이 한데 엉켜 화면을 채운 풍경화다. 그렇지만 그림의 스토리를 읽을 단서를 찾긴 어렵다. 그림 안에 산, 바다, 들판과 다양한 도형이 가득 차 있건만, 중력이 사라진 진공된 공간에 산이며 바다며 정체 모를 도형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고 제각각 독자적인 존재감으로 자리매김한 풍경화랄까.
형태와 색채는 안두진 그림의 전부다. 그 점 때문에 그의 그림은 조형의 원점에 수렴하는 실험처럼 보인다. 세모와 네모, 원형처럼 기하학적 기본 도형을 조합해 자연 경물들이 만들어진다. 빗금 무늬의 삼각형 파도가 겹겹이 쌓여 바다를 이루고, 삼각형 나무들이 켜켜이 쌓여 피라미드를 닮은 삼각산을 구성하는 식이다. 산과 바다의 기하학적인 모양새는 뭉게구름이나 대지와 만나 유기체처럼 공존한다. 자연과 인공은 반대말이지만 안두진의 풍경 속에선 그 둘이 혼재된 형태로 출현한다.
'이마쿼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형태와 함께 안두진 그림의 다른 축은 색채다. 현대미술신에서 현란한 원색 사용은 팝아트가 독점하는 실정이지만, 안두진의 자연 풍경화는 감각적인 원색을 포기하지 않고 자연과 우주의 장엄함을 구현한다. 안두진은 그림의 제작 공정을 이론으로 정립한 미술가다. 그의 그림은 이미지의 최소 단위들로 제작된단다. 이미지와 소립자의 기본 단위인 쿼크를 합성한 '이마쿼크(Imaquark)'라는 신조어를 지어,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한다.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의도를 최대한 배제하고, 이마쿼크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발생 과정을 중시해서, 회화의 이야기, 물질의 느낌, 작가의 그리기 재능 같은 기존 회화의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데 집중한 작업"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미술(가)이 자의식에 눈을 뜨자 현대미술이 출현했다. 남 보기에 좋은 아름다움만을 보여줬던 미술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난 현대미술이 어려워진 이유다. 세간에선 곧잘 추상미술로 통칭되지만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미술이나, 1960년대 출현한 미니멀리즘 미술이 난해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술가의 과잉 표현에 반발해 등장한 미니멀리즘 미술은 색과 형태를 최소화하고 조형의 기본 골격만 남겼고, 작가의 주관적인 표현도 지우려 했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은 '환원 미술' 혹은 '원초적 구조물'이라고 불렸다. 언뜻 미니멀리즘의 지향점이 안두진의 이론과도 많은 부분 겹치는 것 같지만, 둘의 결과물은 정반대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예술과 인문학의 이론은 진위를 검증할 수 없다. 작품의 완성도에 권위를 부여하는 역할이 예술과 인문학의 이론일 때가 많다. 그래서 예술 이론과 창작물은 서로 아귀가 딱딱 들어맞진 않는다. 그럼에도 예술과 인문학 이론은 업계에선 통한다. 주류 미술계를 장악한 미디어아트에 맞선 새로운 회화 중에는 네모진 캔버스 프레임의 한계를 넘어서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개중에 하나가 안두진처럼 자기 이론으로 무장한 새로운 회화다. 이처럼 예술 이론은 때때로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변화를 위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14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중앙홀에서는 기울어진 좌대 위에 잡다한 입체 사물들을 얹은 대형 설치작품이 전시된 적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젊은 작가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고정 프로그램인 《젊은 모색》의 2008년 전시 때 선정된 '회화 작가' 안두진의 작품이었다. 좌대 위에는 크기가 다양한 육면체와 여러 기본 도형이 올려져 있었다. 이는 안두진의 그림을 구성한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이마쿼크'를 입체 조형물로 끄집어낸 것처럼 보였다. 아마 작가가 자기 이론을 새롭게 실현하려고 평면 회화를 넘어 입체 설치물로 확장하는 시도였을 것이다.
그 무렵 안두진이 발표한 여러 그림이 공유한 독특한 인상이 있었는데, 르네상스기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알렉산더 대왕의 이수스 전투》(1529년)라는 옛 그림을 현대적이고 독자적으로 변주한 질감과 통하는 데가 있었다. 700년 전 독일 화가가 그린 전투 장면에는 미립자처럼 깨알 같은 알렉산더 대왕의 병사들로 대지를 채웠고, 라인강 너머 멀리로 태양 광선이 만드는 종말론적 분위기가 지배했다. 그 옛 그림의 반전 포인트는 사실주의 풍경의 하늘에 라틴어 문장이 적힌 태블릿이 뜬금없이 떠있는 설정이다. 그 비현실적 구성은 묘한 숭고함을 줬다.
평면 회화 넘어 입체 설치물로 확장 시도
안두진은 현대사회에서 만나기 힘든 해일과 먹구름이 뒤엉킨 대자연의 장관을 독창적인 기법에 담아 자기 색채를 굳힌 화가다. 자신이 믿는 이론을 구현하려고 초대형 설치미술로 외유한 적도 있었다. 결과로 보자면 나는 회화가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안정된 지분에 머무르지 않고, 평면과 입체를 넘나든 지난 경험은 신작 발표 때마다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주면서도 고유한 자기 색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산이라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현대 미술판에서 유망한 신예를 발굴해 소개하는 적지 않은 기획을 통해, 무수한 새 얼굴과 만났다. 영원할 것 같았던 젊은 영광들 중 다수는 어느덧 잊혔고, 일부는 주목받은 자기 색채를 반복하며 생태계에서 명맥을 유지했고, 또 다른 일부는 엉뚱한 실험을 하다가 엎어졌다. 그리고 나머지 소수는 엉뚱한 실험과 자기 색채 사이를 꾸준히 오가며 느린 속도로 커나갔다. 미술 작가의 흥망성쇠를 되돌아보니, 이게 모든 삶의 축소판이 아닐까 싶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 월드컵, “8강도 가능”에서 “조별리그 탈락 유력”까지 - 시사저널
- 물 대신 커피 마신다고?…‘탈모’로 이어질 수도 - 시사저널
- 김정은, 결국 ‘핵실험 단추’ 누를까 - 시사저널
- 美-러, 비밀회담 가졌나…“핵 사용 않도록 경고” - 시사저널
- 어깨 힘 빼고 ‘포용의 리더십’으로 돌아온 홍명보 - 시사저널
- “12월, 新변이 없이도 코로나 유행 불가피하다” - 시사저널
- ‘이것’ 줄어든 사람들, 내장지방 늘어났다 - 시사저널
- 현대인 갉아먹는 불안…효과적인 대처법 3 - 시사저널
- 코로나 재유행 초입 들어섰나…심상치 않은 신호들 - 시사저널
- 코로나 재유행에 독감까지…커지는 ‘멀티데믹’ 공포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