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톰 행크스 실존인물, 18년간 살았던 공항서 쓸쓸히 사망

김표향 2022. 11. 1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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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오갈 데 없이 18년간 머물러 할리우드 영화 '터미널'에 모티브가 된 이란 남성이 결국 공항에서 77세를 일기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란 출신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는 이날 정오 무렵 파리 샤를 드골 공항 터미널 2층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결국 나세리는 2006년까지 18년간 공항 1번 터미널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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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몇 주 전 공항으로 돌아와 생활
2004년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거주하고 있던 이란 남성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오갈 데 없이 18년간 머물러 할리우드 영화 ‘터미널’에 모티브가 된 이란 남성이 결국 공항에서 77세를 일기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란 출신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는 이날 정오 무렵 파리 샤를 드골 공항 터미널 2층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의료진이 출동했지만 나세리를 살리지 못했다.

공항 관계자는 16년 전 공항을 떠났던 나세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망하기 몇 주 전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살고 있었다고 전했다. 생전 그는 공항을 “집”이라고 부르곤 했다.

나세리가 공항에 머물게 된 사연은 기구하다. 1945년 이란에서 이란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세리는 1974년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귀국한 뒤 왕정 반대 시위를 하다가 여권 없이 국외로 추방됐다.

그는 유럽 각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고, 1986년 유엔난민기구(UNHCR)로부터 난민 지위를 부여받아 벨기에에서 살았다. 그러다 1988년 어머니를 만나러 영국으로 가는 길에 경유지인 파리에 들렀는데 기차역에서 난민 증명서가 담긴 서류 가방을 도난당하고 말았다.

용케 파리 공항 출국심사는 무사 통과해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에 내렸지만 난민 서류가 없어 입국이 불허됐고, 다시 파리 샤를 드골 공항으로 이송됐다. 프랑스 경찰은 당초 그를 추방하려 했지만 신원을 증명할 공식 문서가 없는 ‘무국적’ 상태였기 때문에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라서 그를 공항에 방치했다. 결국 나세리는 2006년까지 18년간 공항 1번 터미널에서 살았다.

나세리는 빨간 플라스틱 공항 벤치에서 잠을 잤고, 공항 직원들과 친구가 됐다. 샤워는 직원 시설을 이용했다. 평소엔 일기를 쓰거나 잡지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공항 직원들은 그를 ‘알프레드 경(Lord Alfred)’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들 사이에서도 그는 유명 인사였다.

영화 '터미널'의 한 장면.

나세리가 공항에 산 지 11년 만인 1999년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 나세리도 당시 AP통신 인터뷰에서 “언젠가 공항을 떠날 것”이라고 했지만, 끝내 공항에 머물기를 택했다. 공항 밖 세상에 대한 공포와 불안 때문이었다. 하지만 2006년 건강 악화로 병원에 이송되면서 자신의 의사와 관계 없이 공항을 떠났고, 이후 파리보호소에 거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 직원들은 나세리가 창문 없는 공항 터미널에서 보낸 오랜 세월이 그의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1990년대 공항 소속 의사는 나세리의 육체적ㆍ정신적 건강을 걱정하며 “그는 이곳에서 화석화됐다”고 말했고, 티켓 발권 직원은 그를 “외부 생활이 불가능해진 죄수”에 비유하기도 했다.

나세리의 이야기는 세간의 관심을 끌면서 2004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 ‘터미널’로 제작됐다. 주인공 역할은 배우 톰 행크스가 연기했다. 영화는 가상의 동유럽 국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서류가 무효화되는 바람에 미국 뉴욕 JFK 공항에 남겨진 한 남자의 이야기로 각색됐다. 나세리는 판권료로 25만 달러(약 3억3,000만 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숨진 나세리에게서는 고작 수천 유로(수백만 원)가 발견됐을 뿐이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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