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기만술 동원 핵·미사일 정보 연막… 美 ‘하늘의 눈’ 부릅 [이슈 속으로]

박수찬 2022. 11. 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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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北, 한반도서 ‘전력 숨바꼭질’
北, 미사일 발사 장소 늘려 시설 분산
핵실험 준비 숨기려 위장 가림막 설치
美 정찰기 접근 힘든 태천서 시험발사
감시망 빈틈 늘려 韓·美 겨냥 반격 도모
美 키홀 위성, 5㎝ 크기까지 식별 가능
무인기 글로벌 호크, 20㎞ 상공서 관찰
주한미군 운용 정찰기·민간 상업위성 등
민관군 협력 시너지로 정보 수집 박차
‘숨기고, 부풀리고, 파헤친다.’ 북한 핵위기가 본격화한 1990년대부터 미국과 북한은 국가의 운명을 건 숨바꼭질을 벌여왔다. 북한은 핵·미사일 기술 수준을 숨기고자 관련 시설을 분산하고, 실제 능력을 과장하고 숨기는 등의 기만술을 구사해왔다. 미국은 북한이 숨기는 핵·미사일과 재래식 전력을 파악하고자 첨단 장비를 총동원해 정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한쪽은 감추고, 다른 한쪽은 파헤치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 한반도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모양새다.

◆핵·미사일 실체 숨기려는 북한… 기만술도 구사

북한은 휴전선 일대부터 중국 국경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핵·미사일 관련 시설을 분산 배치했다. 시설의 숫자를 늘리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 위장 작업도 지속했다. 목적은 단 하나, 미국 등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미국 등이 북한 전역을 감시하는 첨단 정찰체계를 갖췄지만, 관련 시설 다수가 북한 내에 넓게 퍼져 있으면 감시망에도 ‘빈틈’이 생긴다. ‘빈틈’이 커지면 한·미를 겨냥한 반격이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

북한 철도기동미사일연대가 운용하는 열차에서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이를 위해 북한은 미사일 발사 장소를 계속 늘려왔다. 이동식발사차량(TEL) 탑재 미사일을 쏘려면 특정한 조건을 지닌 장소를 확보해야 한다. 잘 포장된 도로와 콘크리트 패드가 사전에 설치되어 있어야 하고, 화염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나무도 제거해야 한다. 최근 북한이 평안북도 동림 등 기존에는 발사 장소로 쓰지 않던 곳에서도 미사일을 쏘는 것은 미사일 발사 조건을 충족하는 장소를 예전보다 더 많이 확보했다는 의미다. 북한이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열차에서 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북한이 이 같은 방식을 계속 구사하면, 미국은 이를 찾아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의 반격이 성공할 가능성도 더욱 의식할 수밖에 없다.
정보나 발사 징후가 노출될 위험을 줄이는 작업이나 기만책을 시도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2006년 1차 핵실험과 2009년 2차 핵실험 당시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입구에 가림막을 설치했다. 핵폭발 장치를 갱도에 반입하고 콘크리트로 되메우는 작업 등 핵실험 준비 상황을 미국 정찰위성에 노출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이후 갱도 입구에 가림막을 만드는 것이 핵실험 임박 징후로 해석되자 북한은 3차 핵실험 직후인 2014년 초 가림막을 설치하고 차량과 인원 출입을 늘렸다. 미국의 관심을 끌어 북핵 의제를 미 행정부 외교정책의 앞순위로 올리려는 행동이었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지난 9월 25일 평안북도 태천 일대로 추정되는 저수지에 설치된 수중 바지선에서 수면 위로 밀어올려진 직후 엔진을 점화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함경남도 신포나 강원도 원산 앞바다에서 쏘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평안북도 태천 일대 저수지에서 쏜 것도 마찬가지다. 미사일 플랫폼 확대를 통해 발사 징후를 숨기면서 정보 노출을 피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신포와 원산은 미국, 일본 정찰자산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동해와 인접해 있다. 반면 북한 서북부의 태천은 미국 등의 정찰기 근접이 불가능하다. 동해안보다 정보 보안 유지가 훨씬 쉽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미사일 관련 정보나 징후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SLBM 시험발사를 내륙 저수지에서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11일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이달 초 북한이 울산 앞바다에 전략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주장을 북한이 지난 7일 보도하고, 이 내용을 우리 군 당국이 부인한 데 대해 “뻔뻔한 생억지”라며 재반박했다. 군 안팎에선 기만전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이 실제보다 과장된 주장을 함으로써 한·미의 군사적 압박에 대등하게 맞설 능력이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미국, 압도적 정찰능력으로 북한 실체 파헤치기

북한의 기만술에 맞서 미국은 북한 핵·미사일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첨단 장비를 총동원하고 있다.

대표적 수단은 미 국가정찰국(NRO)과 국가지리정보국(NGA) 등이 운영하는 정찰위성이다. 정찰위성은 고도 300∼600㎞ 상공에서 활동한다. 지상의 움직임을 촬영하려면 고도가 낮아야 하기 때문이다. 목표물을 세밀하게 관찰할 때는 고도를 낮춰 촬영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미국 정찰위성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키홀(KH) 위성은 사람의 얼굴과 체형을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인 5㎝ 크기까지 탐지한다. 초정밀 디지털카메라와 야간촬영을 위한 적외선 탐지기 등을 갖춰 구름 낀 날씨나 밤에도 촬영이 가능하다. 미국은 키홀을 이용해 하루 2∼3회 북한 상공을 돌며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이 운용하는 글로벌호크 RQ-4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도 휴전선 이남에서 비행하며 북한 핵·미사일 동향을 관찰한다. 최대 5500㎞의 작전 반경을 가진 글로벌 호크는 고도 20㎞ 상공에서 36시간 동안 비행하며 지상의 20㎝ 크기 물체도 식별한다.
주한미군 등에서 운용하는 정찰기도 대북 정보 수집에 나선다. 오산 주한 미 공군기지에서 출격하는 U-2S 정찰기는 평양·원산 이남 지역에서의 미사일 동향 등을 정찰한다. 최대 150㎞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크기의 물체도 식별할 수 있다. 주한미군 제501정보여단에서 운용하는 RC-12X 정찰기는 휴전선 일대 북한군 교신을 분석하면서 관련 동향을 파악한다.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기지 등에서 날아오는 RC-135 V/W, EP-3E 신호정보 수집기와 E-8C 지상감시 정찰기 등도 한반도 일대에서 정보 수집을 벌인다.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 상공을 고공정찰기 U-2S가 선회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플래닛 랩스를 비롯한 민간 업체들이 운용하는 상업위성도 정부기관과 전문가에게 북한 동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민간위성은 군용 정찰위성보다 성능이 떨어지지만, 수집한 정보를 종합해 분석하면 북한 미사일 기지 등의 동향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미국 국방부나 정보기관도 군용 정찰위성이 미처 확인하지 못하는 틈을 메우는 차원에서 민간위성을 활용한다. 38노스를 비롯한 북한 관련 연구기관들도 민간위성 사진을 토대로 북한 핵·미사일 기지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보고서를 발간한다.

군과 정보기관, 민간 영역에서 북한 핵·미사일 동향을 끊임없이 살피고 분석하는 작업이 반복되면, 북한이 외부에 잘못된 정보를 주고자 실시하는 은폐, 속임수 등의 기만전술을 회피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에 따라 미국은 민관군 협력을 더욱 강화해 북한에 대한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을 높이는 작업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韓·日도 정찰자산 늘려 대북 감시 강화

한국군은 북한 핵·미사일 관련 동향 파악 과정에서 미국 등에 의존해왔다. 해상도가 70㎝ 수준인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3호가 있지만, 성능이 더 우수한 군용 정찰위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지속됐다.

이에 따라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으로 추진되는 4·25사업이다. 1조2000억원 이상을 투입해 영상레이더(SAR), 전자광학(EO), 적외선(IR) 레이더 등을 갖춘 대형 정찰위성 5기를 확보하는 사업이다. 카메라 기능을 하는 EO·IR 위성과 레이더 전파를 활용해 관측하는 고성능 SAR 위성으로 구성된다. EO·IR 위성은 대부분 국내 기술이 적용돼 개발 중이며, SAR 위성은 해외 기술협력을 통해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2025년까지 전력화가 완료되면 2시간마다 북한 미사일 기지와 핵실험장 등 주요 시설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된다.

다수의 초소형 위성을 신속하게 지구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고체연료 추진 우주발사체 기술도 실용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ADD가 시험발사에 성공한 고체 추진 우주발사체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다면, 한반도 유사시 소형 정찰위성을 긴급하게 발사하는 것도 가능할 전망이다.

한국군은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동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백두정찰기를 1990년대에 도입했다. 이후 2011∼2018년 신형 백두정찰기 2대를 개발하는 백두체계능력보강 1차 사업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전자정보와 통신정보에 더해 전자장비 간 신호교환을 포착하는 계기정보 수집과 미사일 발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화염탐지 기능 등이 추가됐다. 군은 2026년까지 8000여억원을 들여 신형 정찰기 4대를 국내 기술로 개발, 1990년대 들여온 백두정찰기를 대체하는 백두체계능력보강 2차 사업을 추진 중이다. 백령도에서 울릉도에 이르는 전방지역에는 북한군 교신을 감청, 핵·미사일 관련 동향을 파악하는 시설들도 있다.

일본은 1998년 북한이 쏜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1호가 일본 열도를 통과한 직후 북한 핵·미사일 동향 감시를 위해 ‘정보수집시스템(IGS)’으로 명명한 정찰위성 확보를 추진했다. 현재는 SAR·EO 정찰위성 7개를 운용 중이다. 일본은 이들 위성을 통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징후를 감시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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