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풍향계] 이태원 참사 '진실 규명의 시간'…국정조사 정국 시동
[앵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 애도기간이 끝나고, 정치권은 이제 본격적인 진상규명 수순에 돌입했습니다.
참사의 원인과 재발 방지책을 모색하자는 데 한목소리를 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자 국정조사 여부를 놓고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번 주 여의도 풍향계에서 최지숙 기자가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기자]
시민들의 급박한 구조 요청이 담긴 '112 녹취록' 공개를 기점으로, 이태원 참사는 '책임 규명'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그저 우연히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는 목소리가, 여야 모두 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과 방향은 또 다시 엇갈리고 있습니다.
야권은 지난 10일, 공동으로 제출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본회의에 보고했습니다.
이번 참사의 총체적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취지로, 조사 대상에는 행정안전부와 경찰청 등 관계 기관은 물론 대통령실도 포함됐습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지난 9일)> "이제 국회의 시간입니다. 국정조사든 청문회든 특검이든 국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진실이 결코 봉인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핼러윈 축제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됐음에도 안전관리 대책이 부실했던 점과 보고 및 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 등을 조사하고 책임 소재를 따져 묻겠다는 것입니다.
여권은 선을 그었습니다.
국민의힘은 진행 중인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이 슬픔을 정쟁에 악용하고 있다고 맞섰습니다.
<주호영 / 국민의힘 원내대표(지난 9일)> "국정조사는 수사에 지장만 주고 정쟁만 일으킬 뿐이다…지금 국정조사를 하자고 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윤석열 / 대통령(지난 10일)> "경찰 수사 그리고 송치 받은 후에 신속한 검찰 수사에 의한 진상 규명을 국민께서 더 바라고 계시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민주당은 범국민 서명 운동에 나서는 한편, 여당의 동의가 없더라도 24일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국정조사는 국회가 특정한 국정 사안에 대해 직접 행하는 조사로, 국민의 대의 기관이 갖는 고유 권한입니다.
때문에 여야의 서로 다른 셈법 속에서도, 공통적인 잣대로 여론의 향배가 중요한 기제가 돼 왔습니다.
통상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여당은 이번처럼 '정치적 의도'라고 거부하다가, 국민 여론이 기울면 수용한 경우가 대체적이었습니다.
대형 참사에 따른 국민적 의혹으로 국정조사가 이뤄진 사례는, 대표적으로 삼풍백화점 붕괴와 세월호 침몰 참사가 있었습니다.
관련 수사와 병행됐었는데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의 경우 희대의 참사가 일어난 원인을 찾아내고, 재난방지 관련법을 정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에는 석 달 가까이 국정조사를 진행했지만 거듭된 파행 끝에 결과보고서도 채택하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다만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의 초동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여야 합의 없이 추진된 전례도 있는데요, 1999년 실시된 'IMF 경제위기'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입니다.
당시 정권 교체로 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참여를 끝까지 거부했는데, 진상조사에 대한 높은 요구 속에 여당 단독으로 국정조사가 이뤄졌습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동의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할 수 있고, 다시 재적 의원 과반이 동의하면 본회의를 통과하게 됩니다.
169석 거야(巨野)인 민주당의 단독 처리가 가능한 셈입니다.
국정조사는 선명한 명암을 갖고 있습니다.
대상자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와 달리 총체적 원인 규명이 가능하고 도의적 책임까지 확인할 수 있지만, 반면에 강제력이 없는 만큼,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처럼 파행과 정쟁만 장기화 할 수도 있습니다.
그 필요와 불요에 관한 여야의 주장 모두, 일견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정진석 /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지난 10일)> "경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지도 않고 국회로 와서 국정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조금 설득력이 떨어진다라는 이야기인데…"
<이정미 / 정의당 대표(지난 10일)> "이 일의 정치적 책임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은 그러려고 국회법 안에 국정조사라고 하는 권한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여권으로선 국정조사가 진행되면 '정부 책임론'이 예상되고 참여하지 않으면 '책임 회피' 지적이 불가피 하다보니, 고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사는 현재까지 경찰과 소방에 초점이 맞춰진 모양새입니다.
여야가 국정조사를 각각 방어하거나, 또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권은 거듭 '국가의 무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부 책임론이 번질 가능성을 우려해 경질 요구에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김대기 / 대통령 비서실장(지난 8일)>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이것도 저는 조금 후진적으로 봅니다."
<박희영 / 용산구청장(지난 7일)> "(그 책임이 구체적으로 어떤 책임인가요?) 여러 가지 큰 희생이 난 것에 대한 제 마음의 책임입니다."
대신 주로 일선 경찰의 초동 대응을 문제 삼았습니다.
<윤희근 / 경찰청장(지난 1일)>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김대기 / 대통령 비서실장(지난 8일)> "교통만 통제했어도 애들이 저렇게 안 죽었어요. 용산서에서 이쪽으로 보고를 해줬으면 무슨 조치를 하든지 하죠."
참사 당일, '사람이 죽어간다'고 외치며 도움을 청했던 이태원 파출소 김백겸 경사는 이후 "소명을 다 하지 못했다"고 오열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상황을 브리핑하던 용산소방서장이 입건된 가운데, 지난 9일 '소방의 날'에는 소방관들의 눈물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다'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아직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롯이 진실을 밝히고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 정치권이 복잡한 셈법을 내려놓고 머리를 맞댈 때입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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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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