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닮은 로뎀나무가 되고 싶었다

김양진 기자 2022. 11. 1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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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전상서]1963년 광주 수피아여고 학생들과 선생님이 ‘20년 뒤에 만나자’고 약속하며 심은 낙우송 이야기
2022년 11월3일 광주 남구 양림동 수피아여고에 제13회 졸업생(1965년 졸업)들이 60년 전 심은 낙우송 앞에 모여 학교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원래 키가 작아 남쪽 지방에서 생울타리로 많이 쓰이는 호랑가시나무. 광주 남구 양림산에는 이 나무들이 400년간 군락을 이뤄 키 5~6m의 거목으로 자라 있다. 그 산비탈에 수피아여고가 자리잡고 있다. 교정은 남동쪽 플라타너스 무리와 북동쪽 팽나무 무리가 울타리로 감쌌다. 1908년 학교를 세운 미국 선교사들이 고국에서 가져와 심은 100살 넘은 아름드리 은단풍나무, 피칸나무도 학교 곳곳에 서 있다.

‘1963년 이 나무를 심고 20년 되던 날 모였으며, 2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모였다. 20년 후 이 나무 밑에 모이기로 굳게 약속하였다. 나를 길러준 또 하나의 어머니-수피아, 삶에 지치고 외롭고 또 서로가 그리울 때 우리의 안식처가 되는 로뎀나무 그늘이어라. 2003년 10월3일 1962년도 제1학년(제13회 졸업생) 일동. A반 대표 박오장, B반 대표 이영현, C반 대표 조은.’ 학교 본관 동쪽 낙우송 한 그루 앞에는 이런 표지석이 놓여 있다. 옆에는 나란히 1963년, 1983년 세운 표지석이 보였다.

수피아여고 낙우송의 캐노피(가지와 잎으로 덮인 나무 상층부).

학생들 키보다 작았던 묘목, 이제는 ‘어른 나무’

1962년 11월 어느 날 수피아여고 1학년 C반 종례시간이었다. 여느 때처럼 길지만 즐거운 종례시간이 시작됐다. 단짝이던 두 친구가 20년 만에 경찰과 도둑으로 만난 이야기를 그린 단편소설 <20년 후>(오 헨리). C반 담임인 한덕선 선생님이 읽어준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20년 뒤에 만날 나무를 한 그루 심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이듬해 10월9일, 한 선생님이 낙우송 묘목을 하나 구해와 C반이었던 학생들과 함께 심었다. 나무 앞에는 ‘학급기념식수 먼 훗날을 위하여 AFTER 20 YEARS(20년 후)’라고 새긴 팻말을 세웠다. 당시 서너 살가량 된 묘목의 크기는 키 1.17m, 밑동 둘레 12㎝였다.

“한덕선 선생님은 여학교에 처음 부임해 저희가 첫 담임 반이었어요. 별명이 ‘미스터 칩스’였어요. <굿바이 미스터 칩스>(제임스 힐턴)라는 소설 속 학생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선생님 같았죠. 화학 선생님인데, 종례시간이면 (가곡) <겨울 나그네>도 틀어주고 문학작품들도 읽어줬어요. 종례시간은 20분, 길게는 50분도 넘게 길어졌어요.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A반, B반에서 자기들 종례 끝나고 우리 반에 왔어요. (<20년 후> 책 이야기가 나온 뒤) 누가 장난처럼 ‘20년 뒤에 만나자’고 했고 또 누군가 ‘그럼 20년 뒤 만날 나무를 심자’고도 했어요. (나무를 심고 나서 20년 뒤인) 1983년에 정말로 C반이 모였어요. (다시 20년 뒤) 2003년엔 A반, B반까지 다 같이 만났어요. 내년이 또 20년이 되는데, 나무는 더 오래 살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번이 마지막이 되지 않겠냐… 이런 얘길 하면서 내년 모임을 준비하고 있어요.”

C반 반장이던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가 당시를 돌이켰다. 60년이 지나 열여섯 여고생은 일흔여섯이 됐고, ‘아기 나무’는 교장·교감 선생님보다도 나이 많은 ‘어른 나무’가 됐다. 처음 심을 때만 해도 학생들 키보다 작았던 나무는 1983년 9m, 2003년 16m로 쑥쑥 자랐다.

2022년 11월3일, 수피아여고를 찾아 수형(가지와 잎 생김새)이 둥근 낙우송을 줄자로 재봤다. 2003년 1.32m였던 가슴높이 둘레는 2.3m로 더 굵어졌다. 다만 키는 19년 전보다 더 작아졌다. 2012년 태풍 탓에 나무가 상처를 입고 기울어, 위쪽 30%가량이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졸업생들이 성금을 모아 지지대를 설치했지만, 길쭉한 고깔 같은 수형이 특징인 나무가 둥그스름하고 짤막해졌다.

이날 세월을 지킨 낙우송 앞에 제13회 졸업생들이 섰다. 20년, 40년, 60년… 세월을 함께한 나무 덕에 학창시절 기억이 또렷해졌다. 박오장(A반 반장) 전남대 명예교수는 2003년 모임 때 한덕선 선생님의 권유로 성경 구절(열왕기상 19장 5절,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을 읽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간 이 나무의 의미를 깊이 생각 못했어요. 그런데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아, 이 나무는 세상 속 시련을 겪다가 돌아올 학생들이 쉴 곳이었구나. 로뎀나무 그늘이구나. 쉬면서 새 힘을 얻는 곳이구나’ 생각했어요.”

1963년 10월 식재 당시 ‘수피아여고 낙우송’. 박영숙 제공

광주항쟁 때 교문에 드러누웠던 선생님

자기 반 종례를 마친 뒤 C반으로 뛰어가 두 번째 종례를 즐기던 ‘용감한 학생’ 이영현(B반 반장) 전 광주보건대 교수가 기억을 보탰다. “선생님 딸 현희가 우리 8년 후배예요. (선생님이) 병상에 계실 때 찾아뵈니, 제가 13회 졸업생인 건 아는데 딸이 몇 회 졸업인지는 못 맞히시더라고요. 그럴 정도로 우리를 특별하게 생각했어요. 2019년 봄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뒤늦게 낙우송의 꽃말이 ‘남을 위한 삶’인 걸 알고 다들 ‘아…’ 끄덕였죠.” 요양원을 운영하는 박영숙(C반)씨는 “(60주년을 앞두고) 1970년 결혼할 때 가져간 보따리를 처음 풀어봤다”며 1963년 나무를 심을 당시 담 너머 살던 선생님 가족, 기숙사 친구들과 낙우송을 배경으로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작가인 정화신(B반)씨는 한덕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했던 말들을 하나하나 기억했다. “화단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은 피타고라스의 법칙은 알지만 꽃을 밟고 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아는 지혜가 없는 사람이다” “눈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소량의 물과 염분뿐이지만 어머니의 눈물에는 화학방정식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더 많은 것, 사랑이 들어 있다” 등등. 정 작가는 “미남도 아니고 인기 과목도 아닌데 한 선생님 수업을 기다렸어요. C반 친구들을 보면 등불을 켠 듯 환했는데, 돌아보면 사랑받고 인정받는다고 느낄 때 생기는 자신감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조은 명예교수는 유학 뒤 귀국해서 전해들었던 1980년 광주항쟁 때의 이야기도 전했다. 휴교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기숙사와 합숙반 학생들이 시내로 진출하려고 학교 밖으로 몰려나오자 한 선생님이 교문에 드러누워 학생들을 막아 나섰다는 것이다. “교문 밖으로 나가면 죽거나 다칠 것을 알았던 선생님이 학생들을 막았고, 학생들도 차마 한 선생님을 밟고 갈 순 없어 발길을 돌렸을 거예요. 그래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나오듯 수피아여고 학생들이 (죽거나 다치는 대신) 주검을 거두는 일을 도울 수 있었을 겁니다.”

1학년 C반 학생들과 한덕선 선생님 가족. 박영숙 제공

화려하진 않지만 소중하고 우람한

코끝이 찡했다. 올려다보니 낙우송 나뭇가지를 따라 난 가늘고 긴 낱낱의 잎이 꼭대기부터 붉게 단풍이 들고 있었다. 겨울이 오면 온통 붉게 변한 잎이 가지째 뚝뚝 떨어진 모양새가 꼭 새의 깃털 같다고 해서 낙우(落羽)송이다. 솔방울과 비슷하지만 비늘 모양 조각들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인 구과(열매)도 풍성했다. 낙우송 구과는 새나 다람쥐의 식량이 된다.

정지준 수피아여고 교감은 “우리 학교엔 셀 수 없을 정도로 나무도 많고 기념식수도 많지만 이렇게 20년마다 졸업생들을 모이게 하는 나무는 이 낙우송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 특별한 사연은 후배들에게 영감을 줬다.

“40여 년 동안 모진 풍파와 비바람을 다 맞으며 견뎌왔을 내 나무(낙우송)와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샌지 속이 후련해지곤 합니다. (중략) 비록 동백꽃이나 벚나무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저의 마음속의 내 나무(낙우송)는 세상 그 어떤 나무보다 소중하고 아름답고 우람한 존재입니다.”(<수피아 100년사>, 2003년 중2 김소정)

60년 전 심은 낙우송처럼 59년 전, 58년 전 심은 ‘제2, 제3의 낙우송’은 왜 없을까. 한덕선 선생님은 이 학교에서 14년간 근무했다. 수피아여고를 졸업한 뒤 학교에서 30년가량 국어를 가르친 오흥숙(17회·1969년 졸업) 수피아장학회 이사장의 설명이다. “(낙우송 같은) 기념식수는 매년 합니다. 우리 동창들도 한덕선 선생님께 배웠고, 꽝꽝나무를 심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새로 건물을 짓는다고 말도 없이 베어버렸어요. 그렇게 옮겨지거나 베어지면서 사라집니다. 심긴 했어도 졸업생이 다시 찾지 않기도 해요. 그래서 저 낙우송이 특별한 겁니다.”

이날 함께 낙우송을 살핀 김세진 전 광주생명의숲 사무처장은 “생육상태는 좋은 편”이라면서도 “옆에 시멘트 길도 잔디 블록으로 바꿔주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낙우송의 특징인, 지상으로 뽈록뽈록 솟은 공기뿌리의 일종인 ‘무릎뿌리’(knee root)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임효인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사는 “낙우송은 습지 등 물이 많은 지역에서는 숨을 쉬기 위해 공기뿌리가 발달하지만 학교 같은 곳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2년 11월3일 수피아여고 역사관 앞에 선 졸업생들. 오른쪽부터 박오장(1965년 졸업), 홍인화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장(1983년 졸업), 이영현(1965년 졸업), 오흥숙(1969년 졸업) 졸업생과 정지준 교감. 이 역사관은 박오장·이영현 졸업생의 고교 1학년 시절 교실이었다.

‘미스터 칩스’는 왜 낙우송을 심자고 했을까

낙우송류의 나무는 오래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세쿼이아국립공원에선 3천∼5천 살 자이언트세쿼이아 숲이 확인되기도 했다. 임효인 연구사는 “미국 남동부에 낙우송 군락지가 있는데 보통 600년, 길게는 1200년 이상도 산다”고 말했다. 전설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왜 낙우송이었을까. 한덕선 선생님에게 제자들은 미처 묻지 못했다고 한다. 정화신 작가가 ‘2003년 40주년 만남’을 돌이키며 쓴 수필에 그 답이 일부 담겨 있다. “선생님은 언젠가부터 신화와 전설의 자리로 가 있던 낙우송을 다시 안식의 나무, 만남의 나무로 우리 안에 심어주고 싶으셨는지 모른다. (중략) 이제 바라기는 우리 안에 심은 로뎀나무가 교정에 있는 낙우송처럼 세월 따라 그늘 넉넉한 나무로 자라서 그 그늘 아래서 쉼을 얻고 다시 새 길을 떠나는 수피아 식구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선생님 닮은 로뎀나무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정말 좋을 일이다.”

광주=글·사진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나무 전상서: 나무를 아끼고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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