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끼리 싸움붙인 교육행정···“그럼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할까요?”

류인하 기자 2022. 11. 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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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역세권 A3블록 신혼희망타운 건설현장 너머로 율현초 배정 반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류인하 기자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건물 앞에 검은 옷을 입은 30여 명의 사람이 피켓을 들고 모였습니다. 집회를 시작한지는 이날로 19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들은 수서역세권A3블록 신혼희망타운 입주예정자의 자녀들이 율현초등학교로 배정되는 것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입니다. 참석자들은 “학교지정의 지연은 불필요한 지역갈등을 조장하므로 신속한 학교지정을 촉구한다” “우리는 모든 아이들을 위해 더 이상의 과밀은 방관하지 않는다”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바로 옆 채 20m도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는 또다른 30여 명의 학부모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집회를 이어갔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아이가 율현초등학교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수서역세권 A3블록 신혼희망타운(신희타) 입주예정자들입니다. 수서역세권A3 신혼희망타운은 2023년 6월 입주를 앞두고 있습니다.

집회만 보고 있으면 ‘율현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학부모’와 ‘신희타 아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율현초 학부모’의 전형적인 대결구도가 그려집니다. 자, 그러면 둘 중에 누가 나쁜 사람일까요?

이 이야기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19년 12월 ‘수서역세권 A3블록 신혼희망타운 입주자 모집’ 공고를 냅니다. 공공분양물량 398가구가 우선 분양되고, 1년 뒤 행복주택 199가구가 분양됐습니다. 총 597가구가 들어서는 중형급 단지입니다.

신혼희망타운 초등학교 배정 둘러싼 갈등

신혼희망타운은 필연적으로 아이들이 많습니다. 혹시 신혼희망타운 공공분양 자격조건을 아시나요. 공고일 현재 혼인 중이며, 혼인기간이 7년 이내거나 만 6세 이하 자녀를 둔 신혼부부나, 입주 전까지 혼인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예비신혼부부, 만 6세 이하 자녀를 둔 한부모인 사람만 청약이 가능합니다. 당연히 어린이집, 초등학교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 강남구 율현동 서울율현초등학교 정문에서 LH수서역세권 A3블록 신혼희망타운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류인하 기자

그래서 LH는 A3블록에 초등(이음)학교를 지을 부지를 따로 마련합니다. 당초 신희타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단지로 예정돼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학교가 들어섰다면 사실 이런 갈등도 불필요하죠. 그런데 돌연 부지 내 학교건립계획이 무산됩니다.

이유는 바로 ‘학령인구 감소’였습니다. 교육부는 신혼희망타운이 들어서는 자곡동도 향후 3~4년 이내에 학령인구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고 학교 신축을 불허했습니다. LH입장에서는 손해볼 일도 없습니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판단으로 학교건립이 무산됐으니 그냥 아파트만 지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부지는 현재 빈 공터로 남아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이곳에 수서중학교를 이전하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고 합니다.

자, ‘초품아’를 꿈꿨으나 학교건립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들은 신희타 입주예정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신희타 인근에는 총 3개의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길건너 바로 앞에 있는 율현초등학교와 도보거리 850m 떨어진 자곡초등학교, 1.8㎞ 가량 떨어진 수서초등학교입니다.

여러분이 부모님이라면 어디를 보내고 싶으실까요. 어차피 다 같은 공립학교(율현은 혁신학교입니다)로, 학교수준에 차이는 없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님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 아이가 되도록 횡단보도를 많이 건너지 않는 학교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율현초등학교가 갈등의 중심에 섰습니다.

기자가 신희타운 공사현장에서 각 학교까지 직접 걸어봤습니다. 원래라면 아파트 단지 가운데에서부터 측정하는 게 맞겠습니다만 공사현장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현장 양끝 펜스에서부터 측정을 해봤습니다. 율현초와 7차선을 두고 마주보고 있는 단지(302동)에서 학교까지는 성인 걸음으로 3분이 걸렸습니다. 대로를 두고 학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위치(301동 인근)에서 걸었을 때는 5분이 걸렸습니다. 율현초는 무엇보다 횡단보도를 한 번만 건너면 된다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자곡초등학교까지는 성인걸음으로 약 15분 가량 걸렸습니다. 문제는 횡단보도였습니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 4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1개를 건너야 학교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통학로 한쪽은 지식산업센터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해당 길이 아이들의 통학로로 지정돼 있으면 통학로 인접지역에서 공사를 실시할 경우 사업자는 관할구청에 통학로 안전계획을 제출해야 하지만, 공사가 먼저 시작된 지역은 이후 통학로로 지정되더라도 안전계획을 제출할 의무가 없습니다. 각종 대형 공사장비가 통학로를 지나다녀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통학거리는 1㎞가 채 되지 않지만 신희타운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당초 짓기로 한 초등학교는 계획에서 사라져

그러면 수서초는 어떨까요. 율현초 학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주장하는 방안이 바로 ‘수서초’ 셔틀버스 통학입니다. 수서초는 SRT수서역을 지나 도보로 몇 분 더 걸어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승용차로 약 6분 거리이고, 도보로는 30분 이상이 걸립니다. 아이들이 매일 왕복 1시간 이상을 걷는 것은 불가능하니 셔틀버스라는 대안도 나왔습니다.

수서초는 올해 2월 총 2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즉 학생이 적은 학교입니다. 특수학급 2학급을 포함해도 전학년 총 14학급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수서초는 신희타운 학군지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는 근거리배정이 원칙입니다. 집 바로 앞에 학교가 있는데 차를 타야하는 학교를 가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면 율현초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왜 율현초 학부모들은 19일째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앞에서 집회를 이어가면서까지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요. 단순히 내 아이를 신희타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보내기 싫다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일까요.

율현초는 강남에서는 드문 혁신학교입니다. 혁신학교에 대해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019년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내에 있는 가락초등학교와 해누리 초·중학교를 예비혁신학교로 지정하자 입주자들이 이에 반발, 항의집회를 이어가면서 한때 혁신학교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낮아지고, 성적도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괴담처럼 떠돌기도 했습니다.

서울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앞에 걸려있는 근조리본과 신희타 입주민 아이들 율현초 배치를 반대하는 각종 글이 걸려있다. 류인하 기자

그런데 율현초는 특이하게도 학부모들의 큰 지지를 얻으며 몇 년째 혁신학교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혁신학교는 교사의 역량 하에 아이들의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다양한 체험교육을 실시합니다. 혁신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한 반의 학생수는 최대 25명을 넘지 않을 것. 학생 수는 적을수록 좋습니다.

율현초는 그러나 기존 목공실, 영어실 등 특별실과 복도공간까지 일반교실로 전환해 겨우 교사 1인당 학생 수 24.9명(2022년 기준)을 맞춰놓은 상태입니다. 당초 전교생 750명을 예상하고 지었던 학교건물에 지난 10월 기준 932명의 학생이 재학 중입니다. 혁신학교로서는 이미 초과밀인 셈입니다.

신희타운에서 초등학교를 진학하게 될 학생 수는 236명입니다. 일부는 2023년 6월에, 일부는 2024년 이후에 순차적으로 입주할 예정입니다. 순차입학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우선 236명이 한꺼번에 입학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했을 때 2023년 2학기 율현초 재학생 수는 1168명이 됩니다. 2023년 2월 졸업생, 2023년 3월 신입학생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순산술입니다. 이 경우 율현초등학교는 혁신교육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미 없는 교실까지 만들어서 혁신교육을 하고있는 학교에 ‘무조건 학생을 다 받아라’라고 하면 끝날 일이 아닌 것입니다.

향후 3~4년 뒤에는 학급 당 학생수가 25명 미만으로 줄어들테니 당장의 3~4년은 그냥 참으라고 하면 될까요. 그래도 혁신교육보다는 아이들의 학습권 보장이 우선이니 율현초로 배정하는 게 옳을까요.

과밀에 무늬만 ‘혁신학교’ 처지 놓인 율현초

사실 이 이야기에서는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주체가 계속 빠져 있었습니다. 바로 교육부와 강남서초교육지원청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어디까지나 강남서초교육청이 먼저 해결할 일”이라며 발을 뺐습니다.

통상 학교예산 및 인력배치 등은 전년도 11월부터 확정을 짓습니다. 초등학교 2023년도 예산 및 교사인력배치 등 문제는 2022년 11~12월에는 어느정도 윤곽이 지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설령 신희타운 아이들이 2023년 9월부터 학교를 다니더라도 관련 계획이 2022년도 11~12월에 확정이 돼야한다는 것입니다.

수서역세권A3신혼희망타운 입주예정자들이 11일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고 있다. 입주예정자 제공

그런데 신희타운 입주예정자들은 자신들의 아이가 어느 학교를 다니게 될 지를 모릅니다. 간담회 등을 통해 “율현초로 가면 될 일”이라는 수준의 언질을 받은 게 전부입니다. 율현초 학부모님들은 불과 한 달 전 강남서초교육지원청으로부터 “신희타운 학생들이 이곳으로 통학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초등학교가 지어질 예정이었던 부지가 맹지가 되기까지 여기에 관여했던 교육부, 서울시교육청,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은 뒤로 물러나 있는 동안 모두가 피해자인 학부모들끼리 싸우고 있는 셈입니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도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교육부가 불허했는데 자기네들이 무슨 힘이 있냐는 것입니다. 전화통화를 한 담당자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우리는 학교를 지으려고 추진을 했었지만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에서 거부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남서초의 경우 학생 수가 여전히 감소하지 않고 있지만 서울의 다른 지역은 학령인구 감소로 통폐합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다보니 교육부도 과연 여기가 꾸준히 학생유발이 있는 곳인지, 분산배치가 불가능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합니다. 통상 행정절차를 끝내고 학교 1개가 시공~준공까지 마무리되는 데는 짧게 잡아도 3년 6개월에서 4년이 걸립니다. 때문에 2022년 기준이 아닌 2026년, 2027년에 학생이 몇 명일 것이냐는 예측치를 갖고 학교설립 가부를 결정하는 거죠. 저희가 의뢰한 사안에 대해 교육부에서 내려온 답변은 딱 한 줄이었습니다. ‘학교설립 수용 없음’. 즉 학생이 학교를 지어야할만큼 계속 발생하지 않고, 주변지역으로 분산배치가 가능하다고 교육부가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원청은 유치를 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안 지으려고 노력한 적은 전혀 없습니다.”

이달 중 신희타 입주예정자 자녀들의 배치학교를 정하는 통학구역조정위원회가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서 개최됩니다. 통학구역 지정은 교육장의 권한입니다. 물론 지역주민과 동주민센터의 의견도 반영합니다. 위원회가 열리고,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이 불친절한 행정절차의 피해자인 양쪽 학부모들은 집회를 이어갈 것입니다. 갈등이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할까요. 누가 나쁜 사람일까요.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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