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용산에 충신은 있나

강청완 기자 2022. 11. 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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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 아무도 안 말렸나

 
"좀 치사하지 않냐?"


대통령실의 이번 동남아 순방 MBC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를 두고 한 국민의힘 의원이 툭 던지듯 한 말이다. 사석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가장 온건한 수준이 이 정도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잠시 접어두고 정치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이번 전용기 배제 결정은 하책 중에서도 최하책이라 할 만하다. 대통령실과 일부 여당 의원, 극소수의 강성 지지층을 제외하면 어디서도 좋은 이야기를 듣기 어렵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국익'을 이유로 들었지만,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는 의문이다. 특정 언론사를 전용기에 태우고 말고의 문제로 국익이 지켜지고 안 지켜지고 한다는 말인가. 정말 국익에 위협이 된다면 취재 자체를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출입 제한이나 취재 금지도 아니고 (한다면 더 문제겠지만) 그냥 전용기를 못 타게 하는 건 불편을 주겠다는 의도 말고는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외신의 반응이 싸늘하다. 외신에서 이번 조치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국가 이미지의 문제다. 더군다나 '국익'이란 명분은 늘 권력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왔다. 유신 독재 시절 국민의 눈과 입, 귀를 틀어막은 건 '국익'이란 명분이었다.
 

누구 아이디어였을까.

MBC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는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추정의 영역이지만, 밑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여론의 악화와 야당의 공격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봐도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이는 이런 아이디어를 아래서 건의하기는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가장 힘들어지는 건 일단 언론과 부대끼는 대통령실 실무진들이다. 기자단과 사전 협의 없이 내린 결정으로 항의를 받아가며 온갖 비판과 따가운 시선을 현장에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과연 이런 제안을 했을까.

그러나 말렸어야 했다. 아무리 높은 곳에서 내려온 명령이라도 말이다.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위해서 말렸어야 했다. 그러라고 참모를 두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MBC의 모든 보도가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용기 탑승은 다른 문제다. 대통령실은 '편의'라고 말하지만 권력이 언론에 감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스스로 시혜처럼 칭하는 건 옳지 않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그것은 의무다. 언론사가 돈을 안 내는 것도 아니고 역대 정권 모두 제공해왔던 조치다. 이미 비행기는 떠났지만, 이번 조치는 시간이 지나도 윤 정권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가능성이 크다.
 

국익과 먼 결정, 대통령실에 충신은 있나.


사실 이번 일 뿐만이 아니다. 윤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맞아 이뤄진 SBS 여론조사에선 대통령 국정수행 부정 평가가 63.5%로 나타났는데, 부정 평가 이유로 두 번째로 많은 응답자의 27.1%가 '독선적 일 처리'를 꼽았다. 대통령이 독불장군처럼 비친다는 뜻이다. 그걸 바로잡는 게 참모들의 일이다. 직언하는 참모가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벌써 몇 달째 저공비행하는 지지율에 참모들의 책임이 없을 수 없다.

원로 언론인이자 정치인이었던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SBS와 인터뷰에서 상술한 외신 반응을 예로 들며 "대통령 자신이 국익을 현저히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지금 대통령실에도 유능한 언론인 출신이 많은데 그 사람들도 국익을 해치고 있는 것"이라고 참모들을 겨눴다. "대통령의 의사가 비록 그런 것이라도 '아니오, 이렇게 하면 큰 부작용이 생깁니다'라고 말하는 참모들이 왜 없느냐"는 말이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아예 한 방송에서 "용산에 충신이 없다"고 개탄했다. 흘려듣기 어려운 말들이다.

기원전 중국의 역사서인 <좌전>과 <열국지>에는 왕에게 충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기로 왕을 위협해 뜻을 관철시킨 뒤, 그 벌로 스스로 다리를 자른 '죽권'이란 인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덕에 나라는 큰 화를 피했고 왕은 죽권에게 경의를 표하고 큰 벼슬을 내렸다. 굳이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듣기 싫은 말이라도 직언하고 지도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하는 이가 진짜 충신이라는 건 만고의 진리에 가깝다. 직을 걸고라도 결기 있게 지도자에게 직언할 수 있는 참모가, 과연 용산에 있는지 의문스럽다.

강청완 기자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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