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교향곡

서울문화사 2022. 11.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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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어 엔진 스파이더 페라리 296 GTS의 지붕을 열고 토스카나를 여행하며 운전의 재미를 되찾았다.

스포츠카가 왜 존재해야 하느냐? 누군가 묻는다면 스포츠카의 짜릿함을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다. 덧붙여 스포츠카에서 우리는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이자, 산길을 개척하는 탐험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혜성 같은 존재가 된다는 점도 알려주고 싶다. 아주 잠깐이지만 빠른 속도를 제어하는 동안에는 잡생각이 사라졌다. 먹고사는 복잡한 문제는 제쳐두고 자동차와 나 그리고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도로만이 있을 뿐이다. 생각할 건 없다. 눈앞의 코너를 지나면 다음에 어떤 모양의 도로가 이어질지 예상하며 운전대를 꽉 잡으면 된다. 페라리 296 GTS를 몰고 있었다.

마라넬로는 이탈리아의 조용한 소도시다.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호텔 루프 바에서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군요’라고 말하자 페라리 마케팅 담당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저 공업 지역일 뿐이라고 귀띔했다. 마라넬로는 페라리의 본거지로 다음 모델 아이디어가 움터 실물로 생산되는 그야말로 페라리를 위한, 페라리에 의한 도시다. 그리고 우리의 토스카나 여정 출발지이기도 했다. 시승 전날 밤에는 페라리 296 GTS 브리핑이 있었다. 리틀 V12라 불리는 새로운 V6 엔진에 대한 설명과 고속에서 핸들링과 제동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공기역학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민첩함과 균형감을 자아내는 섀시의 장점, 엔진 사운드의 아름다움, 296 GTB와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830마력 하이브리드 시스템

앞서 공개된 296 GTB가 쿠페라면 296 GTS는 하드톱이 개폐되는 스파이더 모델이다. 수치상 쿠페보다 성능이 조금 낮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동력원은 V6 터보 엔진과 후방에 위치한 플러그-인 전기모터다. 두 시스템을 합치면 최대 830마력을 발휘한다. 후륜구동 스파이더 모델 중 성능은 최고 수준이다. 전기모터의 주행거리는 짧다. 최대 25km에 불과해 마을이나 도심에서 조용하게 이동할 때만 사용하는 편이 낫다. 굳이 엔진음으로 주목받고 싶다면 주행 모드를 퍼포먼스 모드로 바꾸면 된다. 하지만 296 GTS는 어디서나 존재만으로 이목을 끌었다. 페라리 296 GTS의 V6 터보 엔진의 이름은 ICE(Internal Combustion Engine)다. 뜨거운 엔진 이름을 얼음이라고 붙이는 센스! 마라넬로식 위트다. 엔진의 특징은 120도로 펼쳐진 실린더 뱅크다.

V 사이에서 동일한 간격으로 점화하는 터보를 장착해 엔진 크기는 최소화하고, 질량은 최적으로 분배됐다. 따라서 이 구조는 무게를 감소시키고 차량 전체의 무게중심을 낮추는 데 일조한다. 가장 큰 장점은 출력 향상이다. ICE는 최대 663cv를 발휘하고, 비출력은 221cv/L로 양산차 중 신기록이다. 전기모터는 포뮬러 1 애플리케이션에서 유래된 MGU-K(Motor Generator Unit, Kinetic) 모터를 사용한다. 7.45kwh 고전압 배터리와 함께 최대 122kw(167cv)를 발휘한다. 배터리 팩은 시트 뒤쪽 바닥에 배치해 고속 주행 시 무게중심을 낮추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했다. MGU-K 크기는 역시 콤팩트하다. 덕분에 파워트레인 길이를 줄이고, 휠베이스를 짧게 만들 수 있었다. 변속기는 8단 F1 DCT가 장착됐다. 조금의 충격도 없이 매끄럽게 변속되어 부드러운 주행 질감을 유지한다.

고속 주행을 위한 강력한 다운포스

집결 시간은 아침 7시 반이었다. 호텔 로비 앞에는 지중해에서 건져 올린 듯한 파란색 296 GTS 여섯 대가 도열해 있었다. 시승 코스는 약 4시간에 이르는 거리로 마라넬로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타고 볼로냐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토스카나 지역 산맥의 국도를 약 100km 달리고,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 약 100km를 달려 피사에 위치한 휴양지 ‘포르테 데이 마르미’까지 이르는 여정이었다. 기대감을 안고 출발했으나, 기다리는 건 이탈리아의 러시아워였다. 왕복 2차선 도로는 출근 차량으로 가득했고, 나의 296 GTS는 신호를 따라 서행했다. 정체 구간에선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작동했다. 이 최신 스포츠카는 주변의 다른 차량보다 조용했고, 부드럽게 이동했다. 아침 안개가 가시지 않았지만 신선한 바람이 쐬고 싶어 지붕을 열었다. 14초 만에 개폐되는 하드톱은 신호 대기 중에 여유롭게 여닫을 수 있다. 밭에서 나는 퇴비 냄새가 실내로 스며들어왔다. 그제야 잠이 깨고 정신이 맑아졌다. 이탈리아의 구수한 아침 향을 맡는 동안 정체가 조금씩 풀렸다.

296 GTS의 감성을 온전히 즐기려면 반드시 지붕을 열어야 한다. 지붕을 열어도 실내는 비교적 조용하다. 풍절음이 거세긴 하지만 소음이 모두 실내로 유입되는 건 아니다. 전화 통화도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다. 바람이 실내로 들어오지만 운전자의 머리를 매만지는 정도다. 바람이 어깨까지 내려오진 않았다. 296 GTS의 에어로 다이내믹이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었는지 체감되었다. 편안한 승차감을 보장하기 위해 운전석 내부의 난기류를 상쇄하고, 탑승자 주변 공기 순환을 관리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고 한다. 실내에서 재순환하는 공기 흐름의 양을 줄이도록 설계한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주행해도 운전자가 느끼는 피로는 적었다. 터널에서도 운전자에게 가해지는 바람의 양은 예상보다 적었다. 그럼에도 추위를 느낄 수 있기에 탑승자 목 부위에 따뜻한 바람을 보내 체온을 보호하는 넥 워머 기능도 탑재됐다. 하지만 나는 사용하지 않았다. 안개가 걷히고 하늘이 개자 정수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으니까.

시속 200km에 도달하는 시간은 7.6초에 불과하다. 가속페달을 지그시 밟으면 속도는 순식간에 200km를 넘는데, 이때 296 GTS에는 다운포스가 발생되어 차량은 노면에 바싹 붙고 운전자는 안정적인 주행 감각을 느끼게 된다. 296 GTS의 디자인은 최적의 공기역학을 위해 빚어졌다. 더 많은 다운포스를 발생시킬 수 있도록,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액티브 에어로 장치와 설계가 적용됐다. 특히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는 추가적으로 100kg의 다운포스를 만들어 조향력과 제동력을 극대화한다. 내가 운전대를 꽉 잡고 있어서 안정적으로 차를 컨트롤한다 착각했는데, 사실은 강력한 공기역학 디자인 덕분이었다.

와인딩 코스에서 완벽한 균형감

296 GTS

가장 즐거운 코스는 토스카나의 산길이었다. 좁고 굽이진 도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변속기는 매뉴얼 모드로 놓고, 주행 모드는 퍼포먼스로 바꿨다. 2단과 3단을 오가며 운전대를 이리 꺾고 저리 꺾으면서 길의 형태를 따라 세차게 달렸다. 코너를 앞두고 강하게 제동하면 순식간에 내가 원하는 만큼 속도가 줄었고, 동시에 균형감도 잃지 않았다. 마치 차량 앞쪽이 노면을 파고들며 내가 원하는 회전 포인트에 점을 찍는 것만 같았다. 제법 빠르게 회전 구간을 통과할 때에도 접지력을 놓치지 않고 오버스티어도 발생하지 않았다. 운전자는 오픈 에어링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풍광을 맞으며 이탈리아 문화의 정수를 체험하면 된다.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매끈한 외형 뒷단에선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자식 사이드 슬립 컨트롤 시스템은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을 조작할 때마다 타이어의 접지력을 예측하고 균형을 잡았다. 그래서 운전대를 이리저리 휘둘러도 정확하게 균형을 유지했던 것이다. 또한 296 GTS의 섀시는 이전 스파이더 모델에 비해 비틀림 강성은 50%, 굽힘 강성은 8% 개선됐다. 경량화를 거듭해 차량의 건조 중량은 1,540kg에 불과하다. 실제 주행 시에도 차량이 가볍게 느껴졌다. 물론 워낙 출력이 강하기도 하지만.

음악은 틀지 않았다. 애플카플레이 무선 연결이 가능하지만, 이탈리아 노래가 나오는 라디오를 틀어도 됐지만 필요 없었다. 당시 나는 V6 엔진음을 연주하고 있었다. RPM에 따라 소리의 결이 달라졌다. 소리는 날카롭지 않다. 찢어지는 부분도 없다. 부드럽고 웅장했다. 손에 익은 금관악기를 연주하듯 때로는 저음으로, 때로는 고음으로, 때로는 긴 호흡으로 가속페달을 밟아가며 토스카나의 목가적인 풍경에 음악을 흘려보냈다. 곡명은 교향곡 296 GTS 장조.

Editor :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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