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표시제 시행에도 헬스장·필라테스 “가격은 방문 문의하셔야…”
■ "체육시설 가격표시제 시행 이후 체감되는 변화? 전혀 안 바뀐 것 같다"
"체육시설 가격표시제 시행 이후 체감되는 변화? 전혀 안 바뀐 것 같다. 계도 기간이 끝난 지 꽤 된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필라테스 가격을 알아보는 게 여전히 어렵다. 곧 이사해야 해서 다른 지역의 필라테스 회원권을 끊어야 한다. 온라인상에 가격이 표시 안 됐거나, 되어 있더라도 실제 결제 금액이 다른 곳이 많더라. 일일이 전화하며 확인해야 한다"
-11월 초, 직장인 이 모 씨와의 인터뷰 내용 재구성-
"지난 4월 할인받아 PT(Personal Training, 개인지도) 30회를 120만 원에 끊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 10회만 하고 환불받기로 했다. 헬스장에 문의하니 할인받기 전 금액으로 환불 금액을 계산해야 한다며, 받은 PT를 1회당 10만 원으로 계산하더라. PT 10회 비용에 환불 수수료 10%를 더하니 110만 원이 나왔다. 환불받을 수 있는 비용이 10만 원이더라. (환불 기준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못 들었는데 억울하다"
-지난 10월 말, 한 카페에 게재된 누리꾼이 겪은 사연 재구성-
'개인지도 1회 1만 원대', '헬스 3개월 회원권 할인! 단돈 9만 원', '8만 원대 필라테스 개인 지도 무료 이벤트'
출퇴근길, 점심시간 등 길거리 위에서 이런 눈길을 끄는 체육시설 홍보 문구를 보신적 있으십니까?
최근 건강과 아름다움을 위해 운동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데요. 시장이 커짐에 따라 소비자 불만도 함께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격과 환불 기준'이 모호해 피해를 봤다는 사례가 많았는데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가 지난해 마련됐는데요. 기대와 달리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체육시설 가격표시제' 도입된 지 11개월 차…미이행률 40%
지난해 12월 27일, 체육시설 이용자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합리적 선택과 시장 경쟁을 도모하기 위해 '체육시설 가격표시제'(이하' 가격표시제'로 약칭)가 개정됐습니다.
가격표시제의 내용을 정리하면 '체육시설의 구체적인 서비스 내용, 요금체계(기본요금 및 추가 비용), 환불기준 등을 소비자가 확인하기 쉬운 사업장 내부, 홈페이지 등에 정확히 표시해야 한다'입니다. 가격표시제 대상은 헬스장, 수영장, 필라테스 등입니다.
지난 6월 26일까지 6개월여간에 계도 기간을 거친 가격표시제, 본격 시행된 지 어느덧 반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를 따르지 않는 업체들이 많아 소비자 불만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달 24일 강병원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받은 관련 자료에 따르면, 7월부터 9월까지 전국의 체육시설 1,003곳을 조사한 결과, 400곳(약 40%)이 가격표시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또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에 2022년 1월부터 8월까지 1,734건의 헬스장 관련 소비자 피해가 접수됐습니다. 2018년 이후 환급, 정보제공·상담 등에 관해 접수된 피해 건수는 1만 768건입니다.
■ 불만 접수 이어지지만 과태료 부과 '0건'
일각에서는 가격표시제를 향해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호한 제재와 강력한 처벌이 가격표시제의 빠른 활성화를 이끌고, 소비자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 가격표시제를 위반할 경우, 사업장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대 1억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는 지금까지 '0건'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오는 12월부터 자율시정 권고를 무시하고 가격표시제를 준수하지 않는 사업장에 한해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안전과 관계자는 "(가격표시제를 이행하지 않아서) 과태료를 부과한 곳은 아직 없다" 며 "가격표시제를 홍보하고 이행하도록 하는 게 1순위다. 현재 인원이 부족해서 각 지방의 소비자단체와 협력해 업체에 시정 요구를 하고 있다. 만약 계속해서 가격표시제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해당 업체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체육시설 관계자 "가격표시제? 저가 출혈 경쟁 우려돼"
11월 어느 날 서울시 한 필라테스 업장에 전화를 걸어 가격을 문의한 결과 "가격 문의는 유선으로는 답해드리기 어렵다"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해당 업체는 사업장 내에 책자 형태로 가격 등 서비스를 명시했으며, 홈페이지 등에는 환불 기준, 가격 등에 대한 사항이 명시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가격표시제가 시장에 원활히 적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 체육시설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수익 구조에 타격'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즉, 가격표시제를 따르지 않는 이유는 저가 출혈 경쟁과 가격 덤핑(생산비를 무시하고 가격을 많이 내려 판매하는 일)을 우려하는 셈입니다.
헬스트레이너 정 모 씨는 "헬스장의 주요 수익 구조가 회원권이다. 박리다매 형식으로 많이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업체들이 싼 가격에 회원권을 파는 것"이라면서 "업체들은 가격표시제에 따른 가격 경쟁을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A 업체가 3개월에 18만 원이라고 홍보하면, 다른 B 업체가 3개월에 17만 원을, C 업체가 3개월에 16만 원을 내놓을 수 있다. 이미 싼 가격에 회원권을 판매하고 있는데 공개적으로 더 싸게 내놔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다. 그래서 가격표시제 이행률이 낮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충남 천안에서 캥거루짐을 운영 중인 김성희 대표는 가격표시제에 대해 "많은 업체가 준수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면서 "주로 헬스장은 상담으로 PT나, 회원 등록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가격을 공개하면 경쟁에서 불리하다고 느낀다. 환불 규정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업계 분위기를 설명했습니다.
■ 전문가 "가격표시제 이행 위해선 제재 강화 필요…가격 경쟁보다 서비스에 집중할 때"
가격 경쟁 때문에 가격표시제 이행을 꺼린다는 체육시설 관계자의 의견에 대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헬스장이나 필라테스는 필수가 아닌 선택적 소비 대상이다. 서비스 표준화가 이루어져 있는 상황이다. 현재 아무리 인기가 많은 산업이라 하더라도,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욱 명확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선택이 이뤄질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습니다.
나아가 가격표시제에 대해 이은희 교수는 "소비자 상담 센터를 통해 체육시설에 대한 불만 신고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가격표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에 따른 아쉬움이 있을 것"이라면서 "공정거래위원회 인력으로 전국 1만여 개 이상의 체육시설을 관리하기는 힘들 거다. 가격표시제를 잘 준수하는지 모니터링하고 체육시설들이 잘 이행하는지 감시할 시스템이 따로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표시제 자체가 소비자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인데, 잘 유지되는 것 같다"며 "강제성과 행정력이 수반되지 않은 일반 단체를 통한 제도 홍보와 이행 촉구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본래의 가격표시제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단속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장영준 기자 (yj@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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