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경제 살얼음판인데…에너지 공기업 잇단 낙하산 논란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청년 세대가 피부로 느끼는 공정한 법 집행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공정한 입시와 취업을 보장하겠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청년 정책공약이다. 윤 대통령은 공공기관 낙하산을 원천 차단하겠다고도 밝혀왔다.
출범 6개월을 맞은 윤 정부에서 이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취임 초 대통령실부터 내각 구성에 이르기까지 불거진 숱한 인사 채용 논란을 보고 있으면 이미 평가는 내려진 듯하다.
물론 이는 비단 윤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별반 대수롭지도 않게 볼 수도 있다. 다만 국정철학의 핵심 가치로 '공정'을 유난히 강조해 온 정부의 출범이었기에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실망이 적지 않음은 사실이다.
바야흐로 논공행상의 시기가 도래했다. 역시 한때 정치권에서 소위 이름 좀 날렸던 이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정치권이 아닌 경제 관련 부처 산하 공기업의 수장으로서 말이다.
지난 10일에는 한국가스공사 신임 사장에 최연혜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내정됐다.
최 전 의원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입성한 후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의원과 새누리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지난 대선 당시에는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다.
한국철도공사 부사장·사장 등 공공기관장 경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에너지분야 전문성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실제 지난 1차 공모 당시 에너지관련 이해가 부족하다며 면접에서 탈락했지만, 적임자가 없어 재공모 절차가 이뤄졌고 재차 지원한 최 전 의원이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지역난방공사도 오는 18일 주주총회를 열고, 정용기 전 자유한국당 의원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정 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캠프 상임정무특보를 맡은 바 있다. 역시 에너지관련 전문성은 찾기 어렵다.
예견됐던 일이라는데 이전처럼 무덤덤하게 지나쳐야 할까. 그렇게 넘어가기에 현재 직면한 우리의 경제상황은 더없이 엄중하다.
'제3의 오일쇼크'로 비견될 정도의 혹독한 글로벌 경제 환경 속 그 중에서도 에너지관련 국내 공기업들의 재무여건은 이미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정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스공사의 재무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언제 받을지 모르는 미수금을 자산에서 제외하니 사실상 부채비율이 올해 6월 기준으로 356%→564%로 급상승했다.
가스공사는 원가보다 싸게 가스를 공급해 회수하지 못한 원료비 미수금이 5조4000억원(올해 6월 기준)에 이른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원가부담이 증가했지만, 장기간 민수용 요금이 동결돼 미수금이 급증한 것이다. 2021년말 2조원대였던 미수금도 3조원으로 뛰었다.
이처럼 가뜩이나 혹독한 글로벌 경제 환경의 파고 속 아마추어 선장에게 배를 맡겨도 괜찮은 걸까. 관련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도 뚜렷한 대안을 찾기 힘든 위기상황이지만, 우리는 여느 때처럼 공기업 수장 자리쯤은 선거 후 나눠가지는 전유물로 여기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사외이사 선임 건은 더 말문을 막히게 한다. 한수원은 지난 1일 사외이사에 모 인사를 선임했는데, 자격논란이 일자 본인이 직접 선임 9일 만에 사임하는 촌극을 빚었다.
원자력발전 등 에너지 분야 전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가 밝힌 이력은 포항에서 숙박업을 했고, 지난 5월부터는 지역 한 언론사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게 전부였다. 이전에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포항북구당원협의회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른바 '낙하산 인사'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권은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타당성을 부여한다. 정치적 신념을 같이하는 이들을 중용함으로써 국정운영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명분이다. 일정부분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유독 윤석열 정부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도 없다. 다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경제 위기는 아마추어 선장에게 기댈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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