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Eye] "그 엄마 북한사람이래"…영국 사는 남북 부모들의 '고민'

최윤정 2022. 11.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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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출신 교민 대담…남한 교민과 탈북민 모여 사는 영국 뉴몰든
학교서 만난 아이들, 남북 구분 없이 어울려…정체성은 공통 관심사
영국 런던 단오 행사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2022년 6월 12일영국 내 남북한 출신 한인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런던 뉴몰든 인근 한 공원에서 단오 행사가 개최됐다.민주평통 영국협의회와 영국탈북인협회가 공동으로 추진한 이날 행사에서 남과 북 출신 부모를 둔 어린이들이 어울려서 뛰어놀고 있다. 2022.11.13 merciel@yna.co.kr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아이 학교 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어느 날 소곤거리며 말했어요. '옆 반 엄마, 북한 사람이잖아'. 그 말에 당황해서 '저도 북한 사람이에요'라고 답했다가 사이가 서먹해졌어요."

영국 런던한겨레학교 학부모회장인 김미연씨는 12일(현지시간) 주영한국대사관 주최, 민주평통 영국협의회 주관으로 런던 한인회관에서 개최된 남북대담에 패널로 참석, 탈북민 출신으로서 한인들이 모여 사는 영국 뉴몰든에서 아이를 키우며 겪은 일화를 털어놨다.

런던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한 시간 떨어진 뉴몰든은 유럽 최대 한인 거주지로, 2000년대 중반 탈북민들이 모이면서 남북한 출신 한인들이 어울려 사는 지역이 됐다. 이 때문에 뉴몰든은 '미리 이룬 통일촌'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금은 탈북민 일손이 없으면 이 지역 한국식당과 마트 등은 굴러가기 어려운 정도다.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숫자는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500∼800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남북 출신 부모를 둔 아이들이 같은 '코리안'으로 뒤섞이다 보니 탈북민들의 자녀 교육과 정체성 고민은 남한 출신에게도 남 일이 아니다. 서로 학부모로서 어떻게 대할지, 아이에겐 뭐라고 말해줄지 몰라서 난감해하곤 한다.

5살, 9살 두 딸을 키우는 김미연씨는 "나를 남한 출신으로 알고 그렇게 말을 한 아이 같은 반 남한 출신 친구 엄마께 나중에 물어보니 당황해서 잠깐 피했던 것뿐이지 북한 사람이라고 해서 싫어진 것 아니라고 했고, 이후엔 관계가 좋아졌다.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엔 북한에서 왔다고 해도 평범하고 편안하게 여기는 시대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영국 남북대담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12일(현지시간) 런던한인회관에서 주영한국대사관 주최, 민주평통 영국협의회 주관으로 남북대담이 개최됐다. [민주평통 영국협의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런던한겨레학교에선 이미 학부모들이 서로 남북 어는 곳 출신인지 모르는 채 교류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설명했다. 2014년 탈북민들이 자녀들의 우리말 교육 등을 위해 모여 만든 이 학교에는 지금은 남한에서 온 부모의 아이들도 많이 다닌다.

실제 기자가 6월 런던한겨레학교 행사에 참석했을 때 만나본 젊은 학부모들은 출신 지역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뉴몰든 생활이 오래되면서 북한 사투리가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차피 영어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으니 구분은 거의 불가능하다.

김미연씨는 아이의 정체성 고민을 함께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아이가 처음엔 영국에서 태어났으니 영국인이라고 하더니 어느 날은 같은 반에 한국에서 새 친구가 왔다면서 '나는 누구냐, 엄마는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엄마는 북한에서 왔다'고 답을 하자 그때부터 김정은, 핵 등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더니 지금은 BTS·블랭핑크가 좋아서 한국 사람 하고 싶다고 한다"며 웃었다.

김미연씨는 "처음엔 북한아이란 호칭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좀 더 좋은 표현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정도"라고 했다.

그는 "아이에게 누가 물으면 엄마는 북한 사람이라고 말하라고 당당히 얘기한다"며 "다만 그럴 경우 나올 반응에 아이가 대응할 수 있도록 북한 부모 밑에서 자란 것의 의미를 알려주려고 한다. 앞으로는 아이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돼서 누가 '말투가 이상해'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런던한국학교 방성현 역사교사는 "담임을 맡은 중3 반에 12명 중 1∼2명이 탈북민 자녀인데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잘 지내지만, 어느 날 한국전쟁 교육을 하다가 우리나라가 부산까지 후퇴했다고 하자 '왜 우리나라라고 하느냐'고 지적해서 표현 하나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싶었다"고 털어놨다.

영국 런던한겨레학교 학생들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런던 한겨레학교 학생들이 2022년 6월 18일 한국전 참전용사 브라이언 호프씨와 함께 런던 뉴몰든 지역에서 평화를 기리는 행진을 하고 있다. 이날 행진에는 한겨레학교의 남북 출신 가정의 아이들이 함께 참여했다. 2022.11.13 photo@yna.co.kr

영국 탈북인협회 강지민 교육부장은 "부모가 남북 어디서 왔든 아이들이 학교 때는 괜찮은데 사회에 나가면 영국에서 소수자라는 현실을 깨닫고 방황을 하곤 한다"며 "어릴 때 정체성 교육을 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탈북인 입장에선 영국에선 남북 출신 모두 외국인 노동자로 출발선이 비슷하고 한국에서 보다 차별을 덜 받는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너무 주목을 받으니까 불편하지만 살다 보면 익숙해진다"며 "남북 차이를 지역 색깔이 다른 정도로 이해하고 차별 없이 받아주면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옥스퍼드한글학교 학부모 문효심씨는 "남북민이 명절을 함께 쇠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정체성 교육을 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사회를 맡은 민주평통 정경선 교육기획분과장은 "2009년 영국이 탈북민 망명을 중단했으니 그때 태어난 아이들부터는 북한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우리가 계속 북한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게 합당할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여철 주영한국대사는 축사에서 "한국을 제외하고는 탈북 동포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영국에서 남북 동포가 대화할 기회가 마련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행사로 동포 사회 화합과 협력이 강화되고, 이런 노력이 한반도 평화, 안정, 궁극적으로 통일 기반 조성에 보탬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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