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왜 앙겔라 메르켈은 다른가
앙겔라 메르켈
우르줄라 바이덴펠트 지음, 박종대 옮김, 사람의집 펴냄
“나는 옳기 때문에 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게 지금 가능하기 때문에 하는 걸까요?”
앙겔라 메르켈은 왜 강한가. 16년 동안 총리를 지내며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을 유럽연합의 리더 국가로 변모시켰다. 캐릭터가 센 독일의 선배 남성 정치인만이 아니라 트럼프·푸틴과 같은 전 세계 ‘스트롱맨’도 상대해야 했다. 이 모든 걸 메르켈은 조용히 처리해냈다. 그래서인지 메르켈 리더십은 그의 역할과 재임 기간 및 성과에 비해 덜 알려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독일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그런 메르켈에 대해 “특별한 것이 없는 것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메르켈의 강점만이 아니라 약점, 과오까지 짚어 메르켈 리더십에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우리, 편하게 말해요
이금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잘 듣지 않고 말을 잘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편안하게 말하는 사람. 방송인 이금희씨 하면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는 33년 동안 방송 일을 해왔고, 22년 6개월 동안 대학에서 말하기를 강의해왔다. 현장에서 익힌 말하기 노하우를 책으로 펴냈다. 1999년 에세이를 출간한 이후 23년 만에 새 책을 내놓았다.
그가 말하는 말하기의 태도와 기술. 달변을 뜻하는 게 아니다. ‘말더듬거릴 눌’ 자를 써서 서툰 말솜씨를 ‘눌변’이라고 하는데, 눌변이지만 필요한 말을 적절히 해서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제대로 듣는 게 시작입니다. 낮게 천천히 말해봐요. 위로의 말은 한 박자 늦게.’ 구어체로 쓰였고, 쉽게 읽힌다. 소리 내어 따라 읽어봐도 좋겠다.
주의력 연습
아미시 자 지음, 안진이 옮김, 어크로스 펴냄
“산만함은 살아 있다는 것의 일부분이다.”
시험 전날 책상 서랍을 정리하거나, 마감을 앞두고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일. 내 게으름과 나약한 의지 때문일까? 사실 산만한 뇌는 생존의 증거다. 인류는 끊임없이 외부 위협에 대응하며 진화했다. 숨은 포식자를 찾는 데 산만함은 유리하게 작용해왔다. 문제는 현대사회엔 그 ‘자연스러운 일’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주의력’이 매우 귀중하고 유한한 자원이라는 점을 짚는다.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태는 ‘소중한’ 타이밍이다. 이것이 궤도를 이탈했을 때의 신호를 포착하는 데서 주의력 연습은 시작된다. 일의 능률뿐만 아니라 삶에 집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사랑의 노동
매들린 번팅 지음, 김승진 옮김, 반비 펴냄
“돌봄은 개개인의 삶이 갖는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사결정을 집합적으로 내리는 영역이다.”
온라인에서 이뤄질 수 없는 일이 있다. 목욕을 시킨다, 식사를 챙긴다,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다. 돌봄은 ‘물리적’이다. 표준화되지 않는 ‘암묵적 지식’의 세계다. 예측 불가능한 것은 병들고 늙어가는 신체뿐만이 아니라 감정이기도 해서, 돌보는 일은 한층 어려운 일이 된다. 그 최일선에서 여성들은 때로 착취당한다. 저자는 돌보는 사람들이 “경험에 의미와 존엄을 부여하는 더 큰 사회적 맥락에서도 고립되어 있다”라고 지적한다. 꼼꼼한 취재 위에 치료와 회복, 관계를 주제로 한 문학 이야기가 포개진다. 나를 돌보는 사람과 내가 돌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결국 우리의 ‘미래’임을 설득해낸다.
어제를 향해 걷다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 상추쌈 펴냄
“무엇을 위해 살 것이냐 또한 두 풀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저자에겐 흙이었다. 습기를 머금은 땅. 그다음이 물과 바람, 나무와 불이다. 이 다섯 가지를 소중히 여기며 사는 것을 천명으로 여긴 저자는 1977년 규슈 남쪽 야쿠섬에 정착했다. 대학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하다 중퇴한 뒤 부조쿠라는 이름으로 자연 속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가 섬으로 옮겨간 뒤에는 농사짓고 집을 돌보며 마을을 살리는 데 힘썼다. 농부이자 시인이자 수행자로서 일상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아내와 아이들, 닭과 돼지, 수국과 나무에 대한 시선 속에 그의 철학이 드러난다. ‘다른 삶’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시선집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도 함께 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제임스 체셔·올리버 우버티 지음, 송예슬 옮김, 윌북 펴냄
“이 책은 문자나 숫자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정보의 세계에 부치는 송가이다.”
데이터 더미를 정제하고, 그것을 시각화하여 지도라는 전통적인 그래픽과 결합시키는 작업은 권력의 분산을 이뤄낸다. 이 책은 기후, 전염병, 불평등처럼 전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를 지도로 만들었다. 가령 국가별 여권 파워로 이동 권력이 불평등하다는 걸 보여주고, 포경 데이터를 지도로 표현해 바다가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피로 물드는지 살펴본다. 이렇게 정제된 비주얼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다. 데이터 작업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안다. 이 정도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데이터 교정과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저자들의 피·땀·눈물이 느껴지는, 소장 가치가 높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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