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사망자' '웃기고 있네'...'국민정서 감수성' 상실시대

강은영 2022. 11.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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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에 향하는 CCTV...사생활도 자격 요건
이 와중에 모바일 메신저 상태 수정..."공감 능력↓"
'죄송한 마음' '마음의 책임'..."언어감수성 필요"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지난 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현안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의 이태원 참사 관련 대화 내용을 전달하던 중 울먹이고 있다. 뉴스1

"웃기고 있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도중 나온 필담 내용이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의 메모장에 적은 문장이었다. 야당 의원들이 참사 당시 대통령실의 대응이 적절했느냐 등을 놓고 질의하는 순간 취재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유야 어찌 됐건 국민들은 분개했다. 이번 참사가 경찰의 대응 부실 등으로 국가의 잘못임이 드러난 마당에, 메모장에 적힌 다섯 글자는 납득할 수 없는 태도였다. 누리꾼들은 "당신 자식들 150여 명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어도 저런 행동을 할까(ow*****)", "국민들은 안 속는다(jj******)", "국정감사에서 저런 장난을 한 건 국민을 우습게 본 것(ss******)", "정치판 넌덜머리 나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성공했다(vi******)" 등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국민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왜 국민들과 '이심전심'이 안 될까. 국민정서에 공감하려는 능력을 점점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고위공직자·정치인 향한 CCTV...사생활도 공감 능력 키워야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CCTV에 찍힌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의 모습. CCTV 화면에는 다수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밤 10시 55분께 이 서장이 이태원 앤틱가구거리에서 뒷짐을 진 채 이태원파출소로 걸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연합뉴스TV 제공

"참사 당일 용산경찰서장은 설렁탕 먹고 뒷짐 지고 걷고 너무 여유롭던데요. 경찰청장은 캠핑 휴가 즐기고요. 사생활이라기엔 150여 명이 희생당한 날이잖아요."

고등학생 김진수(18·가명)군은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당일 주요 공직자들의 행적을 확인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글을 작성해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올렸다. 하지만 그는 "생각할수록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을 반복했다. 윤희근 경찰청장, 이임재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의 참사 당일 동선은 언론에서도 연일 꼬집는 대목이다.

고위공직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이번처럼 대거 공개된 적이 없었다. 주로 사건이나 범죄 현장 점검을 위해 활용되는 폐쇄회로(CC)TV가 소위 나랏일을 한다는 공직자들을 향해서도 존재했다.

CCTV로 공개된 장면이 많은 이임재 전 서장은 가장 질타받는 인물이 됐다. 이태원 참사 직전 사고 위험을 보고받았을 시간에 식당에서 설렁탕을 먹고, 현장 인근을 관용차로 이동하면서 1시간을 허비했다. 여기에 관용차로 빙빙 돌다가 뒤늦게 내린 그는 뒷짐 지고 걷는 모습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가장 급박했던 순간에 가장 느긋하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의문점도 생겼다. 거의 1시간 동안 관용차에서 무엇을 했으며, 이태원파출소에 도착 후 옥상에 올라가 30분가량 머문 이유가 무엇인지. 이 서장을 직무유기,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서 풀어야 할 숙제지만 국민들 역시 궁금증이 커지는 상황이다.

여론도 이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누리꾼들은 "미리 계획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나(ca******)", "마치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긋하고 평화롭다니(go******)", "세월호 참사 당시 컵라면 먹다 경질된 장관도 있다는 것 기억해라(fb******)", "대통령, 정부의 책임도 크지만 경찰서장의 행적이 너무 수상하다(ab******)" 등으로 반응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인파관리(Crowd Management) 대책 TF'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희근 청장도 온라인 속 사생활이 도마에 올랐다. 캠핑 휴가를 갔다가 잠이 들어 상황 보고 연락을 두 차례나 놓친 것도 모자라 모바일 메신저 배경화면을 바꿔 논란이 됐다. 지난 5~6일 하루 반나절 동안 3번에 걸쳐 일명 프로필 사진 등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보도가 나가자 사진 등을 내리며 한 차례 더 휴대폰에 손을 댔다.

개인 모바일 메신저 상태를 손볼 수는 있다. 하지만 타이밍이 문제였다. 참사 4시간 전부터 신고가 접수되는 등 경찰의 부실한 대응은 연일 폭격을 맞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휴대폰 속 자신의 심리 상태에만 몰두한 윤 청장의 행동은 국민정서를 이해하려는 감수성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다.

김은혜 홍보수석도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 김 수석은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다 울먹이며 눈물을 흘렸다. '웃기고 있네' 필담 관련 사과를 했지만 "악어의 눈물"이라 비판받으며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고위공직자가 국민정서를 공감하지 못하는데 국민이 어찌 그를 이해할 수 있나(kw******)"라고 일침을 가했다.

최근 감수성은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자질로 꼽힌다. '성인지 감수성' '인권인지 감수성' 등이 등장한 것도 그간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의 잘못으로 인해 등장한 용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감 능력을 갖춘 고위공직자나 정치인을 만나기 쉽지 않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를 통해 공감 능력과 감수성을 지닌 인재가 미래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말이다.


"언어 감수성이 필요한 시대...'죄송한 마음' 아닌 '죄송합니다'"

서울시는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5일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의 현판 문구를 '이태원 사고 사망자'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로 변경했다. 위쪽 사진은 이날 수정된 문구를 적은 현수막, 아래쪽은 지난 4일 수정 전 사용된 현수막의 모습. 뉴스1

"이달 초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현수막이 바뀐 걸 보고 한 번 더 간 겁니다.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장소인데 무엇이 중요했던 걸까요?"

직장인 한상훈(48·가명)씨는 지난 3일과 5일 두 차례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다. 그가 초등학생 딸과 함께 분향소를 두 번 찾은 건 현수막 때문이었다.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라고 적힌 현수막이 '참사 희생자'로 수정된 것이다.

한씨는 이 같은 상황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희생자를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자리가 "현수막 교체 문제로 괜한 감정 소비만 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논란은 행정안전부가 이태원 참사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전국 17개 시·도에 '참사가 아닌 사고로 표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면서 불거졌다. 3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참사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던 순간, 정부는 '중립적인 표현'을 쓰겠다며 지침을 내렸다. '참사' 대신 '사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 '피해자' 대신 '부상자'로 표기하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참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조치에 국민들은 의아할 뿐이다. 주부 이은성(42·가명)씨는 정부가 지침까지 내려 단어 사용을 조율했다는 언론 보도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씨는 "정부가 사안의 경중을 전혀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과 공감하려는 노력이 없어 보였다"면서 "참사가 사고로, 희생자가 사망자로 표현된다고 국가와 국민에게 이득이 될 게 뭐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지난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인들의 공감 능력 및 감수성 부족과 함께 고위공직자들의 '사과 화법'도 도마에 올랐다. 직접적으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는 표현을 극도로 자제해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추모 위령법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5일 서울 서초구 백석대 서울캠퍼스에서 진행된 위로 예배에선 "꽃다운 청년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은 영원히 저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과 대신 연이틀 "죄송한 마음" "미안한 마음"이라는 표현을 썼다.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비슷한 어법을 구사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애통함과 무거운 책임감에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라고 말했다. 박 구청장은 '어떤 책임인가'라는 질의에는 "큰 희생이 난 것에 대한 마음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과 박 청장의 어법은 5개월 전 대중문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유희열 표절 의혹' 사태 당시 '유희열식' 사과와 흡사하다. 당시 유희열은 온라인에 올린 사과문을 통해 시종일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죄송한 말씀을 전한다"라는 표현을 써서 더 공분을 샀다. 표절 자체는 인정했지만 직접적인 사과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의 사과문을 접한 누리꾼들은 "상당히 지능적인 사과"라며 표절에 대한 책임을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태원 참사를 통해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의 공감 능력과 감수성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에 '언어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가 아닌 '죄송한 마음'이 사과일까. 진정한 사과로 느껴질까"라며 "말이라는 건 듣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거지, 하는 사람을 위한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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