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 쓰기의 지겨움... "간편하고 쉽게 쓸 수 없을까요?" [내돈내산]

김정현 2022. 11.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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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쓰는 목적은 "돈 덜 쓰려고" 
지겹다면 '비정기적 지출' 예산 조여야 
가계부 공유 4년 차 고수의 비법
편집자주
'내 돈으로 내 가족과 내가 잘 산다!' 금융·부동산부터 절약·절세까지... 복잡한 경제 쏙쏙 풀어드립니다.
저축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의 최고금리가 6%를 가리키고 있다. 저축은행 소비자포털 캡처

예금금리가 6%를 돌파했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원금을 보장해주는데 수익률을 무려 6%나 챙겨주는 상품들이 진짜 나타났어요! 사기가 아닙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1억 원만 있어도 한 달 이자만 세금 떼고 42만3,000원을 준대요. 10억 원만 있으면 이자로 웬만한 연봉은 나올 것 같은데, 그럼 저는 회사를 그만두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자아실현을 위해 계속 다녀야 할까요?

허무맹랑한 고민이지만 새삼 '종잣돈'의 가치를 체감하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이자 갚느라 모아둔 돈도 없는데, 천정부지로 뛰는 예금금리를 보니 다 된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하지만 한탄만 하기엔 세상은 돈 들어갈 일투성이입니다. 기회를 잡는 방법은 결국 하나죠. 그럴수록 더 바짝, 더 독하게 돈을 모으는 것뿐입니다. 그래야 이번 기회는 놓치더라도 다음번엔 꼭 잡을 수 있으니까요.


가계부 쓰기가 지겨워진 당신에게

게티이미지뱅크

오늘은 종잣돈 모으기의 정석, 바로 '가계부 쓰는 법' 2탄을 준비했습니다. 지난번 1탄('부부 가계부' 써봤더니...)에서는 월급 실종 미스터리를 풀어봤어요. 읽어보면 더 좋겠지만, 요약하면 미스터리의 해답은 바로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기 때문으로 밝혀졌어요. 그리고 이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가계부를 써야 하고, 반드시 고통스러운 '결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죠.

2탄은 가계부 쓰기와 관련된 더 깊은 얘기와 함께 가계부 쓰기 '초고수'분을 인터뷰해 볼 예정이에요. 저처럼 '가계부 쓰기 매너리즘'에 빠진 중급 가계부 독자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처음 가계부를 쓰시는 분도 참고하면 좋습니다.


나는 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나

가계부를 1년 가까이 써 보니 쓰는 것 자체는 아주 쉬워졌습니다. 지출을 하면, 기록을 하고, 한 달이 지나면 항목별로 얼마를 썼는지 결산을 하죠. 그럼 생각합니다. '이번 달은 지출이 많았구나. 다음 달엔 좀 줄여야겠다'든지, '이번 달은 지출이 줄었네. 잘했다'는 식으로요. 그리고 다음 달이 또 시작되면 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죠.

그동안 쓴 가계부를 보면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결산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어쨌든 가계부를 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경제적 위안이 되니까요. 가계부를 쓰기 전보다 지출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늘어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처음 가계부를 썼을 때로 돌아가 볼게요. 애초에 우리가 가계부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탄에서 봤듯 가계부를 쓰면 ①우리집 지출 구조 파악 ②의식적 소비생활 ③계획적 미래 설계 등 효능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효능들은 가계부를 쓰고 난 뒤 얻게 된 결과지, 애초의 목적은 아니었어요. 우리가 가계부를 굳이 쓰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돈을 안 쓰거나' 혹은 '돈을 덜 쓰려고'입니다. 가계부를 쓸 땐 언제나 한 손으론 휴대폰 가계부 앱을 들고, 다른 손으론 그 목표를 꽉 잡고 있어야 했던 것이죠.


지겨워졌다면, 예산을 다시 통제해 보세요

현실적으로 돈을 아예 '안' 쓸 수는 없으니, '덜' 쓰기 위해선 기준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쓰거나 '덜' 쓰거나를 평가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1탄에서 말했듯, 각자 가정 환경과 경제관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기준을 제시할 순 없어요. 남들과의 비교도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대출 원리금·보험비·교육비·관리비·통신비·공과금 등 고정 지출은 더욱 그래요.

하지만 그간 가계부를 몇 개월 이상 써 오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고정 지출이 아닌 비정기적 지출은 상대적으로 본인 의지에 따라 더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을요. 게다가 우리는 그간 가계부 쓰기를 통해 식료품·외식비·생필품·모임·미용·의복·취미·여행·경조사 등 가족이 비정기적 지출에 얼마를 써 왔는지도 이미 알고 있어요. 일단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각 항목별로 얼마를 줄이겠다고 촘촘히 나누기보다는 비정기적 지출 전체를 대상으로 감축 목표를 재설정해 보세요.


가계부 인증만 4년째 '초고수의 비법'

유튜버 '순빠리네 쓰담여사'는 4년째 가계부 내역을 10일 단위로 인증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자, 이제 제가 특별히 모신 가계부 쓰기 '초고수'를 불러 볼게요. 먼저 소개하자면 이 분은 '돈을 덜 쓰겠다'는 에너지를 언제나 100% 충전하고 있는 동시에 비정기적 지출을 감축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특허까지 낸 분입니다. 가계부 쓰기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초고수 얘기를 참고해 보세요.

유튜버 '순빠리네 쓰담여사'가 자신이 개발한 가계부에 색칠하고 있다. '순빠리네 쓰담여사' 제공

-자기 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2018년 말부터 4년째 유튜브에 가계부 내역을 공개하고 있는 유튜버 '순빠리네 쓰담여사'입니다. 구독자는 5,000명 정도고요. 유치원·초등학생 자녀 두 명·남편과 함께 한 달 생활비 100만 원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어요."

-한 달 100만 원이요?

"네. 당시 월급에서 고정 지출을 빼고 나니까 쓸 수 있는 돈이 딱 100만 원밖에 없더라고요. 저도 처음 5개월은 한 번도 못 지켰어요. 사치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가계부를 쓰면서 한 번 성공하고 나니까 '꼭 지키고 싶다'는 욕심이 더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가계부를 쓰다 보니 4년 만에 순자산이 2배 늘어났습니다."

-순자산 2배요?

"애초에 모아둔 돈을 다 쓴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비율로 따지면 2배지만 기대하는 것처럼 절대액으로는 많지 않아요. 요새는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부부 모두 대기업은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이라 월 소득이 많은 편은 아니랍니다. 집은 수도권 구도심에 있는 아파트를 2억 원대에 구입했고요. 순자산에서 아파트 시세 상승분은 빼고 계산했어요."

유튜버 '순빠리네 쓰담여사' 집 거실에는 가계부가 자리 잡고 있다. '순빠리네 쓰담여사' 제공

-가계부는 어쩌다 쓰게 됐나요?

"첫 아이를 낳고 모아둔 돈 2,000만 원을 다 썼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휴직을 하면서 마이너스통장(마통)을 쓰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됐어요. 마통이 1,000만 원을 찍고 '내가 빚으로 아기 분유를 사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깜짝 놀라 마통을 갚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아기 둘을 키우는 주부가 뭘 할 수가 없잖아요. 생활비라도 아끼자는 심정으로 가계부를 집어 들었죠."

-유튜브를 보니 가계부가 좀 독특하더라고요.

"네. 직접 만든 '깍두기 가계부'를 사용하고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일반적인 가계부를 사용했어요. 그런데 엑셀은 둘째가 젖먹이라 컴퓨터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포기했고, 휴대폰 앱은 간단해서 좋긴 한데 앱 자체를 잘 안 열어보게 되더라고요. 직접 살림하고 있다는 맛도 떨어지고요.

그래서 애 둘 키우는 주부가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수기 가계부를 만들어 봤어요. 용지에 네모 칸 10개씩 100칸을 만들고, 1만 원을 쓸 때마다 1칸씩 색칠해 봤어요. 한 달 동안 비정기적 지출로 100만 원을 다 쓰면 100칸을 다 색칠하게 되죠. 집 거실에 가장 보기 좋은 자리에 붙여 놓고, 돈 쓸 때마다 색연필로 색칠하면 끝이에요. 저는 100칸으로 시작했지만, 각자 사정에 맞게 칸 수를 조절해 주면 됩니다."

유튜버 '순빠리네 쓰담여사'가 개발한 깍두기 가계부 설명서. 큰 네모 칸 하나는 1만 원을, 큰 네모 칸 안의 작은 네모 칸은 1,000원을 의미한다. 지출을 한 뒤 항목에 맞게 돈을 쓴 만큼 색연필로 칠하면 된다. 가계부는 각자 경제상황에 맞게 칸 수를 조정하고, 10일 단위로 중간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좋다.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 번거로울 경우 네이버쇼핑에서 PDF 파일을 구매할 수 있다. '순빠리네 쓰담여사' 제공

-효과가 좋은가요?

"가장 큰 장점은 결산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가계부는 결산이 제일 힘들잖아요. 한 달간 쓴 내역 정리해서 봐야 하고, 반성도 해야 하니까 그것 때문에 가계부가 쓰기 싫어지거든요. 그런데 깍두기 가계부를 쓰면 몇 칸 남았는지만 확인하면 돼요. 일반적인 가계부처럼 '얼마를 썼구나'를 생각할 필요 없이 '얼마가 남았구나'에 집중하니까 결산 과정이 생략되죠.

한 달이 안 지났는데 빈칸이 한 줄(10만 원) 남은 가계부를 본 뒤 마트에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출하기 전부터 경계심이 팍 들어요. 사고 나서 나중에 반성하는 게 아니라 살 때부터 소비가 통제되는 거죠."

한 달 100만 원 기준 '깍두기 가계부'가 완성된 그림. 유튜버 '순빠리네 쓰담여사' 제공

-갑작스럽게 큰돈을 써야할 때는요?

"네.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죠. 경조사들이 있으니까요. 그럴 때는 10만 원을 기준으로 넘어가면 예비비에서 별도 지출하고, 그 밑으로는 가계부에 색칠합니다. 가끔 다음 달로 이월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대한 해당 월에 해결하려고 합니다."

-가족 여가는 어떻게 보내요?

"아이들이 산, 강, 바다, 공원 등 뛰어놀 수 있는 곳을 좋아해요. 밖에서 같이 뛰어놀거나 배드민턴을 하거나 자건거를 타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돈을 안 쓰려고 그런 곳을 가진 않았는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저희 부부도 힐링할 수 있죠. 아이들이랑 놀러 가기 위해 7년 전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신차를 구매한 게 인생 최대 사치라면 사치겠네요."

-행복한가요?

"네. 가계부 쓰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지금이 더 행복하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지니까 걱정이 없어요. 처음엔 빚만 없으면 좋겠다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남아 있는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까 고민인 거예요. 4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놀라운 발전이죠."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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