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박수은 부산대의대 교수 “정조 아들 앗아간 것도 홍역…‘백신 회피’ 위험한 생각”
“백신 접종률 하락에 뉴욕서 소아바미 환자 나와”
“감기약값 인상보다 필수의약품 관리 해 주길”
“최상위 성적 학생 의대 지망 바람직 하지 않은 현상”
“사람에 관심있고, 이해하는 학생이 의사 되어야”
지난해 큰 인기를 끈 MBC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정조와 성덕임의 로맨스를 다뤘다. 성덕임은 정조의 후궁 가운데 유일하게 승은을 입은 여성이다. 숙종과 장희빈(장옥정)의 로맨스가 치정극이라면, 두 사람의 로맨스는 순정 만화에 가깝다.
승은을 계속 피하던 성덕임이 정조의 끈질긴 구애 끝에 아들 문효세자를 낳고 의빈 성씨에 오른다. 하지만 이 로맨스는 곧 비극으로 끝난다. 의빈 성씨는 문효세자를 다섯살에 홍역으로 잃고, 자신도 곧 병으로 죽고 만다. 홍역으로 자식과 처를 모두 잃은 정조가 정약용에게 전염병을 극복하는 의학서 ‘마과회통’을 쓰게 지시했다는 설도 있다.
박수은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 사례를 들며 “구중궁궐에 있는 왕의 자식도 감염병은 피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라며 “그 만큼 백신을 얻는 공중보건적 이득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마과회통’을 쓴 정약용도 자식을 홍역으로 잃었다.
정부가 올 겨울을 앞두고 추진하는코로나19 백신 추가 접종에 대한 국민적 호응이 낮다. 13일 기준 코로나19 백신 추가접종의 접종률은 60세 이상 연령대 인구 대비 9.6%에 그친다. 지난해 1⋅2차 접종 때와 비교하면 추가 접종률이 오르는 속도는 턱없이 더디다. ‘한번 걸렸는데, 또 걸리겠느냐’는 방심 등이 원인이겠지만, 백신이 없었던 과거 감염병 피해를 생각한다면 ‘백신 회피’는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이 감염병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에서는 생후 2개월부터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등 감염병 접종이 시작된다. 박 교수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국가예방접종’으로 추진하는 백신 접종률까지 전세계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며 “홍역 같은 감염병들은 전염력이 높아서 예방접종이 떨어지면 대유행을 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간 접촉이 줄어들면서 감염병 유행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착시에 불과하다”라고도 했다. 올 겨울 코로나19와 독감은 물론 영유아에 치명적인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등이 한꺼번에 유행하는 트윈데믹, 트리플데믹이 유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올해 아시아소아감염학회 학술대회(ACPID)가 국내에서 열린 것을 계기로 박 교수를 찾아 감염병 예방을 위한 백신 접종의 중요성을 들었다. 아시아소아감염학회 학술대회가 한국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교수는 “코로나대유행으로 3년만에 열리는 행사다”라며 “작년 말까지만 해도 학회가 못 열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한소아감염학회 부회장으로 부산대병원에서 소아과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전임의를 지냈으며, 이후 부산대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 교수는 지난해 제11회 결핵예방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 한국은 아주 어릴 때부터 국가예방접종으로 백신을 맞는다. 국가예방접종이 왜 중요한가.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등 언제든지 유행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이 있는 감염병을 국가예방접종으로 지정해 백신 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국가예방접종에 포함되어 접종하고 있는 백신과 선택접종으로 시행하고 있는 백신은 그 예방효과가 우수하고 안전함이 증명됐다.”
ㅡ 하지만 주변에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과 같은 감염병에 걸린 사례는 거의 보지 못했다.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감염 사례가 극히 드문 건 맞다. 그런데도 백신 접종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감염병은 방어 면역이 없으면, 언제든 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치료 약제가 없다.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안전한 백신이 있다면, 맞는 게 최선의 예방책이 아닌가.”
ㅡ 이론적으로 감염병은 바이러스 접촉을 피하면 안 걸리는 거 아닌가. 소아 백신 접종을 하지 않으면 큰 문제라도 생기나.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일부 사람들이 예방접종을 받지 않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인구의 비율이 증가하고, 결국에는 유행성 집단 감염이 발생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1980년 대에 소비에트 연방로 해당 지역에 백신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예방 접종률이 줄었고, 디프테리아가 유행했고, 수만명의 환자가 사망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는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폴리오(소아마비) 환자가 확인돼 감염병 학계에서 논란이 됐다. 소아마비는 백신 접종으로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환이다.”
ㅡ 그러나 사회적으로 유행을 막아야 하니 ‘백신을 맞으라’는 논리에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 아닌가.
“예방접종은 질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다. 예방접종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저렴한 보험이다. 보호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종종한다.”
ㅡ 디프테리아나 소아마비 외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감염병 사례도 있나.
“조선시대 문효세자의 목숨을 앗아갔던 ‘홍역’ 역시 위험한 감염병 중 하나다. 홍역은 감염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예방접종률이 조금만 줄어도 대유행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 19의 전 세계적 유행 직전에 홍역은 전 세계 공중보건학적으로 가장 큰 위험 요소였다. 코로나 19 유행 이후 전 세계 홍역 2차 예방접종률이 크게 줄었다. 일상으로의 회복이 진행되면 홍역이 다시 유행할 수도 있다.”
ㅡ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백신 접종률이 많이 떨어졌나.
“우리나라는 코로나 팬데믹 중에서도 소아 예방접종률이 그 전과 비교해 잘 유지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UNICEF)의 보고에 따르면, 거의 모든 국가에서 소아의 예방접종률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걱정이다.”
ㅡ 그렇다면 소아 코로나 백신 접종에 대한 세계적 추세는 어떤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저질환이 있는 고위험군 어린이의 코로나 예방접종은 적극적으로 권고하는 추세다. 우려와 달리 소아 연령에서의 백신 접종으로 인한 심근염 등의 이상 반응은 청소년에 비해 굉장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ㅡ 향후 백신 접종 트렌드는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시나.
“우리나라는 현재도 국가예방접종 사업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어 변화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현재 선택 접종인 로타바이러스 백신이 국가예방접종에 도입될 가능성이 있고, 6가 DTaP 혼합백신과 같은 새로운 혼합백신 도입 여부에 대해 논의할 여지가 있는 것 같다.”
ㅡ 6가 혼합 백신이 뭔가. 6가지 질병을 모두 예방하는 백신이라는 건가.
“혼합 백신은 여러 가지 항원을 포함한 백신이다. 6가지 질병을 예방한다기 보단 6가지 항원을 대상으로 한다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국내에서는 이미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폴리오를 합친 4가 DTaP 혼합백신(DTaP-IPV), 여기에 b형헤모필루스인플루엔자를 합친 5가 DTaP 혼합백신(DTaP-IPV/Hib)이 사용되고 있다. 최근 5가 DTaP 혼합백신에 B형 간염 백신이 혼합된 6가 DTaP 혼합백신이 나왔다.”
ㅡ 여러가지를 섞은 혼합 백신을 도입해야 할 이유가 있나. 여러가지를 섞었다고 가격이 더 저렴한 것도 아니다. 그냥 6번 주사를 맞으면 안되나.
“굉장히 어른 중심적인 생각이다. 혼합백신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주사 횟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생후 2개월부터 12개월까지 한 달에 몇 번씩 주사를 맞는다. 나도 자녀를 낳기 전엔 큰 문제 의식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주사를 놓고 나서 표정을 보니 너무 불편해 보였다. 아기들이 말로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정말 아프구나. ‘내가 몰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들은 자기 자신을 대변할 수 없지 않나.”
ㅡ 혼합 백신이 얼마나 접종 횟수를 줄여주나.
“예를 들어 DTaP, 폴리오, b형 헤모필루스인플루엔자균에 대한 접종을 각각의 백신으로 하면 3번 접종을 받아야 한다. 혼합백신을 사용하면 접종 횟수를 3회에서 1회로 줄일 수 있다. 접종횟수를 줄여서 적기에 예방접종을 실시할 수 있다. 의료기관에서는 각각의 백신을 위한 공간 마련이 쉬워지고, 보관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ㅡ 현장에서 6가 혼합백신을 잘 쓰지 않는 이유가 있지 않나.
“우선 현재 국가예방접종 백신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6가 DTaP 혼합백신에는 B형 간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B형간염 백신 접종 스케줄과 횟수에 대한 협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현재 B형간염을 단독으로 접종할 때에는 출생 시와 생후 1개월 6개월에 접종하고 있는데, 만일 6가 DTaP 혼합백신을 국가예방접종백신에 사용한다면, 출생 시에 B형간염을 접종한 후, 1개월의 B형간염 2차 접종을 하지 않고 2, 4, 6개월에 6가 DTaP 백신을 접종하게 된다. 이 경우 B형간염은 총 4회의 접종을 하게 된다. 그러니 국가필수예방접종백신으로 도입하려면 B형간염 백신 접종 스케쥴에 대한 논의부터 해야 한다.”
ㅡ 소아청소년과에 계시니 여쭙고 싶은데, 올겨울 감기약 품귀를 우려해서 정부가 단가를 올려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의료 현장의 반응은 어떠한가.
“감기약 부족은 이번 겨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할 때는 병원에서도 해열제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출산율 감소로 인구가 줄어들면 (감기약 수요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거 아닌가) 물론 제약사 입장에서는 수요가 줄면 현재의 단가로 손해난 부분을 메우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조금만 더 대변하자면, 페니실린G와 같은 필수의약품 항생제를 국가가 좀 더 관리해줬으면 좋겠다. (매독에 쓰이는) 이 약은 극히 드물게 사용되지만, 이 약이 없으면 치료가 안된다. 사용량이 매우 적다 보니 국내 제약사가 생산하는 족족 손해를 되고, 결국 국내 생산을 포기하게 됐다. 현재는 희귀약품센터를 통해 비싼 값을 지불하고 사용할 수 밖에 없다.”
ㅡ 소아과 전문의로 일한 지 25년 된 것으로 안다. 힘들지는 않으신지 궁금하다.
“소아과 의사로 힘든 점도 있지만, 사실 좋았던 점이 더 많다. 대부분의 소아과 의사들은 자신이 치료했던 아이들이 미래에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할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은 해보셨을 것 같다. (웃음) 아이들이 잘 회복되어 가정으로, 사회로 안전하게 돌아가 개인의 역할을 다 할 때 보람을 느낀다. 마치 선생님이 교육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듯이 말이다.”
ㅡ 요즘 의대생들 사이에는 소아과 전공을 기피한다는 얘기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소아과는 인기가 있는 과목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소아과가 아예 기피과로 전락할 것 같다. 성인을 진료하는 내과 선생님은 소아 환자를 돌볼 수 없다. 이런 현상이 수 년만 지속되어도 현장에서 어린이를 돌볼 수 있는 의사가 없을 것이다. 정말 걱정이다.”
ㅡ 왜 이런 현상이 있다고 보시나. 의사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과거 다양한 전공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현재는 최상위 성적의 아이들이 거의 모두 의대를 진학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의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돌보는 영역에 있다. 저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 이해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실습 현장을 보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학생들도 있다. “
ㅡ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는 학생이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다. 환자가 약 처방만으로 호전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관계 속에서 호전되는 경우도 있다. 전문의가 되는 것은 수련 과정을 통해서도 배우고 익힐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학습 능력만 있다면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것 같다. 혹시 자녀를 의료인으로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먼저 우리 아이에게 이런 성향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ㅡ 그나저나 아시아소아감염학회 학술대회(ACPID)가 국내에 열렸다. 어떤 의미가 있나.
“ACPID는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학회다. 지난 2018년 일본에서 개최 후, 2020년에 우리나라에서 유치하기로 결정되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미뤄졌다가 2022년인 올해 4년 만에 개최하게 됐다.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개최가 어려울 줄 알았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초청 연자를 포함해 아시아 등 전 세계 32개 국에서 참가했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약 600여 명이 등록했다.”
ㅡ 올해 특별히 돋보였던 프로그램이 있나
“개인적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다 좋았다고 생각한다.”
ㅡ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
“우리나라는 코로나 팬데믹 중에도 소아의 국가예방접종에 대한 접종률이 감소하지 않고 잘 유지된 나라 중 하나다. 이는 기본 접종에 대한 국민적인 신뢰도가 굉장히 높다는 반증이며 또한 의료 위기 속에서도 예방접종 등과 같은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고 잘 유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전문 학회와 국가 기관 및 국민이 객관적이고 정확한 데이터를 공유하고 소통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대한소아감염학회는 전문 학술 단체로서 감염 질환 위기 상황이나 새로운 백신의 도입 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하여 발 빠르고 객관적인 자료 확보와 의견 제시를 통하여 국민 특히 어린이에 건강에 기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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