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대규모 적자에 채권시장 교란… 끝없는 탈원전 나비효과
값싼 원전 줄이고 LNG↑, 요금 인상은 외면
현금 마련 위해 발행한 한전채, 시장 교란
고물가 속에 전기요금 대폭 인상도 불가피
한국 경제가 마주한 복합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지목되고 있다. 저렴한 원전을 버리고 값비싼 에너지를 늘린 탓에 한국전력의 수익성이 급감했고, 이에 한전은 현금을 마련하겠다며 대량의 채권을 쏟아냈다. 신용등급이 우량한 한전이 높은 금리를 주면서 채권을 발행하자 한전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금리를 대폭 높여야 해 부담이 커지게 됐다.
대규모 한전 적자는 전기요금 인상으로밖에 해결되지 않아 물가 부담까지 가중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은 이제 시작”이라며 경제 위기와 맞물려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 한전, 6분기째 적자 행진… 값싼 원전 줄이고 비싼 LNG 늘린 탓
6분기째 기록 중인 한전의 적자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2분기에 752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2019년 4분기(-1조5872억원) 이후 6개 분기 만에 적자 전환했다. 같은 해 3분기 9366억원에서 4분기 4조7303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확 커졌고, 올해 들어서는 1분기 7조7869억원, 2분기 6조5163억원, 3분기 7조5309억원 등 대규모 손실을 이어가고 있다. 한전 안팎에서는 올해 연간으로 30조원 적자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한전의 적자 행진은 탈원전 정책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0월 에너지전환 로드맵 발표를 통해 노후 원전의 가동 연장과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며 탈원전 정책을 본격화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원전을 배제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내놨다. 월성 1호기를 2018년부터 발전 설비에서 조기 퇴출하고, 24기인 원전을 2030년까지 18기로 줄이는 내용이 담겼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중단된 것도 이 때문이다. 2019년 6월에는 ‘에너지 헌법’으로 불리는 에너지기본계획에 원전의 점진적 감축을 못박았다.
원전 배제는 한전의 수익성을 직접적으로 악화시켰다. 원전을 돌리는 데 필요한 우라늄은 20년 장기계약으로 수입해 수급이 안정적이고 연료비 단가도 한국이 전력 발전에 사용하는 에너지원 중 가장 낮다. 원전을 줄이면 그만큼 값비싼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는데, 문재인 정부가 늘린 에너지는 가장 비싼 액화천연가스(LNG)와 신재생에너지였다. 2017년 10월 기준 LNG의 연료비단가는 ㎾h(킬로와트시)당 84.08원으로, 원자력(5.76원)의 15배에 달했다.
여기에 올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LNG 가격이 배 이상 급등했고, 한전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전은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사와 국민에 전기를 판매하는데, 발전사로부터는 비싸게 사와서 싸게 팔았다. 전기요금을 올리면 ‘탈원전 때문에 결국 전기요금이 올랐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탈원전에 따른 전력 구매 비용 손실 추정액’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5년간 발생한 전력구매비용 손실액은 총 10조77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원전 발전량이 2016년 비중인 29.7%에 미달했을 경우 이 차이를 LNG가 대체했다고 가정하고 추산한 손실액이다.
실제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매할 때 지불하는 가격의 기준인 ‘전력도매가격(SMP)’은 지난 11일 기준 ㎾h당 256.39원을 기록했다. 2017년은 100원도 채 되지 않았다. SMP는 가장 비싼 발전원인 LNG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전의 적자 요인에 대해 “전원 믹스(구성비율)에서 원전과 같이 발전 단가가 저렴한 전원의 비중이 높았더라면 비싼 에너지 가격에 대한 영향이 줄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 한전 적자에 자금시장 혼란, 전기요금 인상… “탈원전 부작용 이제 시작”
한전의 대규모 적자는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자금시장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한전은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24조원 가까이 채권을 발행했다. 이는 작년 전체 발행액(10조3200억원)의 두 배를 훌쩍 넘은 수준이다. 한전채가 최우량 신용등급(AAA)를 보유한 데다, 금리도 6%에 육박할 정도로 높게 형성되다보니 시중 자금이 한전채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시중 자금이 한전으로 쏠리자 일반 기업은 ‘돈 가뭄’을 겪어야 했다.
대규모 적자인 한전은 당분간 채권 발행을 멈출 수 없다. 한전은 한 달에 네 차례에 걸쳐 발전사에 전기를 구매하고 그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대규모 적자로 현금이 유입되지 않아 채권을 발행해 전기를 사고 있다. 채권 발행이 막히면 대금을 감당할 수 없다. 이에 정부는 한전에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할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통상 은행 대출금리는 회사채 발행금리보다 높아 한전이 필요한 자금을 모두 은행 대출로 충당하긴 부담스럽다. 한전의 채권 발행 한도가 한계에 다다르자 국회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5~10배로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기업 뿐만 아니라 가계도 탈원전의 후폭풍을 맞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전기요금 항목 중 하나인 기준연료비를 ㎾h당 40~50원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전이 현재 전력을 ㎾h당 130원대에 판매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 40%가 인상되는 셈이다. 이미 올해 4과 10월에 ㎾h당 4.9원씩 총 9.8원의 기준연료비가 인상됐고, 기후환경요금도 2원 올랐다. 올해 1~6월까지는 연료비 조정요금이 동결됐지만, 3분기 들어선 ㎾h당 5원이 인상됐다. 한전은 올해 예상 적자 30조원을 해소하려면 전기요금을 4분기에만 ㎾h당 260원을 올려야 한다고 추산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전기요금 정상화를 비롯해 탈원전의 부작용을 털어내기 위한 조치에 착수했다. 올해 말 발표될 10차 전기본에서는 원전 비중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 10월 국가온실감축목표(NDC)에서 원전 비중을 23.9%로 설정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를 32.8%로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고리 2·3·4호기 등 원전 12기를 수명 연장을 통해 2036년까지는 계속 운전할 계획이다. 또 신고리 5·6호기, 신한울 1∼4호기 건설을 완료해 원전 6기를 추가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 22기인 원전은 2036년에 28기로 늘어나고 원전 발전용량도 24.7GW에서 31.7GW로 확대된다.
다만 탈원전 여파에서 벗어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현재 경제위기를 심각하게 가중시켰고, 앞으로 그 부작용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5년간 억눌렸던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꺼번에 터져나오면 사회가 받는 충격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보유하고 있는 원전을 효율적으로 가동해 원전의 역할을 조속히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성과급 더 줘’ 현대트랜시스 노조 파업에… 협력사 “우린 생계문제”
- [트럼프 귀환] 잘나가던 TSMC, ‘안티 대만’ 트럼프 당선에도 건재할까
- ‘김건희’ 점철된 140분… 尹 고개 숙였지만 특검 거부
- SK하이닉스 반도체 기술 빼돌린 중국 직원 징역 1년 6개월
- [트럼프 귀환] 트럼프 당선에 다시 주목받는 대우건설과의 인연
- [투자노트] 美민주당원들이 “트럼프가 오바마보다 낫다”고 한 한가지
- [트럼프 귀환] “올 것이 왔다”… 셈법 복잡해진 재계
- ‘요아정·명륜진사갈비 이어 매드포갈릭까지’... 외식업계, 잇단 손바뀜에 요동
- 촉각으로 세상 본다… 시각 대체할 웨어러블 기기 개발
- ‘전기차 1위’ 中 BYD, 이달 국내 상륙… 현대차, 안방 사수 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