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자니 ‘표현의 자유’ 놔두자니 ‘주민 불안’… 尹정부도 ‘딜레마’ [뉴스 인사이드-대북전단 논란]

이희진 2022. 11. 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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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의견 첨예 대립
“북한 주민 알 권리 보장 위해 허용을”
“접경 지역의 주민 생명권 고려해야”
2021년 3월 ‘남북관계발전법’ 시행 불구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제청 이어져
새 정부 ‘표현의 자유’ 외쳤지만…
출범 초기 보수 측 입장 지지 모양새
남북긴장 고조되자 ‘살포 자제’ 당부
권영세 “北, 도발구실로 삼고 싶어해”
결국 공은 헌재로… 최종 판단 주목
“국민의 안전에 위협이 되므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해야 한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어떤 경우라도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 2018년 4월 판문점선언을 통해 남북이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중단하기로 합의했지만 수년째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정치적·법적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3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헌법소원과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이어지면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잡음은 한동안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보수 진영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며 위헌을 주장하고 있고, 진보 진영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묵시할 수 없다”며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적극 반대한다. 윤석열정부도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며 출범했지만, 최근 북한과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지속되자 “자제해달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경찰, ‘대북전단 살포 금지’ 이후 3건 입건해 2건 송치

11일 더불어민주당 최기상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북전단 살포를 법적으로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이 시행된 지난해 3월 이후 경찰은 대북전단 살포 혐의로 총 3건을 입건했다. 이 중 2건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1건은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다. 남북관계발전법 제24·25조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을 하거나 전단 등을 살포해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2건 모두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피의자로 포함돼 있다. 2건 중 1건에 대해선 서울중앙지검이 올해 1월 기소했다. 박 대표는 지난해 4월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도, 강원도 일대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과 소책자, 미화 1달러 지폐 등을 대형 풍선 10개에 나눠 실어 북한 지역으로 날려 보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나머지 1건은 인천경찰청이 지난 6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아직 검찰은 박 대표에 대한 소환조사 등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4월 25∼26일 경기 김포지역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사진 등이 담긴 대북 전단 100만장을 대형 기구 20개에 매달아 북한에 날려 보냈다고 28일 밝혔다. 사진은 이 단체가 날린 대북전단 모습. 연합뉴스
◆의견서에선 “정치적 의사 표현” 살포 지속될 땐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

대북전단 살포가 정치적 쟁점으로 본격적으로 떠오른 건 2018년 4월 판문점선언 이후다. 당시 남북은 ‘2018년 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고 선언했다. 박 대표 등 일부 탈북민 단체와 보수 진영이 반발했지만, 국회는 2020년 12월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규정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개정안이 시행되고 윤석열정부가 들어섰지만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갈등 상황은 변한 게 없다. 윤 정부는 개정안을 마뜩지 않아 하는 모습이지만 이미 법이 시행 중이고, 컨트롤타워로서 국민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입장이 다소 모호해진 상태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9일 헌법재판소에 낸 의견서에서 “전단 등을 북한의 불특정 다수에게 배부하거나 북한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는 북한 당국이나 주민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나 가능성을 내포하는 점에서 정치활동 내지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고 했다.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게 옳지 않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북전단 살포가 지속되던 지난달 2일엔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북한이) 대북전단을 (도발의) 구실로 삼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개인으로서의 입장과 장관으로서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 안전이 더 중요” VS “표현의 자유 보장돼야”

대북전단 살포 논란은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와야만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전단 살포 미수로 기소된 박 대표 측이 해당 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헌재는 지난해 1월부터 해당 사건을 심리 중이다.

전단 살포 금지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논리는 명확하다.

찬성 측은 표현의 자유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면 제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수미 변호사(공익제보센터 굿로이어스)는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권 등을 고려했을 때 이를 위협하면서까지 전단을 날리는 건 같은 국민으로서 자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의 인권을 중시한다면 다른 수단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남주 변호사(법무법인 도담) 역시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지만 생존권보다는 높을 수 없다”며 “접경지대 주민들의 안위가 걱정될 수 있으니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진보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북한 접경지역 주민들이 지난 8월1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불법 대북전단 살포 국민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살포 금지를 반대하는 측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다.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씨케이)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허용해야 하고 헌법상 북한 주민도 우리나라의 국민인 만큼 북한 주민들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서라도 적극 허용해야 한다”며 “민간 교류를 장려하자는 취지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살포 금지 규정은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北동포직접돕기 대표 이민복씨 “나도 ‘삐라’ 보고 탈북 결심… 北에 김정은 거짓말 알려야”

“제가 ‘삐라’(대북전단)를 보고 한국행을 결심했으니까요.”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 이민복씨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인 이민복(65)씨의 말이다. 이씨는 북한에서 국가과학원 연구원으로 일하던 1990년 8월 강원도 철원읍에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대북전단을 접했다. 이씨가 집어든 전단에는 눈이 뜨일 만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씨는 “미국과 남조선이 침략해 6·25전쟁이 벌어진 줄 알았는데 전단을 보고 나서야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김일성이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전단을 접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그때 북한의 공산주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됐고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북한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남한에 와서 이 같은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1995년 탈북에 성공해 한국에 정착했고, 2003년부터 풍선을 이용해 대북전단을 날렸다. 이씨는 2018년까지 총 10억장가량의 전단을 북한에 보냈다고 한다. 이씨는 “풍선을 날리는 데도 전문기술이 필요하다”며 “풍선을 5000m 상공에서 체공시켜야 하는데, 그 이하면 풍선이 너무 요동치고 그 이상이면 제트기류 때문에 너무 빠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을 비판했다. 그는 “김정은 정권은 거짓말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북한이 개방하기 전까지는 대북전단을 계속해서 날리는 게 맞다”며 “북한이 폐쇄 사회인 이유는 거짓말로 만든 우상화를 보호하기 위함이고, 이를 깨뜨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대북전단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전쟁을 할 순 없으니 평화적으로 북한을 뚫는 게 대북전단”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등이 대북전단을 공개 살포하면서 대북전단의 취지와 효과가 왜곡됐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대북전단을 날리면 북한도 이를 인지하기 어려워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에도 문제가 없다”며 “박 대표 등이 북한을 자극하면서 날리다 보니 대북전단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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