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첫 신고’ 있던 저녁 6시34분, 촛불 5만 개가 켜졌다
“당신의 잘못 아니다” 울려퍼진 노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촉구하며 구호
12일 저녁 6시34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 수만개의 휴대전화 불빛이 촛불처럼 켜졌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압사 위험’을 알리는 첫 신고가 들어온 시각에 맞춰 이날 추모집회에 모인 시민들이 불을 밝힌 것이다. 낮부터 내린 비는 점차 거세졌지만 시민들은 우비를 입고 우산을 서로 씌워주며 떠나지 않고 함께 노래했다. 이들은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이태원 참사, 성역없는 진상규명,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오후 5시30분께 숭례문 앞부터 시청역까지 400m 길이로 뻗은 6개 차로와 인도는 10.29참사 청년추모행동과 참여연대, 촛불문화연대 등 94개 단체가 공동주최한 ‘이태원 참사 추모집회’에 참여한 시민 5만여명(주최 쪽 추산)으로 꽉 찼다. 앞서 같은 장소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2022 노동자 대회’에 참석했던 9만여명의 조합원 중 상당수도 자리를 지키며 추모 행동에 참여했다.
두 명의 친구를 이태원 참사로 잃은 한 청년은 추모 현장에 직접 쓴 편지를 보내왔다.
“술과 춤을 모두 좋아하던 스무살의 나는 너, 그리고 그 애와 친해졌다. 우리가 만난 마지막 순간이 (참사) 전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난 그날 집에 일찍 안 가고 좀 더 남아있었을까. 이태원 참사에서 다친, 아는 사람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울분을 참으면서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멀리서, 각자의 삶을 사는 것 같은데 말을 꺼내는 순간 진짜 (네가) 죽은 사람이 된 것 같아서일까. 아니면 댓글로 공격받을 너를 보고 싶지 않아서일까. 일주일에 몇 번씩, 10월 말 전으로 돌아가서 (너희를) 만나는 꿈을 꾼다. 그런데 난 이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기사의 댓글이, 정부의 반응이 가슴을 후벼파서 예전처럼 속 없이 살 수가 없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고 외치고 싶은 걸 다 외쳐보고 그 후에 너희를 만나러 가겠다. 국화를 주고 왔다. 너무 끔찍하고 아픈 경험이라 다시는 누구한테도 꽃을 주고싶지 않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보자. 그때는 옛날처럼 좋아하던 와인을 마시자. 정말 나중에, 몇십년이 지나도 괜찮다면 그땐 꼭 만나러 갈게.”
참사 당일 구조에 뛰어들었던 시민이 보내온 편지도 있었다.
“이태원은 처음 가 봐서, 들뜬 마음으로 어딜 갈지 고민하면서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이태원인데, 사람들이 어떻게 노는지 궁금해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을 지나갔습니다. 심폐소생술(CPR)을 할 줄 알면 와달라는 (외침을) 들었고, 사람들과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그 중에 몇 명은 살았고, 몇 명은 다시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슬프기도 했지만 살려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죽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습니다. 내가 살리지 못했던 사람들이 생각나 무섭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나 때문에 사람들이 죽은 것 같다는 죄책감에 괴롭습니다. 그날 이태원에 갔던 희생자, 생존자들 모두 잘못한 건 없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그 곳에서 스쳤던 얼굴들이 기억납니다. 다들 꼭 살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꼬리자르기식 책임 물기가 아닌, 참사의 정확한 책임자를 가리고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주형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장은 “지난 9일은 제60주년 소방의 날이었지만, 받은 선물은 용산소방서와 서울소방재난본부의 압수수색 영장이었다”며 운을 뗐다. 김 본부장은 “법 개정으로 소방도 경찰과 함께 행정안전부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일선 소방서장과 지휘팀장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가.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법률을 개정할 때엔 지휘와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정작 사건이 발생하니 (이들은) 보이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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