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주제로 ‘백남준 정신’을 소환하다
11월16~17일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려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한국과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협업했다. 다원예술공연 《플룩소(Flu水o)》가 11월16일~17일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콘솔레이션홀에서 아시아 초연된다.
백남준과 함께 플럭서스(Fluxus) 운동을 이끌며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 중 '물'과 관련된 작품을 한국과 이탈리아 작가들이 현재로 소환한다. 플럭서스는 '흐름, 끊임없는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로,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세계적 차원의 전위적 예술 운동을 말한다. 전통적이고 확고했던 기존 예술의 형태에서 벗어나 삶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콜라보를 선보이는 실험적인 작업을 하면서 기존 예술의 개념과 범위를 크게 확대시켰다. 특히 TV 모니터를 활용한 작품을 통해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서의 행보를 보인 백남준의 시도는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백남준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협업한 다원예술은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었다는 데서 플럭서스 운동과 맥락을 함께 한다. 《플룩소(Flu水o)》 프로젝트는 루치아나 갈리아노의 아이디어와 다비데 콰드리오와의 큐레이션으로 제작된 다원예술작품이다. 2021년 이탈리아 밀라노 한가르 비코카에서 안젤름키퍼의 작품을 배경으로 초연된 이 작품은 이탈리아 문화관광부의 우수 프로젝트로도 선정된 바 있다.
베를린과 서울에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이자 프로듀서인 죠앤 킴(김주원)이 이번 한국 공연의 공동 기획과 연출을 맡았다. 중국 상하이 K11 문화재단 아트디렉터, 프랑스 파리 'ASIA NOW - Paris Asian Art Fair'의 프로그램 디렉터, 베를린 에스더쉬퍼 갤러리의 아시아 담당을 역임한 죠앤킴은 2017년 파리 아트위크 기간동안 다원예술 페스티벌 '넌센스 뮤직 프로젝트'를 론칭한 바 있으며, 2022년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의 큐레이터로도 참여했다.
사운드아티스트 정진화와 아트프로젝트보라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신작을 제작했고,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연주단체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TIMF앙상블이 연주를 맡는다. 여성 안무가 김보라의 아트프로젝트보라는현대무용을 중심으로 '몸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단체다.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 D-100 연주회로 시작해 당대 최고 작곡가들과 협업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TIMF앙상블은 클래식과 현대음악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레퍼토리 개발과 참신한 기획을 통해 전문연주단체로서 입지를 굳혀 나가고 있다.
음악, 미술, 무용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재해석
《플룩소》 프로젝트의 주제는 '물(水)'이다. 물은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요소임과 동시에 죽음과 소멸을 야기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11월16일 한국 초연되는 체임버 오페라 《마레 노스트룸》은 작곡가 마우리치오 카겔의 작품으로, 물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인류학적 이야기를 다룬다. 마우리치오 카겔은 백남준, 요코오노, 존케이지와 함께 플럭서스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음악감독과 지휘를 맡은 헨리 청은 베를린과 서울에서 활동하는 지휘자이자 작곡가다. 유럽 연합 지휘 콩쿠르와 안탈 도라티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한 바 있다. 독일 뒤스부르크의 클랑크라프트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이자 예술 감독을 역임했고, 최근에는 LA 필하모닉, 애틀랜타 발레단, 라 스칼라 챔버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오케스트라, 발레, 오페라 하우스와 정기적으로 협력 중이다.
예술가들은 백남준을 비롯한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작품을 음악, 미술, 무용, 강연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해 보여준다. 무용수이자 활동가인 실비아 칼데로니, 공연과 극장, 도시 공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일레니아 다테오, 소비재나 사회적 소재를 활용해 오브제가 담고 있는 의미를 파괴하고 언어학적인 단락을 창조하는 안드레아 아나스타시오, 멀티미디어 설치 예술가 호 추니엔, 미술·무용·연극·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정진화 등이 참여한다. 2018 평창 패럴림픽 폐막식 주제곡 솔리스트인 카운터테너 이희상, 루치아노 파바로티 극장 주역으로 활동 중인 바리톤 김성결도 프로젝트에 힘을 보탠다.
프로젝트는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과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이 후원한다. 페데리코 파일라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이번 작품에 대해 "물은 역동적인 자연과 생명의 본질이다. 우리의 몸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은 물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물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문명을 연결하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며 "이번 《플룩소》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탈리아와 아시아의 아티스트는 물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바탕으로 그 개념을 재해석하고 이를 예술로 승화했다. 이와 같은 융복합 프로젝트에서 보여주는 예술과 혁신은 관객들이 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1801년부터 1866년까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아 처형되었던 장소로, 다섯 명의 성인의 유해가 안치돼있다. 오페라 《마레 노스트룸》이 아마존 부족이 지중해 지역에서 겪는 최후의 순간에서 경험한 발견, 평화, 개종 등 인생의 의미와 지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간과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는 프로젝트에 더욱 유의미한 시너지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이번 프로젝트는 무료로 진행되며, 《플룩소》는 이번 한국 공연에 이어 중국 상하이,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와 토리노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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