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러 신냉전 바람 타고… 北 ‘실질적 핵무력 완성’ 질주 [심층기획-레드라인에 선 北, 도발 의도는]

김선영 2022. 11. 1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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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BM·ICBM 등 거침없는 무력시위
전문가 “金, 종착지 7차 핵실험 상정”
“비핵화 아닌 군축협상 목적” 분석도
北, 중·러 지지로 對美 3각공조 강화
유엔 안보리 결의 등 회피 수단 활용
핵실험·탄도미사일 자금 유입 계속돼
美국무, 중·러 겨냥 결의안 준수 강조
북핵 관리·비핵화 유도 外 대안 없어
군사적·외교적 대응 노력 다각화 해야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5일까지 진행된 한·미 공중 연합훈련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을 전후해 북한이 연일 수위를 가리지 않는 무력도토요일 오후===발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일에는 분단 이래 처음으로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공해상 방향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했고, 다음날에는 ‘화성-17형’으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쐈다.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SRBM은 물론,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ICBM까지 동원하며 ‘레드라인’(금지선)을 넘는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지난 5일에는 중국 접경과 가까운 지역에서 중국 어선들이 몰려 있는 서해상으로 SRBM 4발을 발사하기도 했다. 북·중 간 사전 논의를 통한 도발로 점쳐지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의 ‘마이웨이’식 도발 가능성까지 언급될 만큼 북한의 최근 전방위 도발은 거침이 없다. 북한은 올해 들어 제7차 핵실험과 국지적 도발만 빼고는 보여줄 수 있는 군사적 위협 카드를 모두 꺼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 내 강대강 구도를 조성한 북한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
◆‘좌충우돌’ 북한… 도발 종착지는

11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도발은 군사적 의미에서 ‘적이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상·해상·공중으로부터 해당 국가의 국민과 재산 또는 영역에 가하는 일체의 위협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한 세력이 타 세력에게 어떠한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조건을 의식적으로 구성해 그 결과 행해지는 적의 행위를 자기의 전략·전술상 유리한 조건으로서 이용하는 것’이다. 고재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이와 같은 군사·정치적 의미를 종합해 보면 도발은 “특정한 수단을 이용해 특정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도발결정자의 계산된 정치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의 ‘도발결정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차 핵실험을 도발의 종착지로 상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최근 대남 도발의 특징과 전망’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최근 도발은 7차 핵실험 실시 가능성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7차 핵실험 실시는 한·미의 대응과 주변국의 반응, 기후 및 기술적 문제, 북한 내부 문제 등으로 인해 시기가 미루어질 수는 있지만 결국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보다 큰 대남 위협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전술핵실험을 성공시키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부연했다.

일련의 북한 도발 이유에 대해선 강화하는 한·미 연합방어태세에 대한 반발 및 점검, 한국형 3축 체계(킬체인·한국형미사일방어·대량응징보복) 추진에 대한 대응, 윤석열정부의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에 대한 거부, 남측의 ‘9·19 군사합의’ 파기 유인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무력도발 최종 목표는 핵보유국 인정 및 군축 협상을 위한 전략적 시위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최근 북한의 무력시위와 우리의 대응방향’ 보고서를 통해 “북한은 아마도 실질적 핵무력 완성을 통해 향후 북·미 협상에서 비핵화 협상이 아닌 군축 협상을 시도하고자 할 것”이라며 “이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최근 지속되는 무력시위는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대응보다는 실질적 핵무력 완성을 향한 계획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중·러 3각 공조 등에 업은 北

북한은 지난 5일 오전 11시32분쯤부터 11시59분쯤까지 평안북도 동림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SRBM 4발을 발사했다. 동림은 중국 단둥에서 20여㎞ 떨어진 장소로, 이 지역에서 탄도미사일이 발사되기는 처음이다. 북한이 중국 측과 사전 협의해 발사 장소와 방향을 선정함으로써 북·중 밀착을 과시하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사전 협의가 없었다면 북·중 간 균열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북한이 ‘북·중·러 대 한·미·일’의 신냉전 구도를 내세우며 북·중·러 3각 공조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북한은 미국과 대립 중인 중·러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통해 북·중 및 북·러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를 추가 대북제재의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9월29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신냉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향후 이 같은 신냉전 구조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북한 입장에선 미·중 경쟁이 심화하고 미·러 갈등이 계속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무력화한 지금의 국제정세가 7차 핵실험을 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북한의 잇단 도발 속에 북한 핵·미사일 억제를 위한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가 실패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빌 클린턴·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북·대이란 제재 업무를 담당한 조지프 디토머스 전 미 국무부 비확산담당 차관보는 미국의 대북제재를 실패로 규정했다. 디토머스 전 차관보는 대북제재에 대해 “정책 실패다. 세대에 걸친 정책 실패”라며 “한 세대 전체가 이 업무에 투입됐는데 실패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 무엇을 할지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엔 안보리는 2006년부터 북한에 경제적 제재를 부과해왔다. 핵무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흘러들어 가는 자금을 끊겠다는 의도였다. 석탄, 철광석, 납, 섬유, 해산물 등의 수출을 금지하고, 원유·정유 제품 수입을 제한했다. 그러나 북한이 최근까지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도발에 나서고 있어 대북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꾸준히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지난 2일 하루에만 4차례에 걸쳐 SRBM 등 미사일 25발을 쏘는 데 들어간 비용이 최대 7500만달러(약 1070억원)가량이라고 추산한다.

미국 국무부는 대북제재 실패론과 관련해 유엔 안보리 결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안보리는 강력한 제재 결의안을 여러 차례 통과시켰다”며 “모든 회원국이 이 결의안을 준수해야 한다. 각 회원국에 이런 요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의 이 같은 발언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그간 대북제재에 미온적 자세를 취해온 중국, 러시아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기 책임연구위원은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결국은 북핵을 관리하면서 비핵화의 길로 유도하는 방법 이외에는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고 볼 수 있다”면서 “우리는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나오도록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는 군사적·외교적 대응을 모두 포함한다”고 조언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오른쪽 세번째)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네번째)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스텔스 전략폭격기 B-1B를 함께 시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北 위성요격 미사일 시험 가능성 ‘예의주시’

한·미 외교당국이 최근 개최한 ‘제5차 한·미 우주정책대화’에서는 북한의 ‘파괴적·직접 상승 방식의 위성요격 실험’(직승 위성요격 미사일)이 시급한 우주 안보 위협으로 부상했다. 미국의 전략자산 중 하나인 정찰위성 등을 지대공으로 요격하는 역할의 직승 위성요격 시험은 미국이 우려하고 있는 안보 현안 중 하나다.

11일 합동참모본부 등에 따르면 북한이 자신들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탄도미사일 기반 위성요격 능력까지 보유한다면 한·미동맹 확장억제력 등 북과의 ‘힘의 균형’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구 저궤도를 돌고 있는 한·미·일 정찰위성 등에 대해 북한이 직접 타격해 한반도 전쟁 판도까지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박대광 한국국방연구원(KIDA)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최근 ‘북한의 새로운 전략도발 옵션, 직승 위성요격 미사일 시험 가능성 전망’이란 보고서에서 이를 경고했다. 박 연구위원은 “미래에 북한이 한·미동맹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전략도발 옵션으로서 직승 위성요격 미사일 시험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미국의 정찰위성 ‘USA-186’ 모습.
직승 위성요격 미사일은 지상에서 요격체를 발사해 위성을 파괴하는 지대공 무기 중 하나다. 요격체가 자체 센서를 이용해 저궤도를 돌고 있는 위성과 충돌하거나 목표 경로에 거대한 펠릿(pellets·알갱이 혹은 총탄) 구름을 발사해 위성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위원은 북한이 올해 2월27일과 3월5일 등 2차례에 걸쳐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직승 위성요격 미사일 시험 준비를 위한 것이었을 수 있다고 봤다. 한·미 당국은 당시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일환으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한 것으로 평가했지만, 북한은 “정찰위성 개발시험”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위원은 “북한이 이런 시험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적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적들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내겠다’고 발언한 점, 저수지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는 특이한 과시성 행태를 표출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이런 전망이 결코 무리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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