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오리진과 블렌디드 커피 [박영순의 커피 언어]

2022. 11. 1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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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와인처럼 테루아르(terroir)를 즐길 수 있는 커피'이다.

블렌디드 커피가 싱글 오리진 커피보다 종종 행복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싱글 오리진 커피의 가치에 눈뜬 자만이 진정 누릴 수 있는 영역이다.

블렌디드 커피를 판매하면서 "산지와 그 비율이 영업비밀이므로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궁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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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와인처럼 테루아르(terroir)를 즐길 수 있는 커피’이다. 테루아르는 생명에 관한 것으로, ‘저마다 타고나는 고유의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칠레에서 멋진 포도알이 맺혔더라도 그것은 보르도 와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보르도 와인이 칠레 와인보다 절대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취향이 빚어낸 차별일 뿐이다. 인종을 등급 매겨선 안 되는 이치와 같다.
커피를 블렌딩하려면 섞는 커피들의 출처와 수확시기가 모두 명확해야 하고 이를 밝혀야 한다. 커피비평가협회(CCA) 제공
‘세계 대회에서 1등을 한 커피’라는 문구를 볼 수 없다. 커피는 산지가 다르다면 점수로 비교하지 않는다. 아직은 반드시 그렇다. 산지가 같아야 경쟁할 수 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산지뿐 아니라 가공방식도 같아야 한다. 커피는 열매를 통째로 말렸느냐, 과육을 벗겨내고 물로 씻은 뒤 건조했느냐에 따라 각각 고유의 가치를 지닌다.

커피의 우수성은 해마다 리셋된다. 제철에 새롭게 생산된 커피를 묵은 커피가 이길 수 없다. 숙성을 했다거나 발효를 했다고 제아무리 미화해도 정부미가 햅쌀을 능가할 순 없는 노릇이다. 커피 맛에 눈을 뜨기 위해서는 자연 그대로의 면모를 알아야 한다. 본성을 알지 못하고 이곳저곳의 커피를 섞거나 발효함으로써 근본에서 멀어진 것을 마구 쫓는 것은 화가가 도화지 색깔을 모르고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커피 공부는 하나의 산지만을 일컫는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을 감상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여러 산지를 혼합한 블렌디드 커피를 싱글 오리진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소비자들의 평가보다는 “여러 맛이 섞여 더 풍성하다”는 판매자의 주장이 더 크게 들린다. 블렌디드 커피의 가치를 비빔밥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 그릇으로 다양한 맛을 즐기는 것처럼 여러 나라 커피의 맛을 한 잔으로 맛볼 수 있다는 말이 언뜻 그럴싸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비빔밥을 주문했는데, 비벼서 나왔다고 하면 어떨까? 더욱이 비빔밥에 들어간 식재료의 맛이 각각 어떤지 모르는 상태에서 비벼서 나온 비빔밥이 어떤 행복을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해 “시금치, 고사리, 콩나물 등 다양한 것을 넣었는데 맛이 풍성한 것은 분명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비유가 잘못됐다. 흔히 블렌디드 커피라고 하는 것은 비빔밥에 비유하자면 청주 콩나물과 울산 콩나물, 순천 콩나물, 파주 콩나물 등 산지가 다른 콩나물을 섞어 비빈 것이다.

블렌디드 커피가 싱글 오리진 커피보다 종종 행복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싱글 오리진 커피의 가치에 눈뜬 자만이 진정 누릴 수 있는 영역이다. 블렌디드 커피를 판매하면서 “산지와 그 비율이 영업비밀이므로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궁색하다. 출처를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커피 블렌딩이 더 재밌다. 최초의 블렌디드 커피라고 하는 19세기의 ‘모카 자바’가 21세기에 들어서 사실 내용물을 보니 ‘하라 수마트라’가 된 이유를 속 터놓고 말하는 문화가 돼야 한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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