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5000억짜리 재난안전통신망, 이태원 참사 땐 왜 무용지물?

안광호 기자 2022. 11. 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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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소방 통신망 통일 지연… 산불 외 훈련 전무
예산·인력만 늘릴 게 아니라 집행 효율성 높여야

[주간경향]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당국의 안전불감증과 부실한 재난대응에서 비롯된 인재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겠다며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만든 ‘세계 최초’ 재난안전통신망이 참사 현장에선 무용지물이 됐다. 경찰과 소방, 지방자치단체가 유기적으로 소통하면서 발 빠르게 대응했다면 어땠을까.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에선 사후약방문식 처방이 쏟아진다. 너도나도 앞다퉈 재난안전 관련 예산을 늘리겠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예산과 인력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기존 예산을 면밀히 점검하고 평가해 집행의 효율성도 높여야 한다고 제언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0월 21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국제치안산업대전을 방문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스에서 장비를 체험해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 후 재난안전통신망을 통해 울릉도, 가거도, 마라도, 독도에서 근무 중인 경찰들을 격려했다. 대통령실 제공

작동하지 않은 ‘첨단’ 재난안전시스템

참사 발생 최초 신고가 접수된 10월 29일 밤 10시 15분 이후 재난안전통신망을 통한 기관 간 소통은 한참 후에야 이뤄졌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이태원 참사 당시 재난안전통신망 접속 기관 및 통신·통화 내역 자료를 보면 통신망으로 상황이 전파된 건 소방당국에 최초 신고가 들어간 지 1시간 26분이 지난 밤 11시 41분이었다. 서울시 재난안전상황실이 상황을 전파했고, 용산구, 서울경찰청, 경찰청, 행안부, 소방청, 국립중앙의료원 등에 내용이 접수됐다. 서울재난상황실에는 서울시와 구청 등 40개 기관이 통화 그룹으로 묶여 있다.

통신망을 통한 소통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서울재난상황실에서 이뤄진 통화는 183초에 그쳤다. 행안부에 따르면 참사 직후 경찰은 경찰대로, 소방은 소방대로 자체 통신망으로 상황을 전파했다. 기관 간, 즉 소방과 경찰, 경찰과 지자체 등의 상황 전파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기관별 활용 현황(10월 29일 0시~30일 24시)에서도 경찰청은 통신망 단말기 1536대로 8862초, 소방청은 단말기 123대로 1326초, 의료 부문은 단말기 11대로 120초가량 각각 소통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11월 4일 이태원 참사 중앙재난안전관리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재난안전통신망은 버튼만 누르면 유관기관 간 통화를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이번에는 그 부분이 작동이 잘 안 됐다”고 했다. 브리핑에 나선 방문규 국무조정실장도 “효과적으로 구축된 통신망이 이런 재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못한 것을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 관련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관 간 재난안전통신망을 통한 유기적 대응과 상황 전파가 제때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교통과 인파 통제, 소방 구조대와 구급차의 진입이 늦어졌다.

재난안전통신망은 경찰, 소방, 자치단체, 해경 등 재난 관련 업무를 맡는 기관 8종(총 333개)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전국 단일 통신망이다. 세계 최초로 4세대 무선통신기술(PS-LTE)을 기반으로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했다. 통신망에 연결된 무전기를 쓰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 소방, 지자체 직원들이 서로 음성·영상통화로 대화하고 상황을 공유할 수 있다. 현재 전국에 19만8000대의 무전기가 보급돼 있다.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논의는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이후 시작됐다. 경제편익 논란이 제기되면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참사 원인 중 하나로 기관 간 소통 부재가 지적됐다. 사업이 다시 속도를 냈다. 2018년 12월 통신망 구축을 위한 본사업에 들어가 2년 3개월이 흐른 지난해 5월 14일 개통됐다. 총 소요 예산은 현재까지 1조원 넘게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유지비 등을 합해 오는 2025년까지 총 1조5000여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행안부는 지난해 재난안전통신망 개통 당시 “재난 상황에서의 현장 대응력이 높아지게 됐다. 기관별 다른 통신망에서 하나의 통신망으로 기관 간 통신을 통해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현장 대응이 가능해진다”고 소개했다. 또 “최동단 독도에서부터, 백령도, 마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망 통신으로 광범위한 지역을 동시에 통합 지휘할 수 있고, 기관 간에 공통통화그룹을 통해 끊김 없이 즉각적인 음성·영상 통화가 가능하다”고도 했다. 행안부는 재난안전통신망을 기반으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과 접목해 국내 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장비와 기술을 수출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연간 시스템 관리에만 30억원가량(서브시스템 유지 비용 포함)이 들어가는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도 참사 당시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났다. 2005년 최초로 도입한 시스템은 자연재난은 물론 사회재난 정보까지 총괄하는 범정부 전자 플랫폼이다. 재난재해 관련 각종 정보와 협조요청을 이 시스템을 통해 할 수 있다. 11월 9일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자료를 보면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참사 당일 밤 11시 37분 행안부 상황실에 전달했다. 행안부 상황실은 이 지시사항을 10월 30일 0시 16분에 재난정보관리시스템을 통해 중앙부처와 전국 지자체, 유관기관 등에 전파했다. 전파까지 39분이 걸린 셈이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왼쪽)이 11월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태원 참사 수습 상황 및 향후 계획 등 중대본 회의 주요 논의사항을 브리핑하고 있다. 방 실장은 “그동안 구축된 재난통신망이 이번 재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않은 것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현장 활용 준비 덜 된 재난안전통신망

지난해 제정된 재난안전통신망법은 재난안전통신망 이용기관들이 재난 안전관리를 위한 상황 보고와 전파 등을 할 때 재난안전통신망을 이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 때 이러한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재난안전통신망이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당국이 조사 중이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우선 경찰과 소방이 서로 다른 무선통신망을 쓰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서울소방은 기존에 쓰던 극초단파(UHF) 무선통신망을 지금도 쓰고 있다. 경찰은 현 재난안전통신망 체계인 PS-LTE 방식을 쓰고 있어 서로 연동이 어렵다. 행안부는 지난해 개통 당시 “지금까지는 기관마다 서로 다른 무선통신망(VHF·UHF)을 사용해 상황 공유나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다. 재난안전통신망은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는 동시에 재난 현장 골든타임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통일된 무선통신망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이에 대해 김성호 본부장은 11월 10일 정부합동브리핑에서 “서울소방의 경우 119시스템과 재난안전통신망이 연계가 안 된 부분이 있어 연결 작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다중운집 행사에서의 안전사고를 상정한 기관 간 훈련도 없었다. 행안부도 유사한 훈련이 없었던 것이 이번 이태원 참사 때 통신망 활용이 안 된 이유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김성호 행안부 본부장은 11월 4일 “현장에서 (재난안전통신망을) 활용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실제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이후 이를 활용한 행안부 주관의 체계적인 훈련은 지난 7월 27일 강원 고성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강원도청, 소방청, 경찰청, 동부지방산림청, 제22사단, 속초의료원,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25개 기관이 대거 참여했다. 재난 상황은 산불 발생을 가정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올 7월 훈련은 산불이 난 상황을 가정하고 소방청과 산림청의 주도하에 경찰과 한전, 가스공사 등 유관기관이 재난안전통신망을 통해 대응하는 방식으로 실시됐다. 문제는 재난 현장별로 대응 체계가 다를 수 있는데, 이태원 참사와 같은 다중운집 행사에서의 안전사고 대비 훈련을 해보지 않은 것이 이번에 통신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고 했다.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정작 현장에선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주무부처의 수장도 이 통신망을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11월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을 사용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의에 “현장지휘는 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11월 7일 MBC 라디오(<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결국 (통신망이) 구비됐다 해도 현장에서 판단해 작동시켜야 하는데 현장 작동이 되지 않은 것이고, 판단이 부족했던 것”이라며 “이런 판단을 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도 하고 실제 적용하는 일을 많이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에 지급된 무전기도 부족한 실정이다. 비상근무인원을 포함했을 때 2만8000여대가 필요하지만, 현재 보유한 재난안전통신망 단말기는 1만7010여대 정도다. 행안부는 내년 말까지 추가 확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 재정 상태에 따라 단말기 보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일부 지자체는 목표 수량을 채웠고 상대적으로 단말기 보급이 더딘 곳도 있다. 지자체장 의지와 관심도에 따라서도 단말기 보급 수량에 차이가 난다”고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내년 안전 예산은 지방이양·완료된 사업 등을 고려할 때 실질적으로 4.2% 증가한 9000억원 이상을 증액해서 국회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안전 예산 효율적 편성·집행, 로드맵부터

재난안전 참사 예방과 대응을 위한 예산은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예산을 들여 시스템을 만드는 데 그칠 게 아니라 과거 참사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이에 따라 예산과 인력, 시설을 적재적소에 투입해야 한다.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을 지낸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르네방제정책연구원 원장)는 “일본은 2012년 야마나시현의 사사고 터널 붕괴로 9명이 숨지는 최악의 고속도로 사망사고 이후 관련 예산을 점검했고, 그 결과 노후화가 심해지고 있는 시설에 대한 유지관리 예산이 매년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5년간 전체 도로시설물 조사에 들어갔고 이어 유지보수 예산을 확대 배정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예산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현황 파악부터 명확히 한 후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언제 어디에 얼마를 쓰겠다는 로드맵을 공개적으로 내놔야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의 예산 편성과 집행은 이와 정반대의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지난 4월 감사원이 공개한 ‘재해재난 대비 주요 사업예산 운용실태’ 감사보고서를 보면, 행안부는 재난 복구·재난안전관리에 써야 하는 재난안전관리특별교부세(2018∼2020) 400억원을 지방행정·재정운용 우수 지자체에 대한 재정지원 등에 쓴 것으로 드러나 지적을 받았다.

재난안전 예산의 규모를 두고 예산과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사후약방문식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 예결위가 11월 7일 공개한 검토보고서에서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의 피해유형별 재난안전 사업 예산안 현황(공통분야)’을 보면, 안전문화 및 교육·훈련·홍보 등 모두 8개 피해유형에 5조7197억원이 편성돼 올해(5조5147억원) 대비 3.7% 증가했다. 다만 재난안전관리체계 사업의 경우 2501억원에서 2265억원으로 9.4%, 안전취약계층 지원 사업은 889억원에서 818억원으로 8.1%, 안전문화 및 교육·훈련·홍보 사업은 249억원에서 218억원으로 12.4% 각각 줄었다. 또 11월 10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참사 이후 현재까지 발의된 재난안전법 개정안은 모두 8건으로, 이중 7건은 주최자가 없는 축제의 안전관리를 구체화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11월 9일 중대본 회의에서 “정부는 초기대응 시스템 개선, 예방 중심과 과학 기반의 재난관리, 신종·대형·복합재난 대응 역량 강화방안 등을 담은 종합대책을 올해 말까지 수립하고, 다시는 이태원 사고와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야당과 정부의 공방이 이어진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월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에서 내년 안전 예산 부문이 1조원 이상 줄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이냐”는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내년 안전 예산은 지방 이양, 완료된 사업 등을 고려할 때 실질적으로 4.2% 증가한 9000억원 이상을 증액해 국회에 제출했다”고 답했다.

대규모 인파의 운집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이에 대비하지 않은 서울시도 재난안전 관련 예산의 편성과 집행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서울시 안전총괄실의 편성 예산은 2019년 1조1591억원에서 올해 1조5398억원으로 꾸준히 늘었지만, 지난해 집행예산 1조4265억원 중 46%인 6522억원이 도로계획과 관련 사업에 쓰였다. 배정된 예산의 3분의 2가량을 시민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도로 계획이나 도로·교량 등의 관리에 썼다는 의미다.

최승우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은 “서울시가 내년 예산안에 새롭게 추진하겠다고 밝힌 ‘서울시 도시형 재난교육 매뉴얼 제작’ 사업의 경우 재난 유형의 대상을 풍수해, 붕괴, 화재 등으로 하고 이에 대한 시민안전관리 역할을 체계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기존의 전형적인 재난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다. 사회안전 대응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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