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부터 ‘사내연애’까지, 왜 짝짓기에 과몰입할까 [손남원의 연예산책]
[OSEN=손남원 기자] 얼마전 어느 지인과의 자리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요즘 짝짓기 예능 프로가 대세인데, 자신은 “과몰입하는 성격이라 절대 보면 안된다”고 밝힌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분 역시 하지 말아야 될 일에 더 재미를 느끼는 인간 본성을 타고 나셨단다. 그래서 화려한 솔로와 찬란한 돌싱을 거쳐 황혼연애, 급기야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환승까지 그 종류와 폭도 다양한 요즘 짝짓기 예능 프로에 혼을 빼는 중이다.
과몰입 방식은 간단하다. 먼저 출연자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명을 정한다.(참고로 기자의 지인은 여성 솔로분입니다). 이제부터는 인정 사정 볼 것없는 상대 남성 품평회 시작이다. 이 사람은 인성이 안되고 저 사람은 얼굴이 부족하고. 도대체 이 잘난 ‘나’를 누가 감당할 것이란 말인가요.
인물로만 탐색을 하다가 슬슬 학력과 직업, 그리고 재산까지 공개되면 셈이 더 복잡해진다. 여기저기서 사랑의 작대기가 날아오는데 누굴 골라야되죠? 스펙 보다 느낌을 중요시하는 듯한 자신의 아바타 출연자에게 화도 나면서 감정이입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문제는 출연자와 달리 방송에서는 주변 관계에 대한 상세한 해설이 붙는다는 것. “안돼. 저 놈은 바람둥이야. 제발 넘어가지마!” 이 시점에서 말 그대로 “성질 버릴까 채널 확 돌리고 싶어진다”고 했다.
은혼식 넘기고 금혼식 기다리는 기자는 당시 이 관계자의 열변을 시큰둥하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아니 (짜고 칠 가능성이 농후한 짝짓기 예능이)그 정도로 재미있습니까?”
선입견은 금세 바로잡혔다. 모니터 삼아 가볍게 틀었던 티빙 ‘환승연애2’의 해괴망측(?)한 로맨스에 혀를 내두른 것이다. 참고로 ‘환승연애’란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지나간 연애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사람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라는 게 제작진 설명이다. 이 프로, 진짜 리얼한데, 방송에서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한 번 맛을 들이니 바로 중독이다. ‘솔로지옥’ ‘돌싱글즈’ ‘나는솔로’ 등 관심 밖이던 짝짓기 예능을 돈 들여 다시보기로 다 훑기 시작했다. “이런이런” 마음에 들면 바로 동거라니 ‘에고에고” 처음 만나 한 침대에서 밤을 지새? 외딴 섬에 들어가 배편 끝나길 기다리던 그 시절 꼰대들은 어쩌라고 이러는거야.
남녀가 서로 수줍게 웃으며 곁눈으로 살짝 바라보던 짝짓기는 지난 세기에 이미 끝난 모양이다. 수영복 패션으로 피구 게임을 즐기는 MZ세대 출연자들은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따질 것 많고 출연료 비싼 연예인에 비해 일반인 출연자들은 거칠게 없는 분위기다. 오직 내 목적은 하나, 인생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겠다고 나섰는데 창피하고 가릴 게 무엇입니까. 이 분들, 진짜 당당하고 멋지다.
급기야 첫방까지 사수했다. 빼빼로 데이라는 11월11일 오후에 방영된 ‘사내연애’다. 회사 내 연애 적극 권장, 연애가 곧 월급이 된다는 독특하고 신선한 설정이라는게 쿠팡플레이 측의 설명인데 회사 경영자 입장에서는 ‘절대 시청 불가’ 목록에 올려야될 판이다. 월급 받으면서 일은 안하고 연애질만 할 생각이야? 웬걸, 시청자 입장에서는 색다르고 쫄깃한 러브 스토리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그려.
짝짓기 예능의 붐을 몰고온 ‘하트 시그널’과도 완전히 다른 쪽으로 진화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일반인이 실제 미팅이나 맞선자리에서 만나기 힘든 최고 스펙의 미남미녀 경연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맺어진 경우도 없고 그럴 가능성이 안 보이는 연예인식 짝짓기와는 180도 다르다. 요즘 짝짓기 예능에서는 시청자들의 환호 속에 결혼에 골인하는 커플들이 곧잘 등장해 대중의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부작용과 후유증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악마의 편집인지 뭔지, 갈데까지 간 듯한 커플이 이런저런 이유로 틀어지면 앙금과 상처만 남기 마련이다. 원래는 당사자와 주위 몇몇 친구만 알고 끝날 사랑의 전쟁 흔적이 이미 온 천지에 방송되고 난 후다. 주요 포털 사이트는 물론이고 각종 SNS에 뿌려진 기사 및 사진과 게시물들도 그대로 남는다. 자신의 연애 흑역사에서 숨을 곳 없고 피하지 못할 처지인 셈. 이 부분만큼은 빼도박도 못하는 연애 리얼리티가 확실합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적은 예산으로 만들고 한 번 터지면 시즌을 거듭하며 ‘뽕’을 뽑게 해주는 효자 상품이 바로 짝짓기 예능 프로. 출연자는 사랑에 빠져 '꿩을 드시고' 제작사는 높은 시청율로 '알도 먹는' 속된 말로 '윈윈' 구도이다. 여기에 모처럼 만난 리얼리티 연애 프로에 과몰입중인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운 동안은 짝짓기 예능 붐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mcgwire@osen.co.kr
<사진> '환승연애2' '사내연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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