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진 논란의 역사
‘출연자 논란 활용한 구조적 문제’ 지적 잇달아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학폭, 사생활 논란, 성매매, 마약 등등. 엠넷(Mnet)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어찌 보면 출연자들의 논란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에도 부담일 수 있는 이러한 논란은 어째서 늘 반복될까. 올해 다시 시작한 《쇼미더머니11》의 한 장면을 보자. 힙합 오디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체육관 예선을 보여주면서 바지를 내리는 퍼포먼스를 하는 참가자들을 블러 처리해 보여줬다. 릴러말즈는 유독 자신이 심사할 때 그런 일들이 생긴다며 웃으며 투덜대는 모습으로 이 광경을 유머의 하나로 넘겼다. 즉, 이제 시즌11을 맞이한 《쇼미더머니》에서 이 정도는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해프닝이라는 걸 보여준 것.
하지만 2015년만 해도 이런 광경은 결코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당시 방영됐던 《쇼미더머니4》에서는 블랙넛이 바지를 벗는 행위로 등장부터 '논란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이미 방송 출연 전부터 강간, 시체유기 등을 소재로 한 곡을 내놓아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극우 커뮤니티 회원이란 의혹도 불거졌다. 즉 블랙넛의 출연과 그로 인해 벌어진 논란들은 일찌감치 제작진이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결국 그는 경연 도중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죽부인 퍼포먼스를 해서 녹화 중단 사태를 빚었고, 제작진은 이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당시 시즌4에서 블랙넛은 톱4에 올라 최종 3위의 성적을 냈다.
출연진 관련 논란과 인기·저변은 비례
블랙넛의 사례를 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출연진과 관련한 논란은 어떤 면에서는 인기, 저변과 비례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러한 논란을 알면서도 감수한다. 실제로 당시 《쇼미더머니4》의 제작발표회에서 이상윤 PD는 "어느 정도의 논란은 필요하다고 본다"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프로그램이라면 시즌4까지 못 왔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출연진 논란이 생길 걸 알면서도 방송을 강행하는 방식은 일찌감치 Mnet이 국내에 오디션 프로그램의 저변을 만들었던 《슈퍼스타K》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으로 일반인 출연자들의 인성 논란이 심심찮게 생겨났고, 이러한 논란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돼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슈퍼스타K2》에서 인성 논란을 일으킨 김그림이나 《슈퍼스타K7》의 신예영 같은 출연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프로그램이 악의적으로 편집해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에서 초반에는 악플 세례가 이어지는 등 해당 출연자들에 대한 비난이 집중됐지만, 갈수록 프로그램에 적응한 시청자들은 '악마의 편집'을 이유로 제작진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분명한 건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출연진 논란이 시끄럽긴 해도 프로그램에는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점이다. 대부분 이러한 악의적 편집에 대응할 수 없는 일반인들이라는 점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자극적인 편집을 버리지 않는 이유가 됐다.
논란에 대한 감수성 점점 무뎌져
앞서도 말했듯 처음 블랙넛이 바지를 벗는 퍼포먼스로 엄청난 충격을 줬던 시절에서 7년여가 지난 지금 이런 퍼포먼스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은 웃어넘길 정도로 무뎌진 게 사실이다. 특히 힙합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더해져 훨씬 자극적이고 과감한(?) 수위를 보여주는 《쇼미더머니》는 끝없는 출연진 논란으로 점철되며 성장함으로써 이제 웬만한 논란들은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일부는 그 수준이 인성 차원을 넘어 범죄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시즌7에서 15세 래퍼 디아크는 여자친구가 강압적인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폭로로 자필 사과문을 게재하고 그의 방송 분량이 편집됐다. 시즌8에서는 2차 심사를 통과했던 래퍼 킹치메인의 성희롱 사실이 드러나며 역시 출연 분량이 편집됐다. 시즌9에서는 대마초 논란이 터졌다. 메킷레인 레코즈 소속 래퍼 오윈이 대마초 흡입 혐의가 알려지며 하차했고, 래퍼 랍온어비트 역시 과거 SNS에서 대마를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프로그램은 이들의 통편집을 결정했다. 또 2018년 방영된 《쇼미더머니777》에서는 래퍼 나플라와 루피 역시 대마초 흡입 혐의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 시즌에서 나플라는 우승을, 루피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처럼 인성 차원이 아닌 범죄로까지 나아가는 사안들은 제작진이 의도했다기보다는 갑자기 터진 것이 분명하지만, 이러한 논란에 검증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늘 말하는 제작진의 이야기가 진심인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섭외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고등래퍼》에서 학폭 논란을 일으킨 영비(양홍원)와 미성년자 성매매 시도 의혹을 받았던 노엘(장용준)을 시즌6에 출연시킨 일이나, 시즌7에서 논란이 됐던 디아크를 시즌9에 다시 출연시키는 방식이 그렇다. 즉 갑자기 터진 논란에 대해 제작진도 편집을 하는 등의 대처를 하고, 사후 대책 마련도 하겠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논란이 가져온 화제성 정도만을 프로그램에 화력으로 쓰는 선택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Mnet은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 《프로듀스101》 등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케이블 채널이다. 그간 1% 시청률도 올리기 어려웠던 Mnet이 《슈퍼스타K》 시즌2에서 최고시청률 18.1%(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이른바 '대국민 오디션'으로 불리면서 이 채널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의 동력은 바로 출연자들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과하며 단기간에 스타로 등극하는 그 과정에서 프로그램은 엄청난 동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스토리가 더해져야 하고, 시즌을 거듭하며 과거와는 다른 새로움이 필요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의 성장 스토리만으로 그 동력을 이어가기 어렵다. 성장 스토리가 만들어내는 슈퍼히어로만큼 논란의 스토리가 만들어내는 안티 역시 불쏘시개로 필요해진 것이다. 여기에 《쇼미더머니》 같은 힙합 오디션은 '할 말은 한다'는 힙합 정신의 오용으로서 자극적인 욕설과 수위와 표현들을 끌어왔고, 마치 그러한 논란의 퍼포먼스가 반사회적이고 반체제적인 자기표현인 것인 양 포장되게 해줬다. 물론 그것에 실제로 '저항의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때론 자극을 위한 자극이라는 본말의 전도가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논란은 제작진만이 아니라 출연자들 역시 방송에 인지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는 단계에 들어섰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정보 홍수 시대에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상황들은, 이제 개개인들에게도 심심한 도덕군자보다는 차라리 시선을 잡아끄는 분노 유발자가 되는 편이 낫다고 부추기고 있다. 《쇼미더머니》와 같이 벌써 11년이나 장수하는 오디션의 큰형님뻘 되는 프로그램이라면 이제 그만한 책임감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적당한 논란은 별문제가 없다는 오디션의 무책임한 태도는, 출연자들도 제작진도 또 시청자들까지도 논란 자체에 대한 감수성을 무디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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