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감’의 아름다움…얻고 싶은 만큼 덜어낸 미덕이기에

한겨레 2022. 11. 1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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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신지은의 옛날 문화재를 보러 갔다][한겨레S] 신지은의 옛날 문화재를 보러 갔다
상감–이질적인 것들의 어우러짐
그릇 표면 파낸 뒤 백토로 채워
담백한 화려함 드러내는 도자기
땅의 나무에 바다의 자개 붙여
몇백년 지나도 빛나는 나전칠기
서울 강남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상감–이질적인 것들의 어우러짐’ 전시 전경. 청자 상감 모란연화갈대문 대호, 고려. 호림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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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박물관 신사분관 특별전 ‘상감―이질적인 것들의 어우러짐’(12월30일까지)은 고려와 조선 시대 공예품들 가운데 상감(象嵌) 기법으로 장식된 것들을 한데 모은 전시이다. 시대나 지역이 아닌 만든 방법으로 골라 묶은 문화재들이 3개 층의 전시실을 가득 채웠다. 그만큼 상감 기법이 우리 옛 공예에서 오랫동안 폭넓게 쓰여왔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상감 기법의 본질은 물건의 바탕과 다른 소재를 새겨 넣는 것이다. 목공예에서는 칠기에 자개를 박은 나전, 금속공예에서는 구리나 쇠로 된 물건에 금실과 은실을 끼워 넣는 입사로 나타나며 우리 공예에서 다양한 특색을 만들어냈다. 여러 공예 분야에서 이 기법이 가장 많이 나타난 것은 도자기이다. 그릇 표면에 홈을 판 뒤, 바탕과 다른 색의 흙을 메꾸어 무늬를 장식한다. 혹시 이런 설명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고려 상감청자라고 하면 대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푸른 청자를 하늘 삼아, 구름 사이를 날아오르는 학의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문화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여름에 열린 전시 1부에 비해, 지난달 막을 연 2부 전시에서는 도자기의 비중을 크게 늘렸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며 청자에서 분청사기로, 그리고 백자로 상감 기법이 이어지고 변화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고려 시대의 어느 여름, 더위에 열이 오른 옛사람의 머리와 목을 시원하게 식혀주었을 청자 베개는 상감이 거꾸로 들어간 독특한 예다. 무늬가 청자색, 바탕이 흰색이다. 문양에 흰 흙이나 검은 흙을 채워 넣는 일반적인 상감 기법과 반대로, 무늬 주변의 바탕을 파낸 뒤 흰 흙을 채워 무늬를 부각시키는 역상감 기법이 쓰였다.

청자 상감 보상화당초문 베개, 고려. 호림박물관 제공

이렇게 도자기에서 하얀 상감 무늬가 늘어나는 경향은 조선 시대가 되면 더욱 두드러진다. 분청사기에서는 넓적하게 면을 판 무늬를 백토로 채워 넣는 면상감 기법이 나타난다. 보물인 분청사기 상감 모란당초문 항아리는 원통형 항아리 가운데에 널찍하게 모란 덩굴을 새기고 백토로 채웠다. 모란 덩굴은 고려 시대에 비해 한참 단순해진 모양이지만, 시원시원하게 면으로 표현되어 담백한 화려함을 보여준다.

분청사기 상감 모란당초문 항아리, 보물. 호림박물관 제공

장식은 이미 만들어진 물건 위에 손품을 더하는 일이다. 그리다, 새기다, 찍다, 쓸다, 긁다, 담그다, 묻히다, 입히다, 두르다…. 도자기를 장식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가리키는 말들에는 다 사람의 손길이 들어 있다. 그런데 상감 기법은 하나의 동사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장식이다. 파내고 그걸 다시 채우는 두 행위가 아우러져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전시실에서 우선 마주치는 수많은 고려 상감청자들에서 얻게 되는 깨달음은, 그 아름다움이 한결 더 수고스러운 것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한 시간들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온 빛

그 시간들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나전칠기와 입사공예 분야의 유물들을 모은 마지막 전시실에 들어서게 된다. 그때 ‘바다에서 온 빛’이라는 말 한마디를 한번 떠올려보길 권한다. 나전칠기를 들여다보는 눈에 돋보기를 달아주는 주문 같은 단어들이다.

나전칠기는 목공예에 속한다. 칠기가 땅에서 자란 나무에 나무 진액을 칠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위에 바다에서 난 전복에서 껍데기를 얻어 입힌 것이다. 땅에서 온 것과 바다에서 온 것을 단단하게 잇는 것이 나전 기법이다. 칠 위에 자개를 붙이고 그 위를 칠하고 닦아내기를 반복하는 사이 표면은 반듯해지고 진줏빛 같기도 무지갯빛 같기도 한 나전의 광채가 드러난다.

나전 매죽조문 상자, 조선. 호림박물관 제공

이 전시에 나온 나전칠기 유물들 중 눈길이 가는 것은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나전 매죽조문 상자들이다. 전시실 입구 가까이에 정사각형 상자 뚜껑에 매화와 대나무, 새 무늬를 넣은 상자 두점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데, 두점 모두 가까이 다가가서 볼수록 감탄이 나오는 작품이다.

매화나무와 대나무의 줄기는 물론, 댓잎과 매화 꽃잎, 새의 깃도 하나하나 모양대로 자개를 오려 표현했다. 이것을 한층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칠 위에 무늬를 붙인 방식에 있다. 자개를 망치로 두드리는 타발법(打撥法)을 사용해서, 전복 껍데기 모양대로 둥글게 휘어 있는 자개를 평면에 납작하게 밀착시켰다. 망치로 두들기는 과정에서 자개에 여러개의 균열이 생겨나, 얼핏 보면 마치 세밀한 모자이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깨어진 조각들은 미러볼처럼 제각기 다른 각도로 빛을 반사하면서, 손톱만한 조그만 무늬들 속에 작은 빛의 소란을 일으킨다. 장인들이 솜씨를 다해 공들여 만든 물건 속에 오롯하게 옮겨진 이 바다의 빛들은 몇백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지금도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흔든다.

얻고 싶다면 잃어라

이 전시는 상감이 우리나라 옛 공예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게 무엇일까. 3층에 걸쳐 이어지는 전시를 따라가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호기심이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은입사 담배합들 앞에서 가만히 풀어진다.

철제 은입사 담배합, 조선. 호림박물관 제공

잘게 썬 담뱃잎을 담던 통에 장수를 기원하는 길상 문양을 가득 새겨 넣은 아이러니함에 한차례 웃고 나면, 은빛 무늬 아래에 있는 무수한 흠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 시대에는 금속면을 촘촘하게 쪼아서 반복해 은실이 들어갈 틈을 내는 쪼음질로 입사를 표현했다. 이 공정이 거무스레한 쇠 위에 남긴 빗금 같은 흔적들은 한번 발견하면 여간해서는 시선을 떼기가 어렵다.

상감은 바탕을 일부러 덜어내고 다른 재료를 들이는 기법이다. 그리고 다른 빛깔을 들여오는 그 과정은 시늉만이 아니라 더없이 분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상감청자처럼 칼로 파기도 하고, 나전칠기처럼 다른 재료의 높이만큼 바탕을 새로 쌓아 올리기도 하고, 입사처럼 수없이 생채기를 겹쳐낸 끝에 하나의 물건 안에 새로운 빛이 온전하게 자리를 잡는다.

더 얻고 싶은 만큼 확실하게 잃을 것. 이러한 상감의 법칙은 삶이 더 색다르길, 더 많은 변화들로 빛나기를 갈망하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지 모른다. 다른 색 하나를 더 가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깊숙이 그것을 끌어안아야 하는가. 크고 긴 전시를 본 마지막엔 다시, 나의 바탕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

문화재 칼럼니스트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재 전시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사회 이슈나 일상과 연결하여 바라보며,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관람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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