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당사자’ 한자리에 모아…평화·공존 위해 헌법까지 고쳐

이제훈 2022. 11. 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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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헌법 3조에서 통일은 "오직 평화적 방법으로만, 민주적으로 표현된, 남-북 아일랜드 주민 다수의 동의를 얻어, 남-북 아일랜드의 사법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김동진 박사는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주는 교훈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바로 아일랜드의 헌법 개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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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기획][한겨레S] 성금요일협정에서 배워야 할 것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 있는 ‘아이리시 이주 박물관’(EPIC) 내부에 설치된 전시물. 아이리시 정체성이 강한 미국 현직 대통령 조 바이든의 사진 옆에 “아이리시 혈통의 미국 대통령은 몇명일까?”라는 질문이 적혀 있다. 제시된 보기는 23명, 13명, 7명 세 가지다. 정답은 기사 본문에 있다. 더블린/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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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에 한국의 평화 연구자·활동가들이 깊은 관심을 보이는 건 아일랜드섬과 한반도를 관통하는 식민·분단·무장갈등의 역사 때문만은 아니다. 아일랜드섬 분단 역사의 분수령이라 할 ‘성금요일협정’(벨파스트 평화협정, 1998년 4월10일)의 정신과 제도적 구상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먼저 온 미래’로서 안내자 구실을 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성금요일협정에 따라 이뤄진 아일랜드의 헌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아일랜드는 “(영국에 속하는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아일랜드섬 전체”를 영토로 규정한 헌법 2조를 “아일랜드섬에서 태어난 개인은 ‘아일랜드 민족’(Irish nation)의 구성원”이라는 내용으로 바꿔 국민투표(1999년 12월2일)를 거쳤다. 아울러 헌법 3조에서 통일은 “오직 평화적 방법으로만, 민주적으로 표현된, 남-북 아일랜드 주민 다수의 동의를 얻어, 남-북 아일랜드의 사법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일방적 영토 주장과 통일 시도를 헌법 차원에서 원천 차단한 것이다.

이는 정상회담을 다섯 차례나 하고도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규정한 헌법 3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을 개정·폐기하지 않는 한국 사회가 곱씹어볼 일이다.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김동진 박사는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주는 교훈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바로 아일랜드의 헌법 개정”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섬 갈등의 모든 당사자가 협상 탁자에 둘러앉았다는 사실이 아주 중요하다. 영국 정부와 아일랜드 정부는 물론 북아일랜드의 모든 주요 정당이 협상에 참여했다. 무장갈등의 최선봉에 선 이들도 협상장에 초대받았다. 문밖으로 쫓겨난 주요 당사자는 없다. 성금요일협정이 온갖 어려움에도 휴지 조각 취급을 받지 않는 까닭이다.

성금요일협정의 정치철학적 기초가 ‘연정, 비례대표, 상호거부권’ 등 권력 공유의 제도화를 추구하는 ‘협의주의’라는 점은 “승자독식 제도에 익숙하고 남남갈등이 심각한 한국 사회가 곱씹어볼 대목”(최완규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장)이다. 성금요일협정에 따라 북아일랜드자치정부는 ‘영국·개신교’계와 ‘아일랜드·가톨릭’계가 총리와 부총리를 나눠 맡는 공동정부 체제로만 구성·운영한다. 양쪽 모두에 ‘거부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것이다.

미국이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의 강력한 중재자·수호자로 나선 사실은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인구의 13%가 아일랜드계이며, 역대 미국 대통령(46대) 가운데 23명이 아일랜드계인 ‘미국 내 아이리시 여론’이 동력이다. 현직인 조 바이든을 포함해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로널드 레이건, 리처드 닉슨, 존 에프 케네디, 우드로 윌슨 등이 아일랜드계다. 아이리시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바이든 대통령은 10월25일(현지시각) 리시 수낵 새 영국 총리와 한 첫 통화에서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유럽연합의 갈등 탓에 흔들리는 ‘성금요일협정’ 체제의 보호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다수 외신이 전했다. 미국이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에서 자임한 ‘선의의 중재자’ 구실은 한반도에서 70년 넘게 북한과 적대관계를 지속해온 상황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려면 ‘미국의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주문이 많은 까닭이다.

더블린/글·사진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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