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북핵·미사일 막고자 中압박…역내 미군 군사력 증강도 거론
주둔 병력 증원보다 전략자산 전개 확대·첨단무기 배치 가능성 커
최근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연합훈련 확대…"미군 이미 상당히 강화"
(워싱턴·서울=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김지헌 기자 = 북한이 계속해서 도발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북한의 행태를 사실상 묵인해온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 역내 미국의 군사력 강화라는 카드까지 꺼냈다.
미국이 중국 주변에 더 강한 전력을 두는 것을 원치 않으면 북한의 동맹인 중국이 나서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 협조하라는 일종의 압박 전략인 셈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 등 도발을 강행하면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고 동맹에 대한 안보 지원을 위해 전략자산 전개 등으로 역내 군사력을 증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1일(현지시간) 캄보디아로 가는 에어포스원 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14일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에서 북한의 위협 문제를 확실히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 준비 움직임 등을 거론하면서 북한이 계속 이런 길을 걸으면 역내에서 미국의 군사·안보력(military and security presence·군 주둔, 무기 배치·전개 등을 아우르는 개념)을 더 강화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즉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면 동아시아에 미군의 전력을 강화하겠다고 중국에 통첩한 것이다.
그는 미국이 이런 결정에 이를 수 있는 근거로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 일본뿐 아니라 지역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최악의 행동을 제지하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하는 게 중국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미국이 이런 문제까지 거론하고 나선 것은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과 계속되는 도발을 저지하려면 북한의 동맹으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인 중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거부 권한이 있는 중국은 지난 4일 회의를 포함해 안보리 차원에서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행위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북한을 비호하는 모습까지 보여왔다.
당초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경쟁하면서도 협력이 가능한 분야로 북한을 꼽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중국을 움직이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설리번 보좌관의 이 같은 발언은 중국이 역내 미국의 군사력 증강을 극도로 경계한다는 점을 파고든 듯하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된 미군이 북한의 위협에만 대응하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등 중국의 핵심 국익이 걸린 지역으로 투입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실제 중국은 미국 군함이나 항공기들이 항행과 항해의 자유를 내세워 공해인 대만 해협을 비행하거나 항해할 때마다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엔 미국이 호주에 B-52 전략폭격기를 배치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관영매체를 통해 발끈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앞으로 역내에서 미군의 군사력 증강이 어떤 형태로 이뤄질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우선 가장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는 동맹과 연합훈련 확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폭격기와 잠수함 등 전략자산 전개 확대가 거론된다.
이런 내용은 이미 미국이 한국, 일본과 협력하며 추진해온 것들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스텔스 기능을 가진 양국의 제5세대 전투기인 F-35A를 동원해 연합비행훈련을 했다. 또 미국은 9월 23일부터 10월 8일에는 미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동해에 파견해 한국 해군, 일본 자위대와 함께 훈련했다.
미 핵 추진 잠수함 키웨스트는 지난달 31일 부산항에 도착했고, 최근 실시된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에는 양국에서 240대의 항공기가 투입돼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특히 훈련 마지막날에는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B-1B 전략폭격기 2대가 합류해 양국이 합의한 확장억제 강화를 과시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3일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와 주변에 전략자산의 전개 빈도와 강도를 늘려 상시 배치에 준하는 효과가 있도록 운영하기로 했다.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상시배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그와 유사한 효과를 내도록 강화하겠다는 조치로 평가됐다.
아울러 일본 교도통신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미국이 핵 추진 항공모함을 동해로 보내고 한미일 3국 군 고위 간부가 함께 승선해 북한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군의 장비 현대화와 첨단무기 추가 배치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일본 오키나와현에 있는 가데나 공군기지에 배치된 노후 F-15 전투기를 세계 최강으로 평가되는 F-22 스텔스기로 대체하고 있다.
지난 10월 23일에는 일본 해상자위대 가노야 항공기지에 세계 최강의 무인공격기 MQ-9 8대를 운영하는 제319원정정찰대대를 재창설해 주둔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추가 배치하는 등 미사일 방어체계를 강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이런 동향에 대해 "동아시아 미군은 이미 상당히 강화됐다"면서 "미국은 북한의 7차 핵실험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항공모함 추가 투입뿐만 아니라 강습상륙함 등 다양한 전력이 배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군의 군사력 증강이 주한미군 및 주일미군의 증원 등 상시 주둔 병력을 큰 폭으로 늘리는 형태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국에 2만8천500명, 일본에 5만5천 명의 미군 병력을 각각 주둔시키고 있다.
현재 미국은 무엇보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6월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각각 3천명과 2천명 규모의 전투여단을 순환 배치하고, 영국에 F-35 스텔스기 2개 대대를 추가로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보다 약 2만명 증가했다.
미국의 국방·안보 예산을 담은 2022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은 주한미군 규모를 현원인 2만8천500명으로 명시하고 그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고 적시했으며, 현재 전력 수준을 유지한다는 내용은 제54차 SCM 공동성명에도 포함됐다.
따라서 주한미군 규모 조정은 미국 법 개정은 물론 한미 양국의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역내 미군을 증원할 방법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된 태평양해병대(MARFORPAC) 규모를 늘리는 방안도 제기한다.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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