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나의 것] 세월호와 이태원, 반복된 참사 보도 삽질
[미디어오늘 김윤정 칼럼니스트]
이태원 참사로 대한민국이 또 한 번 슬픔에 잠겼다. '또 한 번'이 중요하다. 1980년대생들은 이태원 참사를 보며 H.O.T.의 '아이야'를, 1990년대생은 방탄소년단의 '봄날'을 떠올렸다고 한다. 여전히 “피우지도 못한 아이들의 불꽃을 꺼버리”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반복”하는 세상(아이야). “어떤 어둠도 어떤 계절도 영원할 순 없다”(봄날)고 믿으며 달라진 세상을 기대해봤지만, 그 기대를 다시 배신한 세상. 그저 10대 시절 좋아했던 노래를 반갑게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세상을 한탄하며 떠올린 것이다. 유행가는 시대를 노래한다는데, 노래가 기록한 끔찍한 참사가 반복되고 그 아픔과 슬픔이 시대를 초월해 이렇게 공감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비극이다.
1996년생인 한 후배는 이태원 참사 보도를 지켜보며 자꾸만 '다음엔 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1999년 씨랜드 참사 당시 유치원생들의 나이가 1992~1994년생,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생들은 1996~1998년생, 이태원 참사에서도 20대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왔는데 모두 후배의 또래다. 후배는 씨랜드 참사는 너무 어려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세월호에 이어 이태원 참사까지 또래가 대형 참사의 희생자가 된 것을 목격하고 나니 알 수 없는 무력감과 공포감이 밀려온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가 씨랜드, 세월호라는 끔찍한 비극을 겪고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원인을 밝히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정부는 “주최자가 없다”,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했다. 언론은 SNS에서 무분별하게 유포되던 현장 사진과 영상, 확인되지 않은 사실 퍼 나르기에 앞장서기까지 했다.
참사 직후인 지난달 30일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인용해 “아이들이 사탕 얻는 핼러윈, 한국에서는 클럽 가는 날” 류의 보도가 쏟아졌다. 그중에는 3대 '정통' 일간지로 꼽히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도 있었다. 댓글에는 '외래 변종 문화를 즐기러 갔다 죽었다'는, 유족과 생존자까지 두 번 상처 입히는 반응이 달렸다.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아미들로 부산이 북적였고, 미국인 유튜버가 제작한 현실판 '오징어게임'을 1억 명이 보는 세상을 보도하던 언론이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1년에 하루, 서양에서 기원한 축제를 즐기러 나선 것이 참변의 피해자가 될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모를 리 없다.
삽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토끼 머리띠를 한 남자', '현장에 나타난 유명인' 찾기에 나선 온라인 마녀사냥에 일조했고, 핼러윈 현장 중계 중 상황이 급박해지자 구조 활동을 한 BJ를 '사고 현장에서도 별풍선 후원을 받았다'고 매도했으며, 사람들이 심정지된 채 이송 중이던 급박한 상황에서 현장 컨트롤타워인 소방서장을 붙들고 의미 없는 질문을 쏟아냈다.
그 사이 BBC와 로이터의 이태원 참사 보도는 대형 참사 발생 시 언론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BBC는 소방방재학 교수의 “1제곱미터 당 한계 인원이 5명을 넘어선 순간부터 위험이 시작됐고 한계 인원이 거의 10명에 육박한 순간 참사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번 참사의 직접적이고 유일한 원인은 군중 밀집도를 관리하지 않은 당국에 있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정상적으로 통제되던 군중이 한계선을 넘으면 생명을 보호하고자 하는 개개인의 생존 욕구로 인해 동물적 행동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의 설명도 함께였다.
로이터통신은 이태원이라는 지역의 특징과 사건 발생 장소의 지리적 특성, 탄탄한 취재를 기반으로 작성된 사건 타임라인과 현장 증언, 관련 기록과 전문가 의견 등을 인터랙티브로 정리했다. 현장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사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왜 군중이 현장을 제대로 빠져나올 수 없었으며 특정인을 찾아 범인으로 모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깨닫게 도왔다.
[이태원 참사 로이터통신 인터랙티브 기사=How Seoul crowd crush turned Halloween revelry to disaster]
당시 우리 언론이 '뒤에서 계속 밀던 사람들'에 대한 개개인의 인터뷰를 검증없이 그저 전달하며 대중이 가상의 범인 찾기에 매몰되도록 돕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BBC와 로이터의 보도는 참사 진상 규명에 더 실질적 도움이 되는 뉴스였다. 재난 보도에서 시민이 언론에 기대하는 역할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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