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기후 정의! 지금 당장!”…세계 10~20대 외침, 총회장 정적을 깨다
리듬을 탄 구호는 경쾌했고, 목소리는 우렁찼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기후 정의!”
“언제 원하는가?” “지금 당장!”
11일(현지시각) 오전 10시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Firday For Future)’ 회원 100여명의 시위가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가 진행 중인 이집트 샤름엘셰이크 총회장 캠퍼스의 고요함을 깼다. 노래처럼 들리는 이들의 구호는 변주를 이어갔다.
“연대하는 사람들은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제지할 수 없는 또다른 세계가 가능하다!”
“기후정의는 권리다, 부자와 백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더이상 ‘블라블라블라’(이러쿵저러쿵) 하지 말고, 손실과 보상 재원을 지금 당장!”
여기서 ‘블라블라블라’는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당사국총회(COP26)를 한달여 앞둔 9월28일 이탈리아 밀라노 ‘청소년 기후정상회의’ 연설에서 스웨덴의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 대응에 미흡한 세계지도자들을 겨냥해 사용한 말이다. 당시 툰베리는 주요국 정상들이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행동은 하지 않고 말만 늘어놓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 말을 내뱉었다.
행진이 시작되자,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이집트의 따가운 햇살에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가운데 이들은 “당장 기후 보상”, “돈을 내라, 손실과 보상 재원을 지금 당장!”, “마파(MAPA)와 함께 서자” 등의 펼침막을 들고 목청껏 구호를 외치며 행진에 나섰다. 마파는 ‘기후변화에 가장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지역들(Most Affected People and Area)’이라는 뜻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은 가장 적지만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과 지역을 의미한다. “우리 동네가 물에 잠기고 있다”, “우리나라는 당신들의 공장이 아니다”, “화석 연료를 멈춰라”, “지금 당장 기후보상하라”는 종이에 영어나 일본어로 쓴 손팻말도 눈에 띄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행동을 촉구하는 세계 10~20대 청소년·청년들의 연대 모임이다. 2018년 스웨덴의 고등학생이었던 그레타 툰베리가 매주 금요일 스톡홀름 의회에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고, 그 뒤 금요일에 행하는 ‘글로벌 기후 파업’이 전세계 청소년들 사이로 확산됐다. 하지만 정작 툰베리(19)는 이번 27차 당사국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나는 많은 이유로 COP27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COP은 권력 있는 자가 그린워싱을 통해 자신을 홍보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불참 이유를 밝혔다. 그린워싱은 위장 환경주의라는 뜻으로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으면서 이익을 목적으로 친환경으로 포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당사국 총회(COP26)에서는 10만명이 가두 시위와 행진에 나서는 등 전통적으로 당사국 총회는 시위와 행진의 장이었다. 그러나 이번 27차 당사국 총회에서는 이집트 정부가 기후 시위를 특정 장소에서만 열도록 했고, 또 시위 36간 전에 관련 계획을 당국에 알리도록 했다. 이 때문에 시위는 가뭄에 콩 나듯 열렸고, 더욱이 행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렇게 시위가 꽁꽁 언 가운데 이날 10~20대 청소년·청년들이 샤름엘셰이크의 정적을 깨며 금요 시위와 행진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집회·시위와 관련해 이번 27차 당사국 총회의 얼어붙은 분위기, 가두가 아닌 총회장 캠퍼스 내에서의 행진인 탓에 집회와 행진이 길게 이어질 수는 없었다. 반환점을 돌며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 행진 거리는 기껏해야 총 50m 남짓이었다. 반환점에 멈춰선 ‘미래를 위한 금요일’ 회원들은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콜롬비아에서 왔다는 인엔루어는 “손실과 피해에 대해 책임 있는 나라들이 책임 있는 행동에 당장 나서야 한다”고 했다. 나이지리아에 온 청년은 “더 이상 ‘약속’을 더 하기보다 이젠 ‘이행’을 해야한다. 손실과 피해 재원, 적응 재원, 감축 재원, 기술 이전 등이 성공적으로 아프리카 나라들로 전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을 꼭 붙잡고 발언에 나선 여성 두 명은 “우리는 동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왔다. 우리는 기후위기에 페미니스트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평화와 정의를 원한다. 젠더 정의가 기후 정의”라고 힘줘 말했다.
이렇게 진행된 시위와 행진은 35분여만에 ‘짧게’ 마무리됐다. 시위 종료 뒤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서 온 마카이번 밤보이(26)는 이번 총회에 참석한 이유에 대해 “나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고,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기후 정의’를 목표로 싸우고 있다“며 “이러한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증폭돼야 하고 그게 내가 여기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시에라리온은 한쪽에는 산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바다가 있는 매우 작은 나라다. 우리는 1년 중 6개월의 햇빛과 6개월의 비, 두 계절만 있다. 비가 오면 해수면이 상승하고 침식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이 무너진다. 나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이러한 손실과 피해에 대한 기후 금융이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기를 원한다.”
밤보이와 함께 시에라리온에서 온 로슬린 이사타 맨사레이(28)도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프리카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 미만의 책임이 있지만, 홍수와 가뭄 등의 피해에 노출돼 있다. 선진국들은 (2020년까지) 매년 1천억 달러(약 140조원)를 조성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개도국 지원을 위한 재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에서 온 밋치 존르 탄(25)는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라며 “우리는 여기에 기후위기로 인해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기 때문에 모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필리핀은 세계에서 가장 기후위기에 취약한 나라 중 하나다. 사람과 집이 홍수로 휩쓸려 가고 있다. 우리는 이익을 우선시하는 시스템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시스템으로 변경되길 원한다. 기후 정의를 달성하려면 우리가 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샤름엘셰이크/글·사진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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