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암이라니…‘보호자’로서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

한겨레 2022. 11. 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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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소소의 간병일기][한겨레S] 소소의 간병일기 / 새 연재
청천벽력 같은 발암 통보
“보호자가 울면 환자는 더 불안”
갑자기 선고받은 보호자 역할
심장 문제없다며 안도한 엄마
암이라고 어떻게 말해야 하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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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나보다 잘 걷고, 나보다 잘 먹고, 나보다 잘 웃는 엄마였다. 그런데 엄마가 암이라니.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사한 지 1년도 안 돼서 벌어진 일, 새집의 기운이 안 좋았던 걸까. 코로나19를 핑계로 교회에 몇년 동안 안 나가서 벌을 받은 건 아닐까. 코로나 백신 3차를 맞은 지 두달 만에 증상이 나타났으니, 혹시 백신 때문인 건 아닐까. 아니면 삼재인가. 지난해 말부터 둘째 여동생 시어머니의 팔 골절, 연이어 코로나19로 인한 셋째 여동생 시아버지 사망을 보면 그럴 것도 같다. 근거 없는 추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갑작스러운 불행이 두려운 나머지 비합리적인 곳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찾고 있었다.

등 통증 두달 동안 병원 돌고 돌고

증상은 있었지만 알아채지 못했다. 지난 3월 초, 동생네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온 엄마는 담 때문에 2주째 등이 아프다고 했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려고 작은 공으로 엄마 등을 살살 문질렀는데도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좋아하던 해물찜은 몇 젓가락 들지 않고 내려놨고, 내리 4시간 잠만 자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한의원, 정형외과, 내과 등 찾아간 병원의 개수가 하나씩 늘어갈 때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선 안 됐었다. 자동차가 주차장 방지턱을 넘으며 덜컹거리는 작은 움직임에도 가슴 통증을 입 밖으로 흘리던 그때라도 의심했어야 했다. 딸 셋은 결혼하고, 함께 사는 아들은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업무의 반복이라 엄마의 통증을 세심하게 살필 수 없었다고 한들 변명이 될까. 엄마를 방치했다는 자책감이 모든 생각을 집어삼켰다.

통증이 한달쯤 됐을 때, 엄마는 유튜브에서 ‘등 통증’을 검색해보고는 내게 전화를 걸어 “췌장암이면 어쩌냐”는 걱정을 했다. “가족력도 없는데 웬 췌장암? 유튜브 보고 걱정하지만 말고 병원 가봐”라는 무심한 나의 대꾸에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심상찮다고 여긴 엄마는 정기적으로 진료를 보던 내과에서 혈액 검사, 복부초음파 검사 등을 진행했다. 혈액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다. 신장 기능을 가늠하는 크레아티닌 수치가 3개월 만에 0.74㎎/㎗에서 1.9㎎/㎗로 치솟았다. 측정 기관마다 조금 다르지만 정상 범위는 0.5~1.4㎎/㎗로 본다고 했다. 내과 의사가 급하게 3차병원 예약을 잡고 진료 의뢰서를 써줬다. 그제야 우리 4남매는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래도 암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2019년 암유병자(1999년 이후 확진받아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사람)는 약 215만명, 전체 인구의 4.2%로 25명당 1명꼴인데도 암은 아닐 거야라고 애써 생각을 밀어냈다. 돌이켜보면 할아버지가 대장암으로, 이모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할머니가 간암 병력이 있을 정도로 우리 가족은 암과 무관하지 않은데 말이다.

신장내과에선 신부전이 의심되는 혈액 수치이긴 하지만 등 통증은 신장과 무관하다고 봤다. 신경외과와 협진을 해 척추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를 찍었다. 신경외과 진료를 보고 엠아르아이를 찍는 데까지 1주일, 결과를 듣는 데는 또 1주일이 걸렸다. 2주 동안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리며 엄마는 눕고 일어나는 것도 버거워 “끙” 소리를 냈다. 엠아르아이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전업주부인 여동생이 13개월짜리 조카를 안고 통증의학과, 심장내과로 동분서주했다. 전화로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는 ‘입 효도’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재택근무를 하다 말고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 울고 말았다.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병명이 뭔지 모를 때의 불안감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엠아르아이 판독 결과 척추에 골절이 6~7군데 있네요. 그래서 통증을 느끼셨던 같아요. 최근에 낙상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그럼 암에 걸린 적 있나요?” “아니요.” 4월 중순, 의사 입에서 처음으로 ‘암’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골밀도가 낮거나 암 때문에 골절이 생길 수 있어요. 골주사와 골밀도 검사를 해봅시다. 척추 보호를 위해 상체보조기 착용하시고요.” 이틀 뒤 심장내과에 입원해 관상동맥 조영술을 받기로 했다는 내 말에 신경외과 의사는 심장내과 의뢰서에 ‘wbbs, cancer marker, 상체보조기 요청’이라고 적었다. 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암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에서 ‘암이구나’라는 확신으로 넘어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경외과 진료 이틀 뒤 하루 휴가를 내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관상동맥 조영술을 받고 나오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간호사가 날 찾았다. 검사실에 들어서는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다. 문제가 있다는 걸. 엄마는 에스에프(SF) 영화 속 실험실에 갇힌 주인공처럼 유리방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담당 의사가 지난 진료 때완 달리 다정하게 설명했다. 그 다정함이 되레 더 불길했다.

“우선 혈관에는 문제가 없어요.” “우선”이라는 부사와 “혈관에‘는’”이라는 조사에 귀가 멈췄다. 다른 곳이 안 좋구나. “혈액 수치가 나빠요. 혈액질환 같아요. 예를 들어 백혈병 같은 건데 저는 그쪽 전문이 아니라서 다른 과로 전과해서….” 담당 의사의 말이 웅웅거리며 산발적으로 흩어졌다. 집중해 들으려고 해도 소리는 쥐어지지 않았다. 의사가 구체적인 병명을 언급한 걸 보면, 어느 정도 확실하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었다. 검사실에서 함께 나온 간호사에게 물었다. “어떤 혈액질환을 의심하는 건가요?” “다발성골수종이요.” 엠아르아이 검사 결과를 들은 뒤 인터넷에서 검색한 결과 중 하나였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은 어쩌면 이제 명제가 돼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엄마한테 눈물 들키지 않으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 몰랐고, 말은 문장을 잇지 못했다. 검사실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울고 있으니 은발의 의사가 “보호자가 이러면 환자가 더 불안해한다”고 했다. 들숨도 날숨도 멈춘 채 눈물을 삼켰다. ‘보호자’라는 호칭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보호자로서의 임무가 주어졌다.

혈액암 의심 소견에 따라 심장내과 입원 병동에서 혈액종양내과 병동으로 옮겼다. 왜 병실을 옮기냐는 엄마의 질문에 “심장은 문제가 없으니까 다른 검사를 해보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엄마는 목사님에게 심장에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안도하는 눈치다. 병실 밖으로 나오면 울고 병실 안으로 들어가면 울음을 그치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나저나 나도 낯선 이 병을 엄마한테 언제,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암환자 가족으로서 첫 시험대에 올랐다.

소소

갑작스레 ‘엄마 돌봄’을 하게 된 케이(K)-장녀가 고령화사회에서 청년이 겪는 부모 돌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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