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디까지 가 보셨습니까?”…유홍준 교수의 체험적 답사기

김태형 2022. 11. 1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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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토박이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3~4
술술 풀어낸 사대문 안동네와 한양도성 밖의 역사와 사연
문화예술 도시로 가꾼 여러 인물도 함께 조명


※ [주말& 책] 매주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네거리에서 종로2가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흔히 인사동길이라고 부릅니다. '인사동 여행 가자', '인사동 구경 가자'는 말은 이 길을 포함해 주위 골목길도 걸으면서 뭔가를 체험해보자는 의미로 통용되고는 합니다.

실제로 인사동에 가면 볼거리가 많습니다. 길가에는 고서점과 화랑, 필방은 물론 민예품, 공예품 가게가 줄지어 있습니다. 찻집은 물론 현대식 카페도 있고, 박물관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사동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 인사동길의 숨은 매력은... '곡선의 미학을 느껴보세요'

하지만 인사동은 무엇보다 길 자체가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던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에서 인사동의 매력을 먼저, 곡선에서 찾았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지난달 25일 서울편 완간을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동에 들어서면 쾌적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서울 인사동을 보세요. 인사동을 우리가 걸어가면 굉장히 쾌적해요. 어느 길보다 쾌적해요. 그 쾌적한 이유 가운데 첫 번째 이유가 길이 S자로 살짝 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길을 보면요. 안국동 사거리(북)에서 인사동 네거리(남)까지 오백 미터 정도일 뿐입니다. 그 오백 미터 길이 일직선으로 났으면 절대 지금의 인사동처럼 (멋진) 길이 될 수가 없었어요."

유홍준 교수는 인사동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더 인간적이라는 것이죠.

"인사동길을 걷게 되면, 끝이 안 보이고 계속 풍경이 바뀝니다. 앞에 나타나는 거리의 모습이 계속 변하는 것이죠. 이게 도시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아이디어를 주는 겁니다. 도시 설계를 하게 되면 직선으로 걸을 수 있는 길만 연구하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는 곡선이 있을 때 더 인간적 체취를 느끼기 마련이거든요."

인사동을 가게 되면, 굽은 듯 아닌 듯 살짝 굽은 인사동길을 한 번쯤 눈여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이처럼 '문예의 향기와 인간적 체취가 넘쳐나는 인사동 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쌓이고 쌓여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유홍준 교수가 10월 25일,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동길의 매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서울편 3: 북악산, 서촌, 북촌, 인사동, 북한산 등 답사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는 11번째 책이자 서울편으로는 3권인 '사대문 안동네'편은 인사동을 비롯해 북악산과 서촌, 북촌, 북한산 등에 얽힌 역사와 사연을 들려줍니다. 서울을 문화예술의 도시로 가꾼 여러 인물도 함께 조명합니다. 고층빌딩과 대형쇼핑몰,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으로 둘러싸여 정작 서울 사람도 잊고 지내고는 하는 육백 년 도읍지의 참모습을 '답사'를 통해 보여주는 겁니다.

■ 서울편 4: 성북동, 선정릉, 봉은사, 망우리 등 답사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는 12번째 책이자 서울편으로 4권은 '강북과 강남'편입니다. 성북동과 선정릉, 봉은사,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 망우리에 깃든 갖가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에 앞서 2017년 출간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1권은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 2권은 한양도성과 덕수궁, 성균관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자간담회에서 유홍준 교수는 서울 답사 얘기는 궁궐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간 9권(서울편 1권), 10권(서울편 2권)으로 마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특히 이번에 새로 출간한 서울편 3권과 4권은 인사동, 강남, 강북 등 현재 도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어떻게 써야 좋을지 막막하기도 했고, 감이 잘 잡히지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5년 전, '유홍준과 함께하는 서울 답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답사객들에게 서울의 옛 일화들을 들려줄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답사객들은 유 교수의 체험적 서울 얘기를 너무나 재미있게 들었는데, 특히 한 학생이 경청하더니 손에 든 귤을 까서 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유홍준 교수는 궁금해서 학생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마워요. 근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선생님 어렸을 때 얘기가요."
"실례지만 몇 살이세요?"
"선생님과 띠동갑이에요."

서울 토박이인 유홍준 교수의 체험적 얘기에 푹 빠졌던 학생은 띠동갑이 맞았다고 합니다. 다만, 48살 차이 나는 띠동갑 중학생이었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그때 나는 내가 살면서 보아왔던 것과 그것이 변해버린 모습을 말하는 시대적 증언으로 서울 답사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울답사기 서울편 3권인 '사대문 안동네'편과 서울편 4권인 '강북과 강남'편이 독자를 찾아가게 됐습니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993년 1권 출간... 내년이면 30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이번에 나온 서울편 3권, 4권을 포함해 12권이 나왔습니다. 답사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1권은 지난 1993년 출간됐습니다. 내년이면 30년이 됩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1권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29년 전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은 어느 곳을 가장 먼저 소개했을까요?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이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서 유홍준 교수는 그저 국토 최남단인 '땅끝마을'이기 때문에 해남과 강진을 고른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국토의 최남단,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장 제1절로 삼은 것은 결코 무작위의 선택이 아니다. 답사라면 사람들은 으레 경주·부여·공주 같은 옛 왕도의 화려한 유물을 구경가는 일로 생각할 것이며, 나 또한 답사의 초심자 시절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1993년 초판 출간)

답사가 그저 유적과 유물을 찾아가는 일은 아니라는 유홍준 교수는, 아래와 같이 말을 이었습니다.
강진과 해남은 우리 역사 속에서 단 한번도 무대의 전면에 부상하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일 없었으니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는 대단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한 곳이며, 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어쩌다 나 같은 답사객의 발길이나 닿는 이 조용한 시골은 그 옛날 은둔자의 낙향지이거나 유배객의 귀양지였을 따름이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1993년 초판 출간)

무엇이 유홍준 교수를 끌었던 것일까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거기에는 뜻있게 살다간 사람들의 살을 베어내는 듯한 아픔과 그 아픔 속에서 키워낸 진주 같은 무형의 문화유산이 있고, 저항과 항쟁과 유배의 땅에 서린 역사의 체취가 살아있으며, 이름없는 도공 이름없는 농투성이들이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꿋꿋함과 애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향토의 흙내음이 있으며...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1993년 초판 출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이 전하는 얘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사동과 성북동도, 서촌과 북촌도, 북한산과 인왕산도, 그 안에 선현들의 역사와 사연이 남아있고 살아있기 때문에 답사의 의미가 빛나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유 교수는 요즘 국토박물관 순례라는 개념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후속편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아직도 못다 한 얘기가 너무 많다면서, 20권까지는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도 밝혔습니다.

김태형 기자 (in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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