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손’ 담쟁이…가을 단풍의 황홀함, 겨울 넝쿨선의 치열함

정충신 기자 2022. 11. 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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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한옥레스토랑 ‘고당’ 담벼락에 검붉게 물든 담쟁이 단풍이 황홀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2020년 10월24일 촬영
서울 서대문구 신촌 차없는 거리 골목의 담쟁이 단풍. 2019년 11월16일 촐영
북한강변의 경기 남양주시 커피박물관 겸 레스토랑 ‘왈츠와 닥터만’의 담쟁이 단풍이 붉게 물들어 있다.2020년 10월24일 촬영
경기도 남양주시 한옥레스토랑 ‘고당’ 담벼락 담쟁이가 햇살을 받아 붉은색, 파란색, 하얀색으로 빛나고 있다. 2020년 10월24일 촬영
서울 종로구 홍파동 홍난파가옥 담쟁이 단풍이 붉게 불타오르고 있다. 2020년 10월25일 촬영
아카시아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 단풍이 물들고 있다. 2021 11월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촬영
꽃카페 담쟁이 겨울 다리 2 : 경남 함양 통영대전고속도로 지곡나들목 근처 다릿발에 담쟁이 넝쿨선이 그린 화폭이 경이롭다. 2021년 12월24일 촬영. 최세현 지리산생명연대 대표 제공

■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 담쟁이 붉은 단풍

시인들이 사랑하는 담쟁이 ‘도전·희망·치유’ 메시지 전해

담쟁이 꽃말은 ‘우정’…한방에선 당뇨병 등에 효능‘석벽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평지에서 어지럼증을 느끼는 생명이 있다/절망을 기회로 만드는 특별한 비결이 있다/절벽은 높고 가파르고 넓을수록 축복이다/그곳은 평화의 땅 난공불낙의 마추픽추다/남을 밀어내기보다 자신을 혹독한 환경에/적응시키는 처절한 너의 인내는 눈부신 개척이다/밟히는 걸 참지 못하는 고고한 너의 품성이다/현기증에 떠는 바람의 공포를 짜릿하게 즐기며/

전율하는 너의 감성은 허공을 지배하는 너의 경지다/구석구석 실가지 어느 한 줄기라도/

소홀함이 없는 원활한 소통은 한 뿌리의 긍지다/덮어주고 감싸주고 시멘트벽에도 숨길을 불어넣어/푸른 생명으로 한 몸이 되는 너는 부활이다/밤이면 유난히 반짝여주는 별무리/알 수 없는 기억을 따라 오르는 너의 좌표는/이미 은하에 닿아 있다.>

이재설 시인의 시 ‘담쟁이를 보며’를 보면, 담벼락과 건물 벽을 타고 오르는 암벽등반가인 담쟁이는 도전·인내·개척·소통·부활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식물이다.

담쟁이는 거미손이다.

포도과의 낙엽 활엽 덩굴나무인 담쟁이는 줄기에 덩굴손이 있어 담이나 나무에 달라붙어 거미손처럼 올라간다. 심장 모양의 잎은 끝이 세 쪽으로 갈라지고 톱니가 있다. 6~7월에 황록색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피고, 열매는 장과(漿果)로 가을에 자주색으로 익는다. 흔히 담장이나 벽 밑에 심는데 한국, 일본, 대만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 곁에 친숙하고, 특별한 재능을 지닌 담쟁이는 시인들이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읊기 위해 자주 소환한다.

도종환 시인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담쟁이), 강상기 시인은 “평지 끝 절망의 벼랑에서”(담쟁이) 꿋꿋이 제 몸을 움직이는 넝쿨을 ‘희망’이라 노래했다.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우리가 느낄 때/ 그때/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물 한방울 없고 싸앗 한톨/살아남을 수 없는/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앞으로 나아간다/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는 절망의 벽을 어깨동무하고 넘는 희망의 노래다.

<따뜻한 공기가 수상쩍은 골목/돌담 너머에서 누군가 뜨개질을 하고 있다/과잉 생산되는 유행을 나무라듯/느려서 적절한 속도/해와 달의 실타래에서 한 올씩 뽑아낸/씨실과 날실 사이로/뜨개바늘의 고른 호흡이 드나들 때/미로처럼 삶도 넝쿨 진 골목 안 사람들/저마다의 사연들이 한 귀 한 귀 자라고/크고 작은 기원들도 한 손 한 손 포개져/맞대고 기댄 휜 등을 덮어가는/사방연속 비늘무늬 패턴/들숨과 날숨이/촘촘하게 차 있고/촘촘하게 비어 있는/계절이 갈수록 윤이 나는 핸드메이드/뒷모습 정갈한 그녀가/일감 내려놓고 어깨 펴는 사이/욕심난 바람이 가봉하러 왔는지/차르르르/담벼락에 제 몸을 비벼대고 있다>

유수경 시인의 ‘담쟁이 넝쿨’은 ‘비늘무늬 패턴’‘윤이나는 핸드메이드’ 시어에서 보듯 깔끔하고 정갈하게 담벼락을 점령한 담쟁이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마치 일사분란하게 진군하는 로마 경보병을 연상케 한다.

담쟁이 꽃말이 왜 ‘우정’인지 알 것도 같다.

담벼락을 녹색으로 물들인 담쟁이는 폭포수처럼 상큼하지만 가을 붉게 물든 담쟁이의 단풍은 그저 황홀하기만 하다 .

담쟁이는 치유의 식물이다.

담쟁이 덩굴(넝쿨)은 예로부터 한방의 약재로 사용됐다. 한방에서는 이 나무를 ‘석벽려’‘지금’이라고 부르며 관절염 근육통 등을 잘 다스리고 당뇨병의 혈당 조절에도 쓰인 귀한 약재였다고 한다.

당뇨병에는 줄기와 열매를 그늘에서 말려 그것을 달여 차나 음료로 복용하면 상당한 효과를 보며 오랫동안 복용하면 완치도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관절이나 근육통의 통증을 다스리는 약재로 담쟁이 잎과 줄기를 채취해 술을 담아 3개월 후부터 날마다 마시면 웬만한 관절염과 근육통이 거뜬히 낫는다고 한다.

담쟁이 채취 시기는 연중 가능하지만 돌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는 독이 있으니 반드시 피하고 깊은 산속의 소나무나 참나무를 타고 오르는 오래된 담쟁이 덩굴이 약재로서는 가장 좋다고 한다.

특히 소나무에 줄기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은 ‘송담’으로, 귀한 약재다. 오래된 송담은 관절염과 당뇨에 효능이 있는 약초다. 소나무의 선한 영향으로 담쟁이넝쿨이 약초로 거듭난다.

<잎이 몽땅 떨어진 겨울의 담쟁이 넝쿨을 보면/식물이 자랄 수 있을 때/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한겨울, 담쟁이 넝쿨이 지배했던 담벼락은/처절하게 생존의 힘을 다했다는/증표로 보인다./굵은 가지, 가느다란 가지가 얼키설키/온 벽을 타오르며/자신만의 세상인 녹색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한 식물의 삶이 그러할진대/사람인들 오죽하랴/살아남으려면 발버둥쳐야만 한다.>

문일석 시인의 ‘겨울의 담쟁이 넝쿨’이다.

잎을 모두 떨구고 속살을 에누리없이 드러낸 겨울 담쟁이는 삶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사색과 철학의 식물이다.

서양화가 김미형 작가는 겨울 담쟁이넝쿨에 반해 ‘넝쿨드로잉’을 주로 그린다. 차가운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차다찬 겨울을 이겨내고 푸른 싹을 틔우는 담쟁이의 강인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화폭에 담는다. 작가는 치열한 삶의 흔적인 넝쿨선들의 형태에 주목해 ‘넝쿨드로잉’이란 개념을 새롭게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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