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로망’에 로열티를? 찝찝한 품종 ‘유출’ 논란…오해와 진실 [이슈+]

김희원 2022. 11. 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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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언론 “한국에 무단 유출” 보도에 누리꾼 “훔쳐왔나”
정부·농가 “묘목 중국서 들여와…법적 문제 전혀 없다”
보호 장치 있는데도 6년간 손 놓고 있던 이시카와현
한국도 껍질째 먹는 포도 개발…‘슈팅스타’ 2023년 공개
“안 먹어도 되니까, 불법은 저지르지 말자”
 
“내가 다 부끄럽다. 중국과 다를 게 뭐냐”
 
“우리가 훔치면 영웅, 남이 훔치면 약탈이란 마인드는 잘못됐다.”
 
지난해부터 화제와 논란을 불러왔던 포도 ‘루비로망’이 이번주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일본 유력일간지 아사히신문이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도 먹은 고급 포도가 한국에 유출됐다’고 보도하면서다. 신문은 “한국에서 루비로망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포도 3송이를 사들여 감정한 결과 이시카와현산 루비로망과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유출 경로는 특정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가 국내로 전해지자 한국 누리꾼들의 반응은 갈렸다. ‘유출 경로를 특정할 수 없으면 한국이 훔쳤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일본도 역사적으로 약탈을 많이 해갔다’ 등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과 “도둑질은 나쁜 것”이란 반응이었다.
사진=뉴시스
한국 농가들은 졸지에 일본에서 오랜 기간과 비용, 정성을 들여 개발한 품종을 불법적으로 훔쳐 쓰고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됐다. 이시카와현이 국내 상표 출원한 루비로망을 특허청이 받아들이게 되면 한국 루비로망은 일본에 로열티를 내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오해가 해소되지 않으면 국내 소비자들은 불편하고 찝찝한 마음을 계속 가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업계, 전문가 말을 종합해 루비로망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문답형식(Q&A)으로 풀어봤다.

Q. 루비로망은 한 송이에 1400만원인가?

A. 아니다. 루비로망은 일본 이시카와현이 1995년부터 11년간 육성해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포도다. 포도 한 알의 크기가 직경 3㎝ 이상으로 골프공과 비슷하고 껍질이 루비색과 유사하다. 당도도 매우 높다. 2008년 첫 출하에서 포도 한 송이가 10만엔에 판매됐으며, 지난 7월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중앙도매시장 경매에서 한 송이가 무려 150만엔(약 1400만원)에 낙찰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국내에도 ’한 송이 1400만원 포도’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해당 경매는 올해의 첫 포도 출하 홍보효과를 위한 이벤트성 경매로 일반 소비자에게도 그 가격으로 팔리는 것은 아니다. 올해 루비로망 출하는 끝났지만 일본의 한 인터넷쇼핑몰에는 루비로망 500∼700g짜리 한 송이를 3만352엔에 판매했던 페이지가 남아있다. 한국돈 약 28만원이다. 1400만원에는 한참 못미치지만 역시 비싸다. 한국에서는 지난해부터 백화점 인터넷 등에서 한 송이에 8만원대에 판매됐다. 역시 저렴하지는 않다.

Q. 한국이 일본에서 루비로망 묘목을 불법 유출했나?

A. 2008년부터 일본 시장에서 루비로망이 본격적으로 팔렸고 베트남 등으로 수출되면서 국내 과일수출입 관계자들이 루비로망의 존재를 알게 됐다. 하지만 루비로망 묘목이나 접가지를 구할 길은 없었다. 루비로망은 일본 내에서도 이시카와현 특산물로만 기르는 포도이기 때문에 묘목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그러다 확인할 수 없는 경로로 중국에서 루비로망이 유통되기 시작했고, 한국 종묘사와 개별 농가들이 중국에서 묘목을 들여오면서 루비로망이 한국에도 퍼지게 됐다. 
2021년 7월 28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모델들이 프리미엄 포도 루비로망, 쥬얼머스캣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루비로망 묘목을 파는 국내 종묘사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처음 들여왔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직접 접수를 가져왔다’고 온라인에 소개한 종묘사가 있었다. 세계일보 확인 결과 해당 종묘사는 “홍보문구일 뿐, 사실은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와 국내 전문가들 역시 루비로망이 ‘제2의 샤인머스캣’을 발굴하려는 국내 농업인들에 의해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한국과수협회를 통해 일부 농가의 ‘일본산’, ‘정품’ 등 과장·허위 광고에 대해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Q.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과정은?

A. 외국에서 식물을 들여오려면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검역을 거쳐야 한다. 검역 시 바이러스나 병해충 우려가 없으면 경우면 통과되는 데 문제가 없다. 보통 검역 시 품목명은 ‘포도’로 들어오기 때문에 루비로망이 언제 국내로 처음 들어왔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국내에서 처음 생산·판매 신고가 된 것이 2020년이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농가들이 국내 시범 생산을 거치는 기간을 고려하면 그보다 3∼4년 전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Q. 루비로망의 한국 유통은 불법인가?

A. 아니다.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 조약에 따르면 품종 개발자가 품종 보호를 받으려면 나라별로 품종보호 등록을 해야 한다. 품종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신규성’이 인정되는 기간은 품목마다 다른데, 포도의 경우 종묘가 농가에 양도돼 상업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날로부터 6년이다.
'루비 로망' 품종의 포도. AFP연합뉴스
이시카와현은 2007년 일본에 품종보호 등록을 했지만 한국은 물론 중국 등 외국에는 품종보호 등록을 하지 않았다. 2020년 국내에서 첫 생산 판매 신고가 됐을 때는 이미 루비로망 품종의 신규성이 소멸된 뒤였다. 샤인머스캣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 루비로망을 생산·판매하는 일은 불법이 아니다. 누구나 사서 키울 수 있다.

결국 종자 유출 논란이 발생한 것은 품종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있음에도 이를 놓친 일본 이시카와현의 행정 구멍을 탓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국내 업계의 의견이다. 일본은 지난해에야 관련 법을 강화했다. 

Q. 향후 일본에 루비로망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하게 되나?

A. 로열티를 받으려면 품종 보호 등록이 되거나 상표권 등록이 되어야 한다. 품종 보호 등록은 신규성 인정 기간인 6년이 지나 불가능하다. 상표권 등록도 쉽지 않다.

2019년 전남의 한 업체가 특허청에 ‘루비로망’ 상표를 등록했다가 지난해 8월 취소됐다. 등록상표가 일본에서 사용되는 상표와 표장, 상품이 유사해 수요자로 하여금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이시카와현은 한국 특허청에 루비로망 상표 출원을 냈다. 최근엔 한국에서 유통되는 루비로망과 일본 이시카와현 루비로망의 유전자형이 일치한다는 사실도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한국 내 루비로망 상표 등록이 취소되면서 무주공산이 된 루비로망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상표 등록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한국의 상표권이 취소된 것은 다른 곳에 준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업체가 이 이름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면서 “생산·판매 신고가 되었던 2020년 국내에 루비로망 품종명칭이 함께 등록됐으며, 이미 널리 재배되고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루비로망 상표를 이시카와현만 사용하도록 특허청이 허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고 밝혔다.

Q. 또다른 일본 포도 ‘마이하트’도 루비로망과 비슷한 경우인가.

A. 최근 신세계백화점에서 1년에 한 달만 맛 볼 수 있는 포도라고 홍보한 레드 샤인머스캣, 일명 ‘마이하트’ 품종도 주목을 받고 있다. 마이하트는 청포도인 샤인머스캣과 적포도인 ‘윙크’ 품종을 교배해 만든 신품종으로 포도알이 하트모양이다. 씨가 없고 당도가 높으며 자두, 포도, 사과 등 여러가지 과일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루비로망. 아사히신문 캡처
마이하트는 일본의 개인 육종가가 개발한 품종이다. 한국에는 루비로망과 마찬가지로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품종보호 등록을 하지 않아 누구나 로열티 지급 없이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루비로망보다 2년 빠른 2018년에 생산·판매 신고가 됐다.

Q. 한국에선 신품종 포도가 개발되지 않나?

A. 오랫동안 한국에서 길러왔던 포도는 1908년 미국에서 도입된 캠벨얼리와 일본 품종인 거봉이었다. 최근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샤인머스캣, 루비로망 등과 같이 씨가 없고, 알이 크며, 껍질째 먹을 수 있는 포도로 옮겨갔다.

이에 농촌진흥청도 한국형 고급 포도 품종을 개발했다. 홍주 시들리스와 스텔라다. 홍주 시들리스는 씨가 없고 껍질째 먹을 수 있으며 은은한 머스캣 향이 난다. 당도 18.4브릭스, 산도 0.62%로 단맛과 신맛이 적절히 어우러진다. 지난달엔 처음으로 베트남에 시범 수출도 했다. 

지난해 시장에 첫 선을 보인 스텔라는 포도 알 모양이 달걀형으로 독특하고 껍질째 먹을 수 있다. 체리와 비슷한 맛과 향이 나는데, 당도는 18.5브릭스로 샤인머스캣과 비슷하고 산도는 0.44%로 다른 품종보다 조금 높아 새콤달콤하다.

올해 개발 완료된 ‘슈팅스타’는 내년부터 농가에 보급할 예정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관계자는 “껍질색이 울긋불긋하며 불꽃이 터지는 듯한 무늬를 가져 기존 품종들과 확실한 차별점이 있다”면서 “샤인머스캣만큼 달고 신맛은 적으면서 솜사탕향과 비슷한 단향이 풍부하다. 소비자 테스트 반응이 좋고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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