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에 父사망사고 목격..여경래, 수억 손해본 화재사고에도 담담했던 이유 [종합]
[OSEN=김수형 기자]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여경래가 어린시절 아버지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한 아픔을 전한 가운데 수억을 손해봤던 화재사고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11일 방송된 채널A 예능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여경래, 여경옥 형제 셰프가 출연해 상담을 나눴다.
이날 도합 중식경력 93년차인 명불허전 중식대가 형제인 여경래와 여경옥이 출연했다. 중화요리 전설로 등극한 두 사람. 정형돈이 여경래에 대해 소개, 18년째 셰프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중식 전문회사에 소속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 여경옥은 업계 최초 L호텔 이사로 화려한 경력을 전했다.
이윤지는 두 셰프에 대해 제보가 있다면서 두 셰프의 제자인 박은영 셰프가 출연, 직접 고민을 제보했다고 했다. 박셰프는 “두 분모두 항상 모든 것이 긍정적이신 분, 부하직원과 트러블도 없어, 진상 고객도 참아야한다고 한다”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번은 받아야할 돈도 못 받았다, 대신 받아준다 해도 그냥 넘겨버린다”며 답답해했다.
오은영은 “긍정적인 걸 걱정하나 싶지만 지나치게 긍정적인건 동의하나”고 묻자, 여경래는 “원래 내성적이고 완벽주의”이라며 호텔에서 서비스 교육을 20대부터 받았다고 했다. 부정적이고 반항적으로 살아온 어느 날, 문득 거울 속 자신을 보고 놀랐다고. 그는 “저렇게 더러운 인상으로 세상을 살고 있었구나 충격을 받았다, 인상을 바꾸고자 결심했던 계기”라고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웃는 연습을 했고 ‘I CAN DO IT’을 외쳐 3년간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장소불문 언제나 큰 소리로 웃는 소리를 냈다는 것. 그는 “별명이 또라이라고 했을 정도”라고 했다.
애초에 부정적인 기억은 잊으려한다는 여경래. 의견 충돌에 대해 묻자 여경래는 “둘다 호텔 주방장 출신이라 식당 개업이 잘 됐다 경력이 쌓이니 형제간 자존심이 생겼다”며 일화를 전했다. 결국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 하지만 동생 여경옥은 갈등이라고 조차 생각하지 않으며 웃음 지었다.
오은영은 “긍정적이라도 뭐라고 하나 우려도 된다”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러하다고 생각하고 옳다고 인정하다, 이 것이 긍정의 사전적 의미”라면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긍정이라고 했다. 안 좋은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인정이 아닌 왜곡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은영은 “긍정적인 건 좋지만 지나치게 긍정적이어서 어떤 상황을 빨리 매듭하려는 건 그정에 과하게 몰두하고 있는 상태”라며 그 이유를 물었다. 여경래는 “성공이란 주방장되는 것, 부정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계기를 전했다. 부정적 생각을 가로막았던 일화에 대해서 그는 “화를 내는 내 모습이 싫었다”며 다른 방법으로 표출하도록 찾았다고 했다.
이 가운데 박셰프는 “설 연휴 후 호텔이 난리가 났다, 매장이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며 2년 전 호텔에 불이났고 하루 아침에 가게 문을 닫게 됐던 일을 전했다. 뉴스까지 나왔던 사건.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구급차가 왔다갔다 했다.
15년간 운영한 식당을 한 순간에 잃을 뻔한 위기. 심지어 1억원 상당의 식당 기물을 100만원에 처분했다고 했다.박셰프는 “신경쓰고 싶지 않은건 닫아버린다, 안 좋은 감정을 가두는게 불편함이 없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여경래는 “눈물을 머금었다, 터무티없었다”면서 “계속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되니까 가게기물은 부정적인 요소라 생각했다”고 했다. 알고보니 상처가 아물지 않은 듯 계속 이 얘기를 반복한다는 것.
오은영은 “모든 상황이 ‘꼴보기 싫네’ 인 것”이라며 화재의 흔적을 치워버리려고 했던 것이라 했다. 차라리 안 보는 것이 속 편했던 것. 하지만 큰 경제적인 손실에 보는 사람도 속상해했다. 오은영은 “일시적인 마음의 도피, 부정적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힘든 상황을 여경래는 부정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동생 여경옥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대부분 문제에 대해 생각이 안 나고 문제 없다는 것. 부정적 감정을 역시 부정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오은영은 “나쁜 기억 지우고 기억왜곡을 동반한 현실도피 심리를 ‘므두셀라 증후군’ 라는 것”이라며 아름다운 향수에 젖는 퇴행심리라고 했다.
므두셀라 증후군 특징에 대해 오은영은 “겪을 수 밖에 없는 어린시절 마음의 상처가 있다, 생활을 고통 혹은 부모와 갈등도 있다”면서 사실은 힘들었던 기억을 지나치게 미화하게 된다는 것. 이어 어린시절 이야기에 대해 물었다. 여경래는 ‘극빈자’ 가족이었을 정도로 어린 시절 가난했다면서“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홀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다”면서 당시 어머니가 막걸리를 장사했다고 했다.
그렇게 화교학교에서 다녔으나 학비 감당도 버거웠다는 여경래는 “잡비조차 못 냈다, 교복살 돈도 없어 혼자만 사복을 입고 등교했더니 선생님이 반친구들 도움으로 교복을 마련했다”며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여경옥은 “40세까지 비오는 걸 싫어해, 바닥에 물이 차고 천장에 물이 새던 낡은 집이 떠오르기 때문”이라며 축축하고 습했던 과거가 떠올랐다고 했다. 현재는 경제가 여유로워지며 좋아졌다는 것.
이어 아버지 기억에 대해 여경래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길을 건너는 모습을 봐 차가 와서 부딪히는 걸 봤다”며 당시 6세 였을 때 눈 앞에서 아버지 사고를 목격했다고 했다. 그는 “기억나는 말은 ‘엄마, 아버지 죽었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며각인처럼 남은 기억을 전하며 “얘기하다보니 (감정이) 격해진다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져있던 운명이구나 느꼈다 우리 집안 이끌어갈 사람 나 뿐이구나 생각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어린시절 잊고 싶은 기억에 대해선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여경래는 “학교를 다니고 싶었는데 서울로 일을 나가야했다”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는 “구렁텅이에서 나를 꺼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느꼈다”며 속마음을 전했다. 당시 무력감과 자괴감도 들었을 터. 절망감도 ‘구렁텅이’라고 표현한 그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길을 닦았고 동생에겐 자신을 따라오라며 길을 인도했던 것이었다. 오은영은 “좌절을 딛고가는 내면의 힘으로 역경을 이겨낸 형제”라며 바라봤다.
박셰프는 여경래에 대해 “지인들에게 책임감이 강하다며 “인연이 닿으면 끝까지 책임진시는 분, 호텔에 불이나서 문을 닫고 새로운 곳에 오픈했을 때도 직원을 모두 챙기고 책임지셨다”며 “누구한테도 기대어본 적 없는 사람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방에서 식사를 서서드셔, 잠도 잘 못 자고 아파도 병원을 안 가신다 갈비뼈가 부러져도 약도 잘 안 드셔,항상 누군가를 챙겨주지 본인을 돌보거나 그러지 못하셨다”며 지나치게 책임감이 강한 모습을 전했다.모든 걸 챙기려한다는 것.
오은영은 “가장으로 책임감도 컸을 것, 하지만 막중한 책임감에 대한 원인은 알아보자”면서 “동생에겐 아버지 역, 주변엔에겐 큰 형님의 역할을 한다”며 그의 과거를 돌아봤다. 가난했던 과거와 화교로 겪어야했던 편견, 아버지의 부재로 학업을 포기해야했던 서러움 등, 스스로 선택할 수 없던 상황에서 근원적인 수치심이 들었을 거라고.
오은영은 “성공하고 좋은 사람 살아야했을 것, 어려울 수록 담대하고 주변인을 챙기려고 한다”며 이해심 많은 나로 존재해야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 느꼈을 것이라 했다.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는 것. 그렇게 주위를 챙기는 책임감에 대한 이유였다.
처절했던 어린시절을 좋은 사람으로 승화시킨 것이라 하자 여경래도 인정하면서 “앞으로 더 (긍정적) 그래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이에 오은영은 “기억해야할 한 가지”라며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질 때 기분 나쁜 상황을 인정하고 긍정의 힘을 동원하면 존경의 길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아픔을 긍정으로 이겨낸 형제에게 오은영은 “자수성가의 표본 형제를 지탱하는 내면의 힘이 있다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존경을 표한다”며 고개를 숙이면서 건강한 긍정에 대해 “’옛날엔 좋았지, 지금은 더 좋지’다,과거가 모여 현재가 된 것”이라며 응원했다. 이에 두 형제도 “한국 중식발전에 기여하는 형제가 되겠다”며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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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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