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무임승차 기승 부리는 中[박준우 특파원의 차이나인사이드]

박준우 기자 2022. 11. 12.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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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 기차역에서 시민들이 열차에서 하차해 플랫폼으로 나서고 있다. 바이두 캡처
한 베이징 시민이 건물 출입을 위해 건강코드를 스캔하고 있다.인터넷 신징바오 캡처

중국식 무임승차 ‘매단승장(買短乘長)’, 코로나 바람 타고 변형돼 유행

베이징=박준우 특파원

얼마 전 중국의 한 지방 도시를 방문했다 베이징(北京)으로 돌아올 때의 일이다. 일정이 바뀌어 티켓을 환불하고 새 일정을 잡기 위해 매표소에 들어갔다 나오니 한 남성이 다가와 은밀하게 건강코드에 “‘탄촹’(彈窓·팝업창)이 떴는가”며 “소정의 금액을 주면 베이징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베이징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에게 베이징 자체 건강코드와 코로나19 검사결과를 요구하고 있으며, 베이징의 방역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건강코드에 탄촹이 뜨면서 현장 티켓 구매가 불가능하게 된다. 인터넷으로 티켓을 구매해도 열차를 타기 전과 탑승 중에 티켓과 함께 베이징의 건강코드를 검사하므로 탄촹이 뜬 이들이 베이징에 들어가기 위해선 일주일 이상이 지나 탄촹이 해제되길 기다려야 한다.

호기심이 동해 약간의 ‘정보제공료’를 주고 방법을 물어보자 그는 베이징을 경유하는 다른 목적지까지 가는 티켓을 끊도록 한 뒤 중간에 베이징에서 하차하라고 알려줬다. 과거 중국에 고속철이 보급되던 초창기에 짧은 거리의 열차표를 싼 값에 끊고 먼 지역까지 타고 가는 무임승차 수법 ‘마이돤청창’(買短乘長·가까운 곳 표를 구입해 멀리 간다)이 코로나 시국을 맞아 ‘마이창청돤’(買長乘短·먼 곳 표를 구입해 가까운 데를 간다)이라는 변형된 방법으로 이용되는 셈이다. 건강코드가 지역마다 다르고 정보 호환이 되지 않아 다른 도시로 가는 사람에겐 베이징 건강코드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 탑승 때 수 차례의 철저한 검사를 하는 것과 달리 하차 때는 검사가 허술한 점이 이 수법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 남성은 티켓의 모바일 구매를 옆에서 도와주면서도 실제 코로나19 음성이 맞는지 수차례 확인했고, 설명 중 공안이 순찰을 돌자 잠시 딴청을 피우는 치밀함(?)도 보였다.‘마이돤청창’은 이동이 절실한 사람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공유돼 왔으나 당국의 단속 강화에 곧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10월 말 이 수법을 통해 베이징으로 귀경했던 한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해당 수법이 공개됐고, 방역당국이 이에 대한 보완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이 여성의 수법이 공개되자 중국 네티즌들은 해당 여성에 비난을 쏟아가며 이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요구했는데, 한편으로는 이 같은 허점이 있었다는 데 당혹감도 드러내고 있다. 지방정부의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로 수많은 예산이 투입됐고, 강제적인 심각한 봉쇄를 계속하는 제로 코로나 속에도 너무 손쉬운 허점이 있었다는 데 대한 허탈감과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표출되는 것이다. 허점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강력한 제로 코로나 정책에도 지난 9일 기준 중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만243명으로 약 6개월 만에 1만 명을 돌파했다. 베이징 또한 114명이나 되는 확진자가 나오면서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내에서도 ‘제로 코로나’ 정책에 회의감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베이징 당국의 대응은 ‘모든 귀경객들에 대한 입경 제한’이라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 오히려 민심과 멀어지고 있다. 출발지의 확진자 발생 여부를 막론하고 무조건 건강코드에 탄촹을 띄워 베이징으로의 입경을 막는다는 것이다. 실제 해당 조치가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근 중국국제수입박람회 취재를 위해 상하이(上海)를 찾았던 CCTV, 런민르바오(人民日報) 기자들도 탄촹이 떠 당중앙선전부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이 보도했다. 혁명원로 2세대이자 당 중앙통일선전부 부국장을 역임했던 타오쓰량(陶斯亮·81) 중국 시장(市長)협회 부회장도 최근 탄촹이 떠서 베이징에 들어오지 못한다며 자신의 SNS를 통해 당국의 방역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정부 정책을 옹호하던 이들까지도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중국 당국의 입장을 대변해온 후시진(胡錫進) 전 환추스바오(環球時報) 총편집인은 7일 “기층의 조직력이나 중앙의 지시를 이행하는 집행력이 가장 강한 베이징조차 엄격한 방역 통제에도 코로나19 제로화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정이 이렇다면 다른 도시들이 제로 코로나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밝혔다. 중국 시사 평론가 저우샤오핑(周小平) 등도 최근 과도한 방역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내부 불만이 이처럼 커지자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상무위)는 10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주재하에 회의를 열어 “‘다이내믹 제로 코로나(動態淸零)’ 정책을 확고히 관철하되, 일률적 방역 관행은 시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날 상무위는 고강도 방역에 따른 경제·사회적 타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강조했지만 중국 주민들의 ‘분노’를 잠재울만한 변화가 나올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 중국 관계자는 “지방정부 당국자들도 방역을 위해 베이징만큼 강경한 정책을 쓰고 싶지만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외부에 개방적인 시선을 보내려 해도 내부에선 더 강하게 옥죄려 하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최근 중국 전역에서 등장하는 현수막 시위나 화장실 낙서의 첫 구호가 ‘반독재’보다 ‘반핵산(PCR검사)’였던 만큼, 방역 정책에 대한 입장은 ‘시진핑 3기’ 민심을 가늠할 중요한 지표가 될 전망이다. 지금의 방역 정책이 계속 고수되거나 오히려 강화된다면 중국인 일부는 중국을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달려갈 것이고, 누군가는 다시 거리에 현수막을 내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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